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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2. 2023

또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

사진: Unsplash의Chris J. Davis

토요일. 밤  11시. 어제는 많이 늦게 잠들었다. 오후에는 강남역 근처에서 합평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대학로에서 따님, 아내와 함께 걸었다. 붉은 벽돌 건물 앞. 암으로 죽은 그 개그맨이 갑자기 떠올랐다. 버스킹 하는 이들 앞에 서서 한참을 흔들거리는 따님과 아내. 그렇게 한참을 더 걸었다. 


지금. 일요일. 새벽 4시 반. 벌써 기온이 11도다. 글을 쓰는 이 공간이 따뜻하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다. 늦게 잠들었지만 가볍게 일어났다. 몸이 기억하는 중독 현상이다, 분명. 알람 10여분 전이었다. 아직,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안 일어났다. 아니, 타다다다닥~ 마루 구르는 소리를 내면서 댕댕이만 내게로 달려왔다. 까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굿모닝 하고 짧은 하얀 꼬리로 풍차 돌리기를 한다. 쓰담쓰담. 


포트에 정수 물을 담았다. 딸깍하고 아래로 버튼을 눌렀다. 금세 쎄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욕실을 들어갔다.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세면대 손잡이를 위로 올렸다. 조르륵 물이 떨어졌다. 쨍하게 차가웠다. 맹물로 세안을 서너 번 하면서 남은 잠꼬리를 쫓으려 해 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을 했다. '오늘은 저녁을 먹기 전에 달리기를 먼저 할까'. 주방에서 큰 새가 날개를 퍼드득, 퍼드득 하는 것처럼 포트 물이 과감하게 끓는 소리가 욕실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세면대 왼쪽에 약간 낮게 베이지 빛 욕조가 누워 있다. 그쪽으로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오른쪽 벽면에 매달린 샤워기를 집었다. 그리고 샤워기 손잡이를 위로 올렸다. 촤~아. 전혀 지치지 않은 물소리였다. 욕조 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샤워기를 더 높게 왼손으로 치켜들었다. 뒤통수로 떨어지는 미지근한 물이 온몸을 말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샴푸를 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이 잘 지나가지 않았다. 뻑뻑했다. 그래서 요즘은 트리트먼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진다. 60대 헤어디자이너의 조언이다. 그러는 사이, 베이지 빛 욕조 바닥에 검은색 연가시가 수십, 수백 마리가 떨어졌다. 매일 아침 그것들을 변기에 몰아넣고 저 지하로 미끄러워 뜨려야 한다. 


내가 쾌면(快眠)을 한 날은 휴대폰 알람 몇 분 전에 따님 방에서 안방으로 건너오는 타닥이의 경쾌한 발소리가 먼저 들린다. 피곤하고 몸이 무거워 아침잠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날에는 얼굴께에서 타닥이의 뜨끈한 숨결을 느낀다. 빈도수로 보면 대부분의 아침은 그 중간이다. 뛰어오는 소리는 못 들었지만 발 밑에서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순간 내 또렷한 의식이 시작된다. 하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게 보통이다. 그다음 행동을 기다리기 위해. 보통 침대 위로 가볍게 폴짝 뛰어 오른 타닥이는 바로 얼굴께로 올라오거나 자기가 올라왔다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내가 일부러, 또는 정말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면 얼굴께로 올라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기가 왔다고, 일어나라고, 아침밥을 달라고. 가는 숨소리가 보통이지만 때로는 급하게 반복해서, 막힌 숨을 입 다물고 내뱉듯한, 헛기침 같은 소리를 낸다. 일어나라는 거다. 아침밥 달라는 거다. 그런데 절대로 보채지 않는다. 내가 반응이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때로는 일부러 자는 척하면서, 숨소리에도 헛기침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조용히 침대를 뛰어 내려간다. 나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삐치지도 않는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아침밥을 포기한 채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가 버린다. 


