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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09. 2023

오늘 뭐 먹지? 쓰지?

참 친절한 분들입니다. 지난 번 단톡방에서 징징거리던 저에게 '글감'을 사로잡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쫌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많다는 건 강점이자 약점이지요. 지금도, 그 생각, 그 생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그런데 유독,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우는 거에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시작합니다. 그게 작심삼일이더라도. 초기 실천력이 강합니다. 학습 능력이 아니라 실천력 말이죠. 그런 맥락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재를 만들고, 수정하고, 또 만들고, 또 수정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죠. 살아가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가능성이 있는 몇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자주 지나다니는 도로 모퉁이. 뽀얗게 돌출된 주황색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미당. 아내와 함께 들어섰습니다. 연어와 육회만 파는 식당이었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홀. 또 다른 홀처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주방 안에서 불쑥 머리를 내밀려 주인장이 인사를 던졌습니다. 표정을 드러내 진 않았지만, 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주황색 두건, 까슬까슬하게 느껴지는 새치가 더 많은 턱수염. 흡사 화면에서 많이 본 무사 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어 하나, 육회 하나. 그리고 사이드 메뉴로 '치즈감자명란구이' 하나. 아내만 치즈감자명란구이를 안주로 맥주를 한 병 다 마셨습니다. 치통에 시달리고 있는 나 대신(?). 


라라쿠르 3기 톡방에서 들은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폰을 켰습니다. 카톡으로 나에게 보낸 