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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9. 2024

세상 사랑스런 소리

[노랫말싸미] 4

[ 07. 19. 금요문장 ] 

지금 내 옆에는 세 사람이 잔다. 안해와 두 아기다. 그들이 있거니 하고 돌아보니 그들의 숨소리가 인다. 안해의 숨소리, 제일 크다. 아기들의 숨소리, 하나는 들리지도 않는다.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다르다. 지금 섬돌 위에 놓여 있을 이들의 세 신발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이들의 숨소리는 모두 한 가지가 아니다. 


모두 다른 이 숨소리들을 모두 다를 이들의 발소리들과 같이 지금 모두 저대로 다른 세계를 걸음 걷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꿈도 모두 그럴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는가? 자는 안해를 깨워볼까 자는 아기들을 깨워볼까 이들을 깨우기만 하면 이 외로움은 물러갈 것인가? 인생의 외로움은 안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안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 _무서록(이태준)


<<나의 문장>>

요즘 저는 눅눅하게 더워서 참 좋습니다. 눅눅하게 더우니까 스물 하나 아드님이 방학이고 방학이어서 태평양 건너 집으로 날아와 한달째 같이 살고 있거든요. 그 덕에 아내와 아들, 딸이 거실에 다 모여 잡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 있으면요 발코니와 거실을 구분한 얇디얇은 문 넘어서 셋이 다 모여 숨자랑 대회를 매일 밤에서 새벽을 내달리며 합니다. 서로 이어달리기라도 하듯, 돌림 노래라도 하듯, 서로 부여 안고 쓰다듬듯. 


다 컸지만 여전히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생각거리를 챙겨주는 걸 즐거워하는 아내의 숨소리가 제일 큽니다. 가슴에서 코를 통해 연신 신나고 경쾌하게 흘러나옵니다. 그 옆에서 덩치만큼 마음도 조금 더 커진 아가가 착 달라붙어 아내 가슴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습니다. 아내 숨소리를 감지하듯. 이 둘을 지키려는 듯 아드님은 웃통을 다 벗고 새벽 근무를 서네요. 제법 두꺼워지고 딱딱해진 가슴팍을 치켜세우고.  


거실을 내 귀를 마음을 하루를 가득 채우는 셋의 숨소리는 딱 한 달 뒤면,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이 한창일 무렵이면 들리지 않을 겁니다. 아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갈 거고, 딸마저 다시 날아갈 아들을 따라 태평양 건너 낯선 집으로 각각 날아가려 합니다. 숨소리 하나마다 크게 크게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지금은 아까워 죽을 것만 같은 매일 새벽마다 아내와 남매들의 숨소리를 차곡차곡 모아둡니다. 귀에다 눈에다 마음에다. 소리를 냄새를 온기를 글을. 언제, 어느 곳에서 건 눈만 감으면 소리가 다시 들리고 냄새가 금방 스물 거리고 몸에 온기가 진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글만 다시 들춰 보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도록 말입니다. 


동의하지 않아도 눅눅하게 더운 여름은 지나가 버립니다. 숨소리도 잊혀질 겁니다. 하지만 알아요. 내 숨소리는 안 들려도 귀 기울이게 되는 숨소리를 가졌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요. 그게 가족이고 식구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에게 아내에게 남매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제고 어디서건, 자기 숨소리를 먼저 잘 지켜내는 게 가족을 잘 지켜주는 것이라고. 들숨과 날숨 사이의 시간마저도 사랑을 쉬지 않는 것이라고요. 이 노랫말처럼. 


눈을 감으면 문득 / 그리운 날의 기억 /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 그건 아마 사람도 / 피고 지는 꽃처럼 /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 꽃잎은 지네 바람에 /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_봄날은 간다(김윤아)



크루님들은 요즘 어떤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무슨 소리에 마음이 녹아드시나요? 사랑에 빠지고 싶어 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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