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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04. 2024

위험한 사람들, <그아모>

[오늘도 나는 감탄 사寫] 12

'엄마?, 아빠가, 아빠가.....글쎄, 아빠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나간데? 위험하게!'


'정말? 오, 위험한데!!'


신사역으로 출발하기 전. 인사를 하는데, 열아홉 따님이 식탁에 앉아 세탁실에 나가 있는 아내를 부르듯 한 말이다. 처음 듣는 사실도 아닌데, 아내의 억양 속에서는 웃음을 입틀막 하느라 입 근육이 씰룩거리는 게 느껴졌다. 뭐지하는 나를 바라보는 따님의 눈가는 이미 사랑스러운 반달이 다 되어 있었다. 


그렇지! 위험할 수 있지, 맞아. 위험할 수 있어. 그래서 우린 '당근'이라고 하면 진짜 타탁이(우리 집 여덟 살 반려견) 간식을 말하는 거니까. 낯선 이들한테 호의는 잘 베풀면서 그걸 (의심 없이) 잘 받아내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탓이지, 우리 문제는 아니니까.    


'이렇게' 말했는데 '저렇게' 들리는 건 말하는 사람이 담아 둔 뉘앙스보다 오히려 듣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른 해석이 다르게 작용할 때가 더 많다. 그런 표현들 중 내가 (직업상)흔하게 듣는 말이 '그냥', '아무거나'다. '왜 그랬니?' '그냥요'. '무슨 역할 맡을래?' '아무거나'처럼.


이 경우 그냥요와 아무거나는 대답하기 싫다, 생각이 없다, 대화하기 싫다, 귀찮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로 들린다. 그러다 결국은 '나 너 싫다'로 내 안에서 결론지어지는 경우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이런 표현을 쓰면, 괜히 기분이 나빠지고, 숨겨두었던 못난 성질을 부려보기도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런 표현을 자주하는 아이들과 한참 지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답이 아니라 내가 던진 질문이 마음에 걸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나의 질문을 바꾸면 같은 대답, 그냥요와 아무거나가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들릴 수가 없다. 


'바쁜데, 무슨 일이야?' '그냥요, 그냥 갑자기 뵙고 싶었어요', '뭐 못 먹는 거 있어?' '아니요, 아무거나요 다, 다 좋아요' 맞다. 그랬다. 그냥,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순수하게. 그럴 때 그냥은 진심인 거다. 아무거나는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가득 담긴 거다.  


어제, 아늑한 공간에서 만난 이들이 그랬다. 복직, 아버지, 시장, 복권, 연차, 육아, 눈물, 인연, 사업, 춤, 여행, 닭, 진지, 기적, 빛 그리고 공감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그냥, 정말 그냥 (글 쓰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모인, 지금 같은 세상에 이렇게 '그냥' 순수해도 되는 건가 싶은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앞뒤 안재고, 그냥 모인 그들은 분명 아무거나 막 쓰면서 살아낼 사람들인게 분명했다. 앞으로도 절대 안 쓰고는 못 베기는 사람들로 살 수 밖에 없을.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마다 그냥 좋아하고, 그냥 미안하고, 그냥 고마운 이들이 넘쳐날 그런 글들을 돈이 안 생겨도, 밥이 안 나와도 써 내려갈 그런 사람들. 


그렇게 아무거나 쓰는 힘으로 참지 않눈물 쏟아내고, 참지 않쉬고, 참지 않걷고, 참지 않닭들을 훈련시키고, 참지 않계속 꿈을 꾸고, 참지 않복권을 계속 사고, 참지 않고 부모님과 화해를 시도하고, 참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모아 또 다른 기적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고는 못 베겨 날 사람들이었다. 


또, 그 힘으로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주변 사람들한테 그냥 따듯하게 말 걸고, 그냥 먼저 웃어주고, 그냥 먼저 인사하고, 그냥 얼른 손 내밀고, 아무 날도 아닌 날 그냥 꽃다발을 사들고 내밀거다. 따지지 않고 아무 때나 먼저 미안해하고, 먼저 고맙다고 인사할 거다. 


어제 나는 [그냥 아무거나 모임]에 있었던 거다. 위험하게 순수한 사람들 옆에. 모임 안에 내가 같이 잠깐이라도 있을 있어 일년만에 가장 오래 앉아 있었나 보다. 허리 통증마저 잊고 있었나 보다. 이야기를 들으며, 눈빛을 보는 내내 그냥 가슴이 비행기 이륙할때처럼 옴짝거리듯 몽글몽글거렸다


아무거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괴한 마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루였다. 그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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