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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9. 2024

너희도 우리도 서로 더 필요한 연습

[오늘도 나이쓰] 33

제 기억 속에서 스물일곱 해를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5월에 모의고사가 실시된 건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어버이날과 겹치면서까지.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보다 같이 아주 잔인한 어른이 된 기분이 든 하루였네요. 며칠 내내 젖어있던 세상을 바짝 말려주려는 듯 진파란 햇살이라서 더더욱


모의고사. 수능이라는 단 하루. 그날을 위한 아이들의 연습날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일반고의 교실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제와 같은 수능 연습이 필요 없는 아이들도 꽤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입시 구조상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천 개가 넘는 전형 유형이 크게는 학교 자체 시험 성적과 (수능을 전제로 한) 전국 단위 모의고사 성적으로 나뉩니다. 일반적인 비율상 양쪽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아이들보다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한쪽이라는 게 대부분은 전국 시험보다는 학교 자체 시험으로 어찌어찌 전략을 세워서 도전(해야만)하는 아이들이 더 많죠. 여기에 해당하는 아이들 중 상당수에게 전국 단위 모의 연습이 직접적으로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반 스물여덟 명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최상위권 대학의 학과를 목표로 양쪽 모두가 의미 있는 아이들은 열 손가락이 채 되지 않거든요. 이러다 보니 어제와 같은 수능 연습이, 게다가 그냥 있어도 온 세상이 고 3만 빼고 신나 보이는 5월 한 날에 내리 8시간을 넘게 앉아 있어야 할 별다른 도전의식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될 거 같아,라는 자기 확신이 있어도 처음 마음으로 끝까지 버티는 게 버겁죠. 아직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사람들 은 더욱더 말이죠. 하물며 돈을 받기 때문에 버텨나가는 우리 어른이라는 존재들도 하루 종일, 한 가지만, 그것도 잘 모르겠는 상황에서는 쉽지가 않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우리 반 스물여덟 명은 3월에 이어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나와 하루 종일, 그 '버티는' 연습을 참 잘해주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하도 기특해서 공강 시간에 진파란 하늘을 잠깐 올려다보다, 아이들의 '어버이'들이 떠올라 안부 겸 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00 이의 담임입니다. 꽤 여러 날 눅져 있던 온 동네 구석구석으로 오랜만에 햇살이 찬란하게 스며듭니다. 아침 출근길에 네 분의 부모님들께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는 부모님의 보호자가 될 수 있는 게 오늘의 햇살만큼 찬란한 기쁨일 거라고요.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


00 이를 포함해 올해 저를 찾아온 스물여덟 명의 열아홉들이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아래에서 묵묵히 고개 숙인 채 몰두하고 있는 오늘, 5월 고3 모의고사의 필적확인란 문구입니다.


00 이가 잘 채우는 있는 오늘이 서로에게 따뜻한 불빛이 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모의 연습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하고 싶은 것만, 당장 필요한 것만, 의미 있는 것만 하고 살 수 없는 세상을 잘 살아내는 힘을 길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단호하게 응원 중입니다.


00 이를 늘 잘 보내주셔서, 문 앞까지 함께 와 주셔서, 마음으로 뒤에서 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저희 같이 어버이날 자축하시지요~^^. 하루 종일 모고 보느라 애쓴 00 이와 같이 오늘 우리들의 날을 멋지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



환희, 기쁨, 감사, 감동, 격려, 든든, 희망, 행복, 조바심 해소, 큰 울림, 따뜻.  '00 이가 세상을 잘 살아내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라는 이름에 감사하며', '00 이의 부모인 것이 행복한 오늘'. 올해 처음 보낸 전체 메시지에 돌아온 답변은 학부모가 아닌 원래의 마음,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메시지를 쓸 때 마음도 답변을 읽는 마음도 한 가지였습니다. 눈부신 5월의 햇살 아래에서 아이들만큼, 아니 어쩌면 더 불안해서 위로가 필요한 게 우리 '어버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동갑인 따님이 보내준 카네이션 케이크 덕분에, '어버이'들이 연대하는 연습을 할 수 있던 덕분에 부모인 게 참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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