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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3. 2023

아내라는 정신적 작용

사진: Unsplash의Jonny Gios

어제. 스물 하나가 되는 아드님의 생일이었다. 태평양 너머에서 맞이하는 세번째 생일. 올해는 친구 가족네에 초대를 받았는가 보다. 처형이 짧은 축하 파티 영상을 보내왔다. 이런 저런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이 많은 아드님이 올해는 여럿과 함께 멋진 생일을 보낸 것 같아, 행복하다. 어제. 오후 4시. 막 자정을 넘긴 아드님에게 아내가 얼마 안되는 용돈을 보냈는가 보다. 그런데 생일에 용돈 받는 거 10대 까지만 하겠다며 1만원만 빼고 바로 다시 송금을 했더란다. 한 게 없는데 돈을 왜 받냐며. 아내는 이모, 누나랑 맛난거 사먹을 때 쓰라며 다시 보냈고. 그제서야 굿밤을 외치면 잠든 아드님. 같이 톡을 하던 따님이 그랬다. 오빠가 작년 10월 자기 생일 때 10만원을 보내줬었다고. 그래서 자기도 이번에 10만원, 할까 했는데 동생이어서(?) 5만원을 보내줬다고. 그런데 그 돈도 마찬가지로 1만원만 빼고 4만원은 바로 돌려줬다고. 


그 돈, 저 돈 다 우리 돈이다. 서로 용돈을 받아 쓰면서, 참 요긴하게 잘 쓰는 것 같아, 행복하다. 좋다. 다 잘 선택하겠지. 그 길에서 잘 먹고 잘 살아내겠지. 그러면서 지금 월요일 새벽. 일요일 한 낮일 그곳에 3년전 아드님을 데리고 갔을 때가 불현듯 떠오른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가 조금 너머 있었다. 사흘 내내 같은 루틴이다. 캐나다 이민국 앱에서 코로나 증상 체크 시간. '오늘이 당신의 자가격리 4일 차다. 기침, 발열 같은 증상이 있나'라고 묻는다. 증상은 없다고 체크했지만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깊은 잠을 자는 것도 아닌 상태가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2를 다니다 유학을 결정하고 날아간 아들의 공허와 불안을 음식으로 달래야 한다는 생각이 깊은 잠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맛있고 뜨끈한 게 몸에 들어가면 살맛이 나는 게 사람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태평양 건너 자그마한 목조주택 1층에 갇히고서야 지금껏 '뭐 먹을까'를 절실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스무 해 가까이 주말 세 끼, 평일 두 끼 메뉴가 아내 덕분에 결정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 닿았다. 난생처음으로 '뭐 먹을까'가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거다. 나 혼자, 내가 주도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이 된 거다. 끼니를 그것도 세 번이나 결정하는 건 스트레스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많은 상상력과 결단력, 실전 경험치에서 나오는 실천력이 만들어 내는 연속 동작이 필요했다. 음식재료 A와 B의 조합 여부, 조리 가능 여부, 조리 기구 상태, 기본양념 배합 등을 위한 실제 움직임이. 하지만 그 움직임보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맛이 나는지를 판단할 수가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     


나는 잘 먹고 잘 치우는 데 익숙하다. 아내가 엄지 척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물론 나처럼 학창 시절 내내 뚝딱 만들어진 집밥만 얻어먹으면서 공부만 하다 어른이 된 아내다. 그리고 이십 년 넘게 일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란 똑같다. 하지만 아내는 요천이다. 요리 천재. 전생에 내가 분명 나라를 적어도 두어 번은 구했지 싶다. 냉장고에 있었는지도 모르는 음식재료를 조합해서 새로운 메뉴를 '뚝딱' 만들어 낸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아내의 천재성은 후천적이다, 분명. 일단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걸 즐긴다. 그리고 음식을 먹는 나와 딸의 호응을 더 즐긴다. 무엇보다 뭐 먹을까에 늘 신경을 쓴다. 그렇게 가족에서 식구食口로 옮겨가는 모든 과정을 즐긴다. 메뉴를 같이 정하고 같이 만들고 함께 기다려 주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맞벌이니까 사 먹고 시켜 먹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다 먹는 게 더 싸다. 하지만 그럴때는 중요한 과정이 생략된다. 끼니가 요리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사라지는 거다.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는 데 꼭 필요한 식구들 간의 정신적 상호작용이 삭제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면 항상 누군가에게는 '뚝딱'이고, 누군가는 계속 일방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 된.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우리 식구, 우리 식구'로 부르면서도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듯이.     


