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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5. 2024

비와 당신

[노랫말싸미] 2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여름을 5월부터 9월까지로 설정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뜨거워져 한반도도 달아오르고 있다는 말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우리 일상에 직접적으로 변화가 일어날 조짐입니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죠. 장마의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장마 기간 내내 한반도에 엄청난 수증기가 공급되어서 더욱 후텁해졌습니다. 장마 기간 고르게 비가 내리는 날수가 줄어들었죠. 대신 폭우라고 말하는 몰아 내리는 비의 양이 늘었습니다.  


일 년을 따져 보면 장마 기간은 그리 길지 않죠. 하지만 몰아치는 비바람은 몸으로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뾰루지, 눈다래끼, 두통, 복통, 요통, 치통, 근육통, 발바닥 통증, 안압, 저릿한 손발, 갑자기 꿈틀거리며 말리는 종아리 근육, 눈 아래 살들의 떨림과 통증처럼.  


평소에는 통증이 없는 상태가 당연한 듯 받아들이다가 일이 많고 신경을 꽤나 쓰고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이런저런 통증들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크고 작은 통증들을 접하게 되면 통증을 못 느끼면 좋겠다, 는 비과학적이고 철없는 생각을 여전히 하는 게 사실입니다.


염증과 통증은 신호입니다. 예고이고 경고이고 돌봐 달라는 몸의 정상적인 아우성이죠. 선천성 무통각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거죠. 게다가 더위,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땀도 전혀 흘릴 수 없습니다.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없어서 발현하는 병이랍니다. 참으로 무섭습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비슷한 게 있어요. 더 무서운 거죠. 정상적인 몸의 아우성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몸도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내 몸이 나를 포기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지인들을 통해 무슨 병은 전혀 통증이, 신호가, 전조 증상이 없다네, 하는 이야기를 요즘 자주 듣게 됩니다.


저는 요즘에도 아침마다 계란을 삶습니다. 펄펄 끓는 물에 통통 튕기면서 삶아지는 계란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얇디얇은 계란 껍질이 흰자, 노른자를 꼭 끌어안고 삽니다. 자그마한 충격에도 금이 가고, 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웬만해서는 뜨겁고 차가운 것을 잘 이겨냅니다.   


어른 마음은 다 큰 계란 껍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깨지기도 쉽지만 쉽게 깨지기만 하는 것도 아닌 마음 말이죠. 자신만의 온도와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통증이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수십 번의 장마를 겪으면서 조금은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장마철 물난리를 대비하는 일차적인 방법이 배수구 정비입니다. 들어온 만큼 얼른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면 됩니다. 이 간단한 원리를 장마에서 배웁니다. 몸에 찾아온 통증을 약으로, 손으로 매만지듯 마음속에 들어 차는 통증을 얼른 내보내는 나만의 배수구 정비가 필요합니다. 맑은 날 말이죠.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 사랑한 것도 잊혀가네요 조용하게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 바보 같은 나 눈물이 날까 /

아련해지는 빛바랜 추억 / 그 얼마나 사무치던지 / 미운 당신을 아직도 나는 그리워하네 /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 바보 같은 나 눈물이 날까 /

다신 안 올 텐데 잊지 못한 내가 싫은데 / 언제까지나 맘은 아플까 _ 비와 당신<박중훈>



스물둘 아드님이 지난주 내내 흥얼거린 노랫말입니다. 오랜만에 들었더니 낮에 일을 보면서도 문득문득 저도 흥얼거리게 되더군요.

 

그립지 않은 것도, 사랑을 따위라고 표현하는 것도 다 진짜 마음이 아니죠. 전혀 마음속에서는 조용하게 지나가지 않죠. 그러기를 바랄 뿐. 얼마 전 첫 이별을 경험한 아드님의 마음일까요. 집에 와서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데, 묻지도 않는데 마음 한 구석에 그 아이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7080 정서인데, 노랫말인데 알아듣기 쉽지 않은 락을 자주 흥얼거리는 이십 대의 마음에도 가 닿는 게 (속으로는) 참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아드님이 마흔둘, 육십 둘이 되어도, 비만 내려도 문득 생각나는 노랫말일 겁니다. 저처럼. 그때는 사랑보다, 당신보다 '다신 안 올 텐데'라는 노랫말이 마음에 더 콕 박히겠지요.


"아드님? 노랫말을 핑계 삼아 아드님 마음의 껍질이 조금 유연해지면서도 단단해지길 빌어. 온통 콘크리트로 뒤덥힌 틈을 뚫고 자라나는 생명처럼. 마음의 배수구를 정비하는 너만방법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서 이십 대를 가득 채우기를 응원할게. 마음 일기를 써 보는 건 어떨까? 그 안에서 엄청난 노랫말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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