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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Dec 18. 2023

[짙은 새벽이 나에게 거는 속삭임] 6 


세상은 어둠 속으로 숨어든다

어젯밤의 쾌락에 바짝 얼어붙은 거미가 나를 노려보며 묻는다 

온몸을 마비시키는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뜨거운 태양과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세상은 네모 속으로 숨어든다

뜨거운 태양에 날개가 늘어진 작은 철새가 나를 내려보며 묻는다

순간순간 온 정신을 붙들어 흔드는 시각과 운동의 황홀경이

불안한 외로움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세상은 마음속으로 숨어든다

외로움을 잘게 썰어 넣은 새벽 물방울이 비친 나에게 묻는다

공백과 공백 사이를 관통하는 길목에 널브러진 진리는

스스로 이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진리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세상은 사건 속으로 숨어든다

끊어질 듯 가느다란 진리를 부여잡은 옅은 사랑이 나를 흔들어 묻는다

욕심, 관심사에 대한 집착을 허물어내어야만

과거와 단절된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그렇게 세상은 내 안으로 침몰한다

나를 스쳐 지나치는 찰나의 새로운 사람이 고맙게도 나를 붙들고 묻는다

온 세계인 동시에 한계인 나의 지평을 인정하는 위대한 연습이

먼저 새로운 사람이 된 이의 지평을 벅차게 만나는 통로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그 통로로 지금 당장 걸어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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