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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8. 2024

가슴을 울리는 노랫말

[노랫말싸미] 1

어제저녁. 밥을 먹은 뒤 네 식구가 모여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두 곡씩 틀었습니다. 식탁에 앉은 저는 텅 비었던 거실을 가득 채운 아드님, 그러거나 말거나 거실 한쪽벽에 딱 달라붙어 나란히 앉은 아내와 따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들 자신이 크게 틀은 노래의 다 다른 부분마다 살짝 눈을 감더군요. 가슴이 시키죠. 눈물 감으라고. 노랫말 한 음절 한 음절을 들이마셔 보라고. 깊이 천천히 내가 되어 보라고. 혼자여도 같이 있어도 살고 싶어 지는, 더 잘 살고 싶어지는 그 느낌을 느껴보라고.


걷고, 달리고, 쉬면서도 우리는 자주 이어폰을 낍니다. 어학 공부도 해야 하고, 누군가와 통화도 해야 하고, 영상도 봐야지만 나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나만의 공간, 시간을 만들기에 충분하니까요. 이어폰을 깜빡 잊고 나온 날, 그 시간과 공간이 아쉬웠던 적이 꽤나 있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유명 모대학 관계자가 공식석상에서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작년에 8명 뽑은 보컬학과가 3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고 말이죠. 2400명 넘게 지원했다는 이야기인데, 노래를 웬만큼 이상으로 하는 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장기 자랑하면 노래이고, 축제에서도 노래이고, 길거리 여기저기에서도 노래입니다. 전국 노래자랑부터, 복면가왕, 뮤직뱅크, 음악중심 등 수없이 많은 음악 방송들에 언제나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나는 화수분 같은 분야가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노래를 못합니다. 꽤나 잘하는지 알고 막 불렀던 그때. 같이 옆에 있으면서 박수 보내며 탬버린 쳐주고, 합창해 준 모든 이들이 보고 싶을 정도로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는 잘 알아요. 제 가슴속에 있는 리스트가 애창곡이 아니라 애청곡이(었다)라는 사실을 말이죠.


한해 한해 늘어나면서 줄어드는 저의 인생 속에서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잘해야 주변에 남는 이들이 많아지듯 노래도 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해야 할 것 같다, 는 말로 노래를 못한다는 핑계를 또 한 번 해 봅니다.


참 좋잖아요. 저를 대신해 가슴 뻥 뚫릴 정도로 외쳐주는 클라이맥스의 고음을, 한없이 내려 않는 제 마음을 헤아리는 듯 깊이깊이 파고드는 저음을, 세상에서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는 노래가 있어 살 맛이 나잖아요. 차 안의 블랙박스는 저를, 저의 노래 실력을 잘 저장하고 있을 테지만요.  


가슴에 자기만의 노래를 담고 사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잠깐 귀를 닫고 눈만 감으면 호흡이 안정되고 마음에 흡족한 평화가 스며들 테니까요. 그 장소가 떠오르고 그 사람이 생각하고 그때의 마음이 올라오니까요.


올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매는 같이 이 넓은 집을 훌쩍 떠나 자기 길로 떠나갈 예정입니다. 노래는 그런 거잖아요. 시간이 흐르고 사느라 내가 변해도 단박에 그때의 사람 곁에서, 그 공간에 있던 나로 데려가 주는 타입슬립 버튼 같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시간 될 때마다 서로의 가슴에 담고 있는 노래를 나눠보기로 해서 참 다행입니다. 남매들은 떠나도 노래는 남을 테니까요. 서로가 떠나도 서로에게는 항상 남아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어제 넷이서 두 곡씩 들려준 노래 중 가장 많은 하트를 받은 노래는 <노라조>의 [ 형 ]이었습니다.



- 마음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 바람이 널 흔들고 소나기 널 적셔도 / 살아야 갚지 않겠니 /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_ '형(노라조)'의 노랫말싸미



이런 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이런 형 비슷한 사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물 하나 아드님은 대여섯 살 때처럼 거실 한가운데를 가득 채운 채 흐느적거리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노랫말에 맞춰.


태평양 건너 외딴섬에서 일 년 넘게 했던 공부를 포기하고 이번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전과를 결정한 아드님의 미안해서 다부진 마음을 저와 아내에게 말하려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지더군요.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잠깐 우리 식구 넷의 진짜 애청곡 리스트는 '행복, 기쁨, 사람, 꿈, 바람, 이별, 친구, 운명, 마음, 꽃밭, 솜사탕, 엄마, 언덕, 정, 청춘, 별, 아침, 꽃내음, 안녕, 선물 그리고 사랑'이었던 가 봅니다.  


올해도 6월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벌써. 여러분은 어떤 애청곡 리스트를 가슴에 담고 더 뜨거워질 7월을 하루하루 채우실 건요? 저는 앞으로 노랫말에서 얻는 삶의 지혜와 위로, 용기를 차곡 차곡 쌓아 볼까 합니다. 송글송글songgulsonggul한 노랫말만큼 짧고 강렬한 글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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