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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ug 11. 2024

아하

[노랫말싸미] 9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은 아침에게 기회를 건네줍니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날. 어제 늦게까지 넷이서 조촐하게 미리 파티를 했네요. 한 잠을 늘어지게 다들 자고 있는 시각. 우리 집 알람 타닥이와 눈빛이 맞았습니다. 식구들 깨지 않게 조심스레 얼른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아, 그런데 바람이 너무 시원합니다. 오늘도 폭염이라고 예보가 되어 있던데요. 참 좋습니다. 며칠 전 입추 저녁에 살짝 불던 바람이 좀 더 시원해졌습니다, 분명.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훅하던 뜨겁고 습한 공기가 며칠새. 다리가 불편해 삐뚤거리며 조심스레 걷는 타닥이도 분홍빛 혀가 살짝만 들락거립니다.  


아하, 누가 푸른 하늘 보여주면 좋겠네 / 아하, 누가 나의 손을 잡아주면 좋겠네 / 아하 내가 저 들판의 풀잎이면 좋겠네 _ <아하 누가>(김민기) 노랫말 중 일부


오늘. 지금. 이 시각에 아, 이 바람을 온몸을 맞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싶어 집니다. 어지럽게 주차된 차 사이로, 다 진 능소화와 여름 장미 사이로, 그늘막 아래로 모여드는 바람은 오로지 저를 위해 불어 주는 거겠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바람만 보고 올려다본 이른 아침 하늘은 벌써 가을 이불을 가져왔나 봅니다. 


어제는 잠깐 미지근한 계곡물에 온몸을 담그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차를 타고 낯선 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말이지요.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몸속의 한여름을 스멀스멀 빼내고 단박에 가을바람, 겨울 냉기를 집어넣어 주더군요. 


아하 내가 저 시냇가의 돌멩이면 좋겠네 / 아하 내가 저 들판에 부는 바람 속에 아하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_ <아하 누가>(김민기) 노랫말 중 일부


햇살도, 바람도, 계절도, 당신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레 품어내야겠습니다. 내 안에서 평화롭게 어울려 하루, 하루, 하루 더 같이 안녕하는 그런 날이어야겠습니다. 민들레 홀씨만큼 가벼웁게 온 세상을 다 날아봐야겠습니다.  아하, 하고 받아 안고 양팔을 벌리고 서야겠습니다. 


내일도 불어줄 바람은 내 바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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