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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10. 2024

태양의 기회

[우리 동네 갤러리] 02

조금 있으면 남아 있는 또 한 번의 태양이 진다.

발톱 하나 빠지지 않고 깃털 하나 뽑히지 않으면서 비행을 마쳐 더 다행이지만 

여운의 햇귀가슴을 간지럽힌다.  


창공을 만끽하느라 누구 머리에 똥을 싸지르지는 않았을지

기쁨에 울부짖다가 불면의 밤을 보내다 깜빡 잠든 이를 깨우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의 앞길에 느닷없이 뛰어 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있으면 아까운 또 한 번 태양이 사라진다.

시지프의 언덕을 내려다보면서도 희망을 지키고 비행을 마쳐 다 고맙지만

오늘을 묻는 태양의 그림자에 내려앉으니 들여다 보인다. 


타버릴듯한 낯선 태양은 물론 달도 별도 다 따다 받칠 듯 한낮을 돌아치다 지쳐 

나를 둘러싼 뭉근하게 익숙한 진짜 태양들에게 막대먹게 내 감정을 쏟아붓지는 않았는지

그러고도 뻔뻔함을 실력이라, 자존감이라, 자존심이라 또 한번 우기지는 않았을지


눈만 감으면 매일 지는 태양은 언제나 찬란하게 떠오를 태양이 보내는 기회라는 것을 안다. 

잠깐 멈추면 날개가 없어도, 작아도, 건강하지 못해도 석양은 일출과 이어진 사랑이라는 것을 느낀다. 

심호흡만 해도 먹구름 뒤에서 어둠 속에서 폭풍우 너머에서 언제나 나의 태양들은 안부를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날개를 고이 접어 모으고 석양을 바라보며 은은히 다짐한다.

남은 태양 덕분에 내일이 다시 주어지면 

또 한번 태양이 지워지기 전에 사랑으로 안부를 묻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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