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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15. 2024

바람이 알려주는 것들

[노랫말싸미] 10

잘 듣지 못하시는 장인어른은 입가가 깊게 파이게 미소 지으시면서 소화야~ 소화야 하십니다.  어제저녁. 열아홉 소화가, 아니 초하가 그럽니다. '아빠, 그거 알아. 원래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오빠랑 비행기 속에 있는 시간이야'


네. 어제가 남매 출국일이었습니다. 아드님 새 학교 시작 일정이 늦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한 병원 진료 일정을 잡느라 덩달아 소화야~ 소화야도 한 달 더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꽃 같은 초하가 어느 날 산책길에 능소화 더미 앞에서 그러더군요. '아빠, 난 이 꽃이 너무 좋아. 지치지 않고, 처지지 않고, 많고, 예쁘고'


연꽃의 아름다음과 끈기를 뛰어넘으라, 고 지은 이름 초. 하. 능소화의 꽃말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명예라는 꽃말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살면서 듣게 될까 /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 꽃이지는 이유를 /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 어느 곳으로 가는가

_ <바람의 노래>(소향) 노랫말 중 일부



오늘은 휴일이라 어제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리면서 은행 일을 마쳤습니다. 남매가 새롭게 시작할 공부를 위해 대출받은 돈으로 두 군데 외화를 송금하느라 말이죠. 다시, 텅 빈 통장을 들여다보는데 생각이 들더군요. 


'너희들도, 우리들도 지칠 때는 천천히 걷자. 걸으면 바람을 맞을 수 있거든. 그럼, 그 바람에 묻은 꽃향기를 맡아보자. 그리고 기억해 내자. 같이 맡았던 그 향기를. 능소화여도 좋고, 벚꽃이어도 좋아. 붉디붉은 장미여도 좋고, 개나리여도 좋아. 아빠가 지닌 작은 지혜로는 살아가다 지칠 때마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말이야. 그냥 나를 먼저 사랑하면서 오늘을, 하루를 잘 살아내는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거야. 그렇게 오늘이 내일이 되고, 그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고, 그 오늘이 다시 내일이 되는 거니까. 쌀로 밥 짓는 이야기지만, 조금 더 살아보니, 좀 더 일찍 실패해 보니, 좀 더 오래 고뇌라며 지나쳐 와 보니 이것밖에 없더라고.' 


은행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초록한 은행나무가 주르륵 서 있습니다. 어느 잎은 초록잎에 벌써 노르스름하게 가을이 입혀지기 시작하더군요. 계절은 날씨로 언제나 제 역할을 다합니다. 바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남아도 떠나도 우리 각자가 더 사랑할 일만 남았다는 것을. 9월 21일에는 분명 더욱 노랗게 물들 테니까요.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 나는 이 세상 /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_ <바람의 노래>(소향) 노랫말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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