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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7. 2024

같이 저장해요 1333

[오늘도 나는 감탄寫] 33

엊그제 출근길.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길은 충분히 젖어 있더군요. 길게 직선으로 뻗은 4차선 도로에서 1차선으로 옮겼습니다. 00 터널로 진입하기 위해 타고 올라가듯 감아도는 외길로 아침마다 지나가는 길입니다.


차량이 꽤나 있어 속도를 60km 이상 내기 어려운 길인데, 그날은 5분 정도 일찍 나섰더니 한가했습니다. 원래 속도대로 파란색 1톤 트럭을 뒤따라 1차선에서 언덕 위로 휘어진 일방통행로를 올라섰습니다. 그 순간 바로 앞 파란 트럭 브레이크 등이 급하게 빨개졌다 순간 사라지면서 차가 오른쪽으로 휘청거렸습니다.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었죠. 룸미러에 시선을 가져갔습니다. 다행히 뒤따라 튀어 올라오듯 하는 차량이 바로 뒤에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평소처럼 꼬리를 물고 타들어 달려왔다면 저와 뒤차는 추돌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꽤나 큰 상황이었습니다.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앞에서 휘청이던 파란 트럭은 곡예운전을 하듯 오른쪽으로 한번 더 비틀거리더니 더 빠른 속도로 언덕을 박차고 올라가 사라졌습니다. 배기구에서 검은 연기를 한 줌 정도 뿜어내면서 말이죠. 앞 차가 사라진 저의 시야에 그때야 들어찬 게 있었습니다.   


파란 트럭이 도로 위에 솟아 난 돌부리를 피하듯 한 그 자리에 꽤 커다란 동물 사체가 가로로 누워 있는 것을요. 뒷따라 오는 차량 행렬 때문에, 차 한 대 지나가는 일방 통로여서 차를 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몇 초간 멈추었던 저도 이내 움직여야 했습니다. 


평소처럼 앞뒤 차들이 속도를 조금 더 냈었더라면, 앞을 잘 보지 못하고 동물 사체를 타고 넘어갔다면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는 생각이 30여분을 더 달려가는 동안 들었습니다. 실제 찻길사고를 당한 동물을 피하려다 2차 사고로 목숨을 잃기까지 한 사례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엊그제 출근길에는 몸집에 비해 자그마했던 동물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촘촘하게 가지런한 새하얀 이빨이 살짝 드러날 정도로 입을 벌리고 달리던 속도로 부드럽게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운전자들을 향해 뭐라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도로 아래쪽을 향해 있던 얼굴이. 트럭 바퀴만 한 크기의 배가 블룩 한 고라니였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에 온몸이 젖여 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바로 죽은 듯했습니다. 다행히(?) 치명적인 외상을 입지 않은 듯 가지런히 누워만 있었습니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정지 신호가 되기를 바란 적이 몇 번 없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초록빛 신호등이 춤을 추듯 연동이 되어 한참을 달려야만 했습니다. 


계속 아른거리는 고라니 얼굴 때문에 안 되겠다 싶어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로드킬'하고 검색을 했습니다. 몇 개의 전화번호가 뜨더군요. 그중 1588-2504가 제일 위에서 보였습니다. 제 폰에 저장되어 있는 한국도로공사 콜센터 번호입니다. 


몇 번의 기계음뒤에 상담원이 바로 받더군요. '로드킬 신고를 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어느 '고속도로'냐고 묻더군요. 그렇게 처음으로 알게 된 번호가 1333입니다. 로드킬 신고 전용 번호더군요.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신고자와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되는 중'이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동물찻길사고'로 부르는 로드킬 사고는 최근 5년간의 통계치를 살펴보니 6천 건이 넘습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야생동물의 활동량과 나들이 차량이 동시에 늘어나는 5~6월이고, 시간 되는 당연히 시야 확보가 어려운 0시에서 오전 8시 사이의 시간대이더군요. 사고를 당하는 야생동물의 80% 이상이 고라니였습니다. 그런데 통계치는 고속도로에 국한된 겁니다. 아마 신고된 수치만 기록되었을 겁니다. 


야생동물들이 원래 거주지에 인간이 터널을, 도로를 만들면서 인간 세상으로 만들어 온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먹고 살만 해지면서, 동물들에게 미안해지면서 설치하기 시작한 게 생태통로죠. 전국에 설치된 생태통로가 142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국도나 방도에서는 이마저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죠. 전국의 모든 도로에서 일어나는 물찻길사고는 실제 통계보다 몇 배는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차가 필수가 된 세상에서 살게 되면서, 우리 주변에서 숨어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이동 통로는 점점 줄어들었을 겁니다. 먹고살겠다고 목숨을 걸고 낮, 밤 할 것 없이 이동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도 서로 그렇게 같이 살아가야 할 겁니다. 많은 동물보호 구간과 안전 펜스와 생태통로를 건설해(줘) 야만 겁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쾌적한 세상을 위해서 말이죠. 제 폰에 1333 번호를 하나 더 저장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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