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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17. 2024

생은 구멍이다

[우리 동네 갤러리] 03

생()은 구멍으로 시작된다. 닫힌 구멍이 하나 둘 열리는 게 생의 최초다. 최초 이후 구멍은 연결을 위한 생의 나침반으로 마지막까지 작동한다.


들숨, 날숨이 드나들고, 잘 먹고 버리고, 감아도 떠도 세상과 타인이 보이고, 들린다. 바람과 햇살이 살가죽을 감싸고 털과 손발톱은 끊임없이 밀려 나온다. 


우리 별을 두 바퀴 넘게 휘감을 듯이 펄떡거리는 생 수많은 마디로부터 구멍과 구멍이 끊어졌다 연결되는 상태의 반복이다.  


시작과 달리 모든 구멍은 의지와 용기로 여닫힌다. 별반 다르지 않는 구멍들을 가죽 안에 몽땅 담아 들고 의지와 용기로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이는 과정이 인 것이다.

 

두껍게 얼어붙은 듯한 생도 그 깊은 심연에서는 연결을 갈망하는 나약한 의지와 두려움 가득한 용기의 물줄기가 구멍과 구멍 사이를 넘나든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환희에 가득 찬 생이란 제대로 들어 맞는 구멍을 찾아 뜨끈하게, 눈물나게 연결되었음을 느끼는 순간, 순간의 누적일 뿐이다.


모든 구멍이 의지와 관계없이 맥없이 풀려 버리는 시각까지 끊임없이 구멍을 만들고, 연결하느라 마음 시간을 쓰는 게 사는 이유의 전부다.  


구멍은 그 자체로 황량한 회색빛 숲 속에 벌겋게 내던져진 생을 위한 우주적 환대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까지 그 환대를 즐기기 위해 생의 심연을 끊임없이 들여다 보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 들여다 보며 즐기는 자신만의 절차를 갱신하는 것.


그러면서도 평범하게 행복한 상태를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게 유지하는 것. 수많은 선인들인 남긴 구멍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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