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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3. 2024

어부바, 두 번째 이야기

[오늘도 나는 감탄寫] 31

(.....이 글은 https://brunch.co.kr/@jidam/2107에서 이어집니다.)



안절부절못하던 몸과 마음이 시원한 에어컨과 편안한 좌석에서 노곤해졌습니다. 하지만 세 시간 가까이 동승을 하면서 마음이 편치는 않더군요. 어부가 기사가 몇 번이나 자신을 향해 버티듯 서 있는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계속 시간이 늘어나네요'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부바 기사는 5년간 베트남에서 모 기업의 주재원으로 있었다고 하더군요. 60개월 할부로 1억이 넘는 전자동 어부바 트럭을 구입해 보험사에 소속된 견인차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갓 넘었다고. 반복되는 출퇴근에 진전 없어 보이는 듯한 꼭 같은 매일에 가보지 않은 길이 솔깃한 유혹이 되는 건, 젊다면 더욱 강렬하지요. 


하지만 매달 180만원의 차 할부, 정부 보조금을 받고도 월 200만원의 차연료비. 20%에 달하는 콜센터 수수료. 매달 고정비용만 450만원 정도가 발생한다고 하면서,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했을까 후회된다는 말을 꽤나 유쾌하게 처음 보는 저에게 하더군요. 묻지는 않았지만 듣기 싫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토요일 늦은 6시 반까지 정비 중인 목적지 정비소에 도착한 후 차선 하나를 막고 서 어부바에서 '이영모 씨'를 조심조심 내려주었습니다. 그 사이 아내가 기사님 계좌로 비용을 보냈다고 톡이 왔습니다. 반대편 차선으로 차가 몰려드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목례로 대신했습니다. 


목례를 하면서 기도를 잠깐 했습니다. '매일 안녕하시라'라고. 도착한 정비소에서 이영모 씨를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불과 삼십여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이건 오일펌프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오일펌프가 고장이 나면 엔진 소리가 이렇지 않거든요. 마치 목에 가래 낀 듯 그렁그렁 거려야 하는데 소리가 깔끔해요. 가속 페달을 밟았다 떼었다 해도 출력이 떨어지지 않거든요. 자, 들어 보세요"


어부바 기사보다 대여섯 살쯤 더 들었지 싶은 젊은 분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하는 겁니다. 핸들 아래 센서 단자엔진룸을 열고 무언가를 끼웠다 뺐다, 절연 테이프를 풀었다 감았다 하더니 까무리한 얼굴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사장님, 사장님. 이것 보세요. 사라졌어요. 경고등이."


정비 기사는 목소리까지가 살짝 신이 나 있었습니다. 옆에서 다른 차를 정비하던 나이 지긋한 분도 덩달아서 그럽니다. '사장님, 오늘 큰돈 버셨네요'하면서. 계기판의 일시적 오작동이었던 겁니다. 오일 센서도, 오일펌프도 문제가 아니었던 거지요. 아홉 살, 20만 km를 달린 '이영모 씨'는 그 이후 오늘까지 열흘 넘게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에어컨을 끈 채 비상등을 켜고 한 시간 넘게 가다 서다를 하면서, 다시 한 시간 가까이 강남 한쪽 으슥한 골목 안에서 정비를 시도하면서, 또다시 세 시간 가까이 가다 서다를 하면서 몰랐습니다. 오일펌프 수리비가 최소 100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이영모 씨'의 이런저런 상태를 체크하고 정상 운행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총 3만 3천 원을 결재했습니다. 강남 그 정비소 사장님이 통화를 시도한 몇 군데 부품업체 중 한 곳이라도 문을 열었더라면 100만원 넘게 들었을 테지요. 후텁한 한여름 가운데서 얼얼한 눈덩이를 제대로 맞았을 테지요. 


집에 예상보다(?) 일찍 온 저를 안아준 따님, 아내에게 불지 않은 떡볶이를 건네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에 저는 명의 (기술)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그중에서 양심으로 사는 세 분을 만난 거구요. 앞으로도 그 정도 확률이라면 꽤나 괜찮지 싶어 지더군요. 

 

지금껏 지나오면서 저는 항상 세 가지 상태중 하나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위기에 빠져 있는 상태, (막막했던 위기의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막 벗어난 상태, 지나고 나서 보니 언제나 반복되는 듯한 밋밋한 평화가) 곧 위기에 빠질 전 상태였다는 것을. 


물론 이 상태들이 언제나 따박따박 하나씩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요. 게다가 사람에 따라 상태에 따라 위기라고 판단하는 기준도 같을 리 없지만요. 세 가지 상태가 각자의 삶에서 비율적으로 각각 얼마씩 차지하였을지, 앞으로 차지할지를 모르지요. 


흔히 위기를 기회라고 표현하는 게 '(다른 이의)위기가 (나의)기회'라는 의미는 아니지 싶습니다. 오히려 (지난번)위기보다는 (덜한)위기이기를 바라는 애틋함이 숨어 있는게 아닐까요. 정신적으로 위기 감내 능력을 키우는 게 나이를 들어 간다는 또 하나의 지표일테니까요.  


결국 위기 상황에서, 자신에게 남는 것은 '어부바'한 경험치이지 싶습니다. 땀냄새, 살냄새, 사람냄새를 얼마나 많이 나눴느냐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믿습니다. '어부바'가 (크고 작은) 위기를 대비하는, 극복하는 공감의 힘이라고요. 


그 힘은 (크고 작은) 위기가 지난 뒤 각자의 삶에 기대를 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 공감을 키우는 일이라고요. 매일 누군가의 등에 업힐 수만 있다면, 매일 누군가를 내 등위에서 좀 쉬어가게 할 수 있다면, 그날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날인게 분명합니다. 


-연민이 내 삶을 파괴하지 않을 정도로만 남을 걱정하는 기술이라면 공감은 내 삶을 던져 타인의 고통과 함께하는 삶의 태도다(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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