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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Nov 24. 2023

오늘도 나이쓰 충전

[오늘도 나이쓰] 2

                      사용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과정





충전이다. 이 과정은 휴대폰도 자동차도 그리고 나도, 언제나 요구되는 필수 과정이다. '사용 가능한 상태'는 제대로 작동을 하고, 제 기능을 하고,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어나고, 움직이고, 일을 한다. 먹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 크고 작은 결정을 수도 없이 한다. 그리고 다시 잘 돌아온다. 


이런 상태를 일상이라고 부른다. 오늘이라고 채워진다. 하루를 기준으로 반복된다. 우리의 삶의 형식은 언제나 이렇게 오늘이다. 잠을 통해 내일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저장하면서 나란히 옆에서 휴대폰도 언제나 충전 중이다. 사무실에서는 노트북이 밤새 충전 중이다. 오늘은 일찍 들어온 덕에 지하 주차장에서 내일 다시 달릴 차도 동시에 충전 중이다. 


전자 기기의 중요한 성능 중 하나가 충전 배터리의 사용 시간이 된 건 이미 오래전. 게다가 요즘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속 충전, 급속 충전이 가능한 스팟들이 우리의 일상 동선 곳곳에서 눈에 띈다. 강의실에서, 병원에서, 마트에서, 관공서에서, 식당에서도. 


우리는 항상 충전이 필요하다. 갈증을 느낀다. 배터리가 줄어드는 게이지를 보면 약간은 불안해지기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열일 제쳐 놓고 몇 퍼라도 충전, 충전하면서 충전이 가능한 스팟을 찾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에너지가 다 소모되어 더 이상 사용 가능한 상태가 아닌 것



방전이다. 다시 에너지를 저장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충전 스팟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아무리 충전 속도가 향상된다고 해도, 아무리 배터리 사용 시간이 길어진다고 해도 기계는 언제나 방전 예정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매일, 매 순간 충전과 방전을 반복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래도 완전한 충전, 완전한 방전의 극값 사이에서 완충에 가까웁게 하루를 지켜내려고 무한한 노력을 한다. 별일 없지? 그럼, 하면서. 밥도 잘 챙겨 먹고, 잘 듣고 그리고 자주 걷고.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완충에 가깝게 나를 충전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을 충전시키는 아주 나이쓰 한 방법이 있다. 돈도 들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자기 루틴을 바꿀 필요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아주 아주 간단하다. 



                    주로 글이나 메시지를 작은 종이에 적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



쪽지다. 나를 표현하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다. 쪽지에 쓰인 몇 글자는 나를 다 표현한다. 내가 쪽지를 건네는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다 들어차 있다. 미안해도, 고마워도, 궁금해도, 사과하고 싶어도, 확인하고 싶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게 버벅거려도. 쪽지를 쓰는 행위 자체가 아미 나보다는 쪽지를 읽을 사람을 위한 행위니까.  



여보, 오늘도 파이팅 합시다!

아빠, 오늘 발표 멋지게 잘하고 와

00아, 어디 어디에 뭐 있다. 꼭 먹고 나가.

윤팀장, 자리에 없네. 어제 너무 멋졌어. 좋은 하루~

쌔엠~, 이쁜이 @@이 왔다 가여~ 자리에 안 계셔서 메모 남겨여. 오늘도 늦어서 지송^^



직접 쓴 쪽지보다 나를, 상대를 급속도로 충전시키는 더 훌륭한 방법은 없다. 메시지나 톡보다도 심지어(?)는 뭐니 뭐니 보다도. 쪽지의 충전 능력은 또 다른 데에 있다. 바로 쪽지로 충전된 에너지는 쪽지를 받은 사람보다 쪽지를 쓰는 사람이 더 먼저 충전된다는 것. 그리고 그 충전된 배터리의 방전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는 것.  


쪽지는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오랜만에 나들이, 모임에서 서로 앞다투어 고속 충전, 급속 충전 스팟을 찾아 헤매느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을, 지금을 낭비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나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오늘도 우리 함께 나이쓰 한 하루, 방전 없는 하루를 위해. 이제 우리 다 같이 쪽지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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