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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26. 2024

무탈한 일상을 위한 헌신

[오늘도 나는 감탄寫] 27

출근을 위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저의 시선안으로 자그마한 경비원이 두 다리를 모으고 살짝 구부린 채 양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게 들어옵니다. 눈을 감고, 무릎을 조금 더 내렸다면 명동 성당 지하 기도실에서 이른 아침에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어느 분 같아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여기가요..."


그분은 자신의 뒤쪽으로 지나쳐 가려는 저에게 설명을 하려 마른 입술을 달짝입니다. 그분 위치에서 그분 시선으로 서보니 보입니다. 저도 모르게 자세마저 그분처럼 하게 됩니다. 차도 모서리에서 인도로 올라서는 바닥 콘크리트가 옴푹 깨져 있는 것이.


부서진 콘크리트는 약 3센티 정도로 얇은 자전거 바퀴로 지나치면 토독거리며 살짝 흔들릴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젊은분들 한테는 별 문제가 없지만 끌고 다니는 어르신들 한테는 보이지 않아, 걸려 넘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정말 그렇습니다. '뜻밖에 일어난 걱정할 만한 사고', '결함이나 허물', '핑계나 트집', '몸에 생긴 병'. 우리말 같은 한자어 '탈'의 의미들입니다. 한자 하나만 봐도 무탈한 날이 정말 기적같이 대단한 날입니다. '머리 혈이 멈춰'버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뜻을 보니 더욱 말입니다.


매일의 새벽을 오로지 저만의 것으로 만든지 16개월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어김없이 들어온 전기, 차를 끓일 수 있는 물은 누군가가 자신의 밤을 새벽을 내어주어서 가능했구나 싶습니다. 13층 허공에서 매일 새벽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지하 깊숙한 곳에서 누군가는 막힌 배수구를 뚫어내고 있어서 가능했던 겁니다.


아침 저녁으로 달려 갔다 오는 익숙한 길위에서도 언제나 먼저 자신의 속도를 저를 위해 조절해 준 누군가를 만났었기 때문에 저의 무탈한 하루가 더 늘어났던 겁니다. 마치 같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동안에도 가족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겉옷마저 벗지 못하고 주방으로 달려가는 매일의 아내처럼.


한때 '생존 수영'이란 표현이 회자가 되었었지요. 들뜬 마음으로 놀러 간 수많은 아이들이 '잘 다녀오지' 못했던 이후에 말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마음 한켠에서 오랜동안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은 일어날꺼고, '나 혼자라도' 살아내는 기술을 몸이 기억해야 한다, 는 혼자사는 기술에 대한 강조였으니까요. 거부할 수 없지만, 거북스러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아침의 경비원이 이런 마음을 가졌다면 자신의 위치와 시선을 맞추느라 몸을 낮추면서 사진을 찍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나만 걸려 넘어지지 않으면 되니까요. 누군가가 넘어진 걸 본다면 짐짓 여유 있는 척 손만 내밀어줘도 내 역할은 다 했다, 하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거니까요. 못보면 못본대로 안도하고 하루 더 살아낼 수 있는거니까요.


누구나 어쩌면 물 밖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가 더 많아요. 흐드러지는 봄속에서 내 마음만 겨울인 것 같을때 말이지요. 물은 무서우면 들어가지 않으면, 배를 타지 않으면 원인은 제거한 거지만, 세상속으로는 어찌되었건 걸어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럴때 손을 내미는 누군가를 봅니다. 그이도 그이의 일상을 꾸려내는 중인.


저와 그리 다르지 않는데 사는 모습은, 아니 사람마져 달라보입니다. 틈마다 지혜롭고, 항상 자유롭고, 무척 건강하고, 언제나 유쾌하게만 보입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만으로 꼭 경험이 많아 지는 것도, 능숙해지는 것도, 지혜롭게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그런 일상들은 틈마다 순간마다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로 생긴다는 것을요.


노력하는 방식은 다 다를지 몰라도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나의 일상은 오로지 나의 힘만으로 이루어지 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끊임없는 헌신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가 먼저 실천한다는 점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워 나가는 사람들을 자주,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게 분명하지 싶습니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그러면 그 싫은 것들이 당신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그 대신 좋아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것이다. 당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세상이 당신을 보는 방식이다." _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2024, 수호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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