나는 아내가 인정한 설천이다. 내가 설천이를 자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설거지를 핑계로 요리하는 아내 옆을 서성거린다. 대부분 아내의 요리는 머릿속에서 자기만의 레시피로 이미 완성된 상태다. 그 과정에 필요한 걸 찾아 주고, 다듬어 준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호응을 한다. '이건 몇 분을 데쳐? 아, 저거 먼저 따로 볶아야 하는 거야?'. '오~ 냄새 좋아’     


요천이 아내는 '@@@껄로'를 입에 달고 산다. 신혼 때부터 그랬다. 아내의 말로는 그 노란 회사가 착한 회사란다. 창업주의 마인드가 훌륭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잘 내고, 제품이 착하다고. 아내의 맛집 조건 중에는 가게 오너가 직원에게 대하는 태도, 오너와 직원들 간의 주고받는 말투, 표정, 직원들의 친절한 정도가 항상 우선이다. 그래야 그 집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친절하고, 사람을 먼저 챙겨야 좋은 사람, 좋은 회사,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그런 정직한 사람이다.     


아들과 함께 끌고 간 큰 캐리어 하나에는 아내 덕에 노란색 삼분 시리즈들이 가득했다. 바로 부어 먹는 카레, 데우기만 해서 먹을 수 있는 파우치 형태의 국, 찌개, 탕류, 네모 반듯한 스틱 형태의 고체형 양념류, 짜 먹는 튜브형 고추장 그리고 수프류. 격리기간 내내 펼쳐 놓은 캐리어 안은 그렇게 노란색 천지였다. 그것들 사이에서 즉석밥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누가 보면 마치 삼분 시리즈 마케팅을 위해 출장 온 사람처럼 보였을 거다. 그렇게 아내의 착한 회사 덕분에 사흘 동안 아홉 끼를 해결해 낸 거다. 노란색의 힘으로 격리기간이 즐겁게 줄어 들고 있었던 거다.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계절에도 음식은 제철 몸과 제철 마음을 만들 수 있는 정신적인 향락이다. 다시 멋지게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 에너지원이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누구랑 어떻게 ‘만들어’ 먹을까를 결정하는 것은 아주 소중한 정서적 교감의 기회이고 경이로운 정신적 상호 작용이다. 그 자체가 희망을 말하는 거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아들을 위한 마음에 더욱 아내가 그리웠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작용을 함께 나누는 파트너로서의 아내가.     


한국 시각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메시지를 주고받다 보니 냉장고 가까이에 있는 나보다 아내가 훨씬 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조합을 제시했다. 결국, 영상 통화로 냉장고 속과 캐리어 안을 다 비추어 보여주면서 만든 - 내가 움직였지만, 조합을 만들고 원격 요리를 한 건 역시 아내였다 – 3년 전 그날 아침은 볶음 고추장으로 간을 한 김치비빔밥이었다. 뚝딱 한 접시를 다 비운 아들이 엄지 척했지만 남은 서른 끼를 해결할 ‘일’이 걱정될 뿐이었다. 




3년전 2주간 갇힌 경험 덕분에 지금껏 아내, 따님과 한 끼 한 끼를 정말 소중하게 함께 선택하고 같이 먹고살고 있다. 음식은 제철 인간을 연습해 내야 할 식구들 간의 정신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확신하면서. 참, 아내는 수많은 음식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드님이 같이 있는 우리가족 톡방에는 절대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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