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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19. 2023

11시와 3시 사이

[나도 따뜻한 T가 될 수 있을까]

세상을 내 몸 하나로 살아낼 수는 없다. 나를 먹이고 재우고 움직이는 데는 꽤나 많은 사물들이 필요하다. 사람은 당연하고. 스무 해 넘게 점심을 식당에서 먹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식당에서마저도 점심시간 몇 분 동안에도 전투적으로 경쟁하는 나를 발견했다. 많이 먹고, 빨리 먹으면서 옆 사람과 경쟁하고 어제의 나와 경쟁하는.


경쟁은 약이면서 독이다. 속도와 양이 약이면서 독인 이유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을 문득문득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또 문득, 어느 날부터 스스로 도시락을 챙겼다. 그렇게 도시락은 준비하는 때부터 속도와 양을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대중의 일부가 되기 전 혼자의 영역에서부터.


그게 도시락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건 5년이 넘는 지금에도 좋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작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게 보였다. 수많은 용기(컨테이너)들을 잃어버린 것. 음식물을 담으려고 할 때마다 통과 뚜껑은 언제나 제각각이다. 물론 그때그때, 바로바로 정리해서 합쳐 놓으면 문제 될 게 없을 거다. 그런데 씻어 놓은 것들이 이전의 기억을 촉촉이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물기가 마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게 있다.


사는 게 꼭 그렇지 못하다. 마치 다른 용기(커리지)도 잘 발휘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데 또 지나다 보니 용기와 용기를 잃어버려 제때 쓰이지 못할 때 돌파구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내가 부족하다는 것,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다. 타이밍 적절하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문제없는 척, 안 그런 척, 아는 척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다 보면 도움의 손길이 나타난다.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생각이건.


주변에서 보면 가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게 도움을 구하는 혼자만의 (자기) 방식이다. 우리 집에서는 열여덟 따님이 용기(컨테이너) 담당이다. 용기와 뚜껑을 맞추는 건 판단과 민첩함이 필요하다. 이것과 저것이 하나구나 하는 그동안 저장된 기억을 조합하는 순간 판단(정신), 그리고 빠른 손놀림(육체). 그래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정화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 또 있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 사이다. 세상의 수많은 공간들은 그 시간에 먼저 머문 이와 다음에 머물 이를 이어주는 시간이 된다. 앞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치우고, 새로운 기억을 채우기 위해 치우고, 다시 지우기 위해, 채우기 위해. 그 짧은 시간이 있어 어쩌면 세상은 계속 그렇게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채우는 시간인지도.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는 습관은 그래서 참 좋다. 또 지나면서 돌아보면 보인다. 그 용기도, 저 용기도 잘 안 맞고 부족해지는 이유가. 바로, 내 안에서 '그때' 마음과 '지금' 다짐이 조금씩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지금처럼 그러면 될 텐데 말이다. 초심이다. 사람은 그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데 그게 사실 무지하게 어렵다. 왜.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초심은 실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열정적이다. 몰입도가 높았다. 모든 것을 장난감으로 받아들여, 새롭게 재창조하면서 마음껏 가지고 즐기는 아가 같았다. 온몸의 감각을 총 동원해 생각하고, 말을 미리 만들어서 내뱉고, 깊은 사색을 통해 쓰는 순수함이 살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상태 가까이로 되돌아야 가야 할 때인가 보다. 처음 도시락을 직접 싸던 그 상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그 상태로.


11시에서 3시 사이에 좀 더 용기내어 봐야겠다. 좀 더 중얼거려 봐야겠다. 도와달라고, 도와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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