정말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일요일 아침, 가끔 10시가 넘어 아침을 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녀석도 아점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맛나게, 신나게, 많이 먹지는 못한다. 내가 몸을 일으켜 세우면 꼬리를 마구 흔들면서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미 머리는 침대 밑을 향해 있다. 내가 일어나 다시 누우면 타닥이는 다시 얼굴께로 올라와 같은 소리를 낸다. 이 행동이 귀엽고, 재미있어서 부러 애달프게 해보기도 한다. 못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기쁨의 시작이다. 얼른 몸을 일으켜 침대 밑으로 발을 내려놓는다. 타닥이는 벌써 내가 걸어갈 길을 앞서간다. 자기 밥그릇 앞과 작은 아이 방문 사이 중간쯤에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반짝거리는 세 개의 까만 동전이. 안방을 나간다. 또르르륵~ 타닥이의 사료가 떨어지는 순간, 녀석은 잠깐 아내 곁으로 다시 쪼르륵 뛰어 들어간다. 지금껏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릇에 사료가 채워지면 금방 뛰쳐나온다. 그리고는 마치 새로 준 사료의 상태를 검사라도 하듯 몇 알을 물고, 안방 침대밑에 있는 자기 담요로 물고 간다. 거기서 몇 알을 깨물어 먹는다. 그리고는 다시 사료 그릇으로 와서 ‘이제 괜찮아. 먹어도 돼.’라고 스스로 다짐하듯 열심히 먹는다. 


타닥이가 사료를 씹어 먹는 소리는 마치 방금 튀긴, 맛있는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 느낌이다. 어제 대학로에서 따님, 아내와 함께 먹었던 그 치킨처럼. 내가 씹는 그 소리가 내 귀에 바로 연결되는 느낌. 오드득 오드득거리는 그 소리는 아침을 깨우는 두 번째 행복한 소리이다. 오늘도 신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정수기로 향한다. 물컵에 정수기 물을 절반을 받는 동안, 포트에서 물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쓰와와 아앙~~’ 처음에는 크게 거칠게 들린다. 그러다 이내 소리가 잦아든다. 물은 그 소리에 덥혀진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정수기에서 물이 컵 속으로 쪼르르~하고 쏟아져 내린다. 그때쯤이면 타닥이의 오드득 오드득 소리가 살짝 잦아든다. 사료를 거의 다 먹어가는 거다. 나는 끓인 물에 정수물을 반반씩 섞는다. 그리고 천천히 마신다. 내가 물을 마시는 몇십 초 동안, 타닥이는 매달려 있는 자기 물통에서 물을 빨아먹는다. ‘츕츕~ 츕츕~’. 내가 다 갈증이 풀리는 듯하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쯤, 타닥이는 내가 보이는 곳으로 나온 뒤 엉덩이를 주방 바닥에 착 붙이고 앉아 새까만 동전 세 개가 나를 바라본다. 혀로 입주위를 서너 번 훔치면서. 밥을 다 먹었다고, 물까지 먹었다고 알리는 거다. 그러다 때로는 타닥이가 너무 좋아하는 고구마를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한 새까만 동전 세 개를 흔들거리면서. 그러는 타닥이를 보고 나는 욕실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샤워기 레버를 위쪽으로 살짝 올린다. 그러면 시원한 물줄기가 욕조 바닥을 ‘촤아~’하고 때리며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욕실로 들어서면 타닥이는 다시 따님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마도 아내는 이 타이밍에 몸을 일으켜 세워 주방으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거다. 


어제. 합평회. 봄꽃 같은 이들이었다. 나처럼 그냥 쓰는 사람들. 쓰기가 좋아 쓰다 모인 사람들. 겨우내 그렇게 백일 가까이를 글 속에서 만난 이들. 같은 듯 다 다른 벚님들이었다.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가 여전히 자기 삶을 쓰면서 지켜내려 한다는 것. 그래서 솔직함이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써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내기 위해. 내게 주어질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타 다다다닥~ 그 소리에 섞여 가장 즐거운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 소리를 지켜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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