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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02. 2024

운전미

[오늘도 나는 감탄寫] 28 ... pixabay

운전하세요?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은 운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최근 20년 동안 약 1400만 명이 넘게 증가를 했다는군요. 그중 30대가 약 660만 명, 50대가 약 690만 명입니다. 가장 많은 인원은 40대로 약 780만 명입니다. 최근 10년간은 여성 운전자가 남성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도시들은 자그마한 항구에서, 강가 나루터 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리면서 도시화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도시의 면적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소위 중심지라고 하는 곳에서 외곽으로 외곽으로. 이게 가능했던 게 바로 자동차의 보급이었습니다. 


커지는 도시 때문에 고민한 인간이 자동차를 만들어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도시의 기능을 누릴 수 있도록 했던 거지요. 지금처럼 출퇴근 교통 지옥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역시 자동차의 보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가장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동차의 보급. 뭐,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운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자동차 덕분에 우린 좀 더 문명인이 된 겁니다. 문명은 인류가 발전시킨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발전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사람, 사회 유지를 위해 제 역할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문명인이고요. 


그런데 자동차 성능이 발달하는 만큼 문명인으로서의 아름다움도 향상되고 있는지 문득문득 의심이 들게 됩니다. 과거에 살았던 비문명인들보다 훨씬 더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문명인으로서 살아낼 수 있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지금의 현대적인 삶 속에서 말입니다. 


문명인은 윌리엄 진서가 이야기한 '인간미와 온기'를 가득히 지니고 있는 현대인들입니다. 자기의 온도를 높여 타인의 삶에 은은한 온기를 공유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자신의 삶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타인의 속도와 방향을 방해하지 않은 아름다운 사람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제의 시내 교통 상황'이라는 전광판을 가끔 마주치게 됩니다.

'사망 1명, 부상 39명'



어제의 숫자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호다에 미흐, 크라스 티비'

'어제는 나, 오늘은 너'



우리 모두는 오늘을 살다 반드시 떠나니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잘 살자는 의미이지요. 이 문구가 저에게는 불쑥불쑥 운전할 때 떠오릅니다. 분명 5학년의 나이에 석 달 넘게 어른들과 함께 병실을 쓰면서 목격했던, 들었던 잔상과 소리들의 영향일 겁니다. 처참했고, 슬펐고, 불안했으니까요.  


오토바이를 처음부터 타보려고 시도 조차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입니다. 수 만 번 성공을 해도 단 한 번에 생을 마감할 수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인생사 모든 게 기준을 넘는 '속도'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이 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속도, 말로 내뱉는 속도, 실천하는 속도등 평소 삶의 속도. 이것들은 내부의 나에게 차곡차곡 쌓아 두는 동안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 바로 당장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사회적 기준이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속도감을 이겨내지 못할 경우 문제로 드러나긴 합니다만.


속도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자가운전을 하는 경우입니다. 도로 위의 상황은 엄격한 규정과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상황에서 속도까지 높은 상황에서 서로의 안전을 위해 지켜져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스물 일곱 때부터 무사고 운전을 하고 있는 저에게 가장 위협적인 게 바로 안전거리 없이 뒤따라오는 차량들입니다. 앞지르기 차선이 아니라 주행 차선에서도 말입니다. 자신의 속도를 타인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는 폭력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의 삶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정해진 틀속에서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유지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 자유를 흔들려고 하는 겁니다. 자유는 누구나 빼앗기기 싫어하니까요. 자가운전만큼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영역이 일정시간 동안 밀접하게 연결된 인간의 행위도 없습니다.


채 몇 미리밖에 되지 않은 두께를 경계로 나와 타인이 철저하게 나뉘어 있지만 미세한 발목의 움직임, 손목이 돌아가는 방향, 정말 찰나의 순간에 내려왔다 올라가는 눈꺼풀,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라도, 길거리 야생동물 하나에도 위험합니다.  속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미와 온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운전자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적절한 속도로 자기 방향을 일정하게 잡습니다. 이리저리 헤매지 않습니다. 소리도 빛도 발산하지 않죠. 자신들을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허용합니다. 가벼운 눈짓과 손짓으로 먼저 가라, 고맙다 연신 타인과의 소통에 집중합니다. 


아마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손가락을 핸들에 튕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듯 온화한 표정의 운전자들입니다. 그들을 보면 온기가 느껴집니다. 당장 따라 배워야지 다짐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문명인이 지닌 수많은 아름다움 중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은 운전미라고.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품격이 그렇듯이 운전의 품격 역시 비싸고 멋지고 튼튼하고 새까 많게 가려진 자동차에서만 풍기지는 않으니까요. 운전미는 우리가 운전대를 놓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잃지 말아야 할 아름다움입니다. 나도 남도 안전하게 지켜내고 편리하게 살아낼 수 있도록 만드는 아름다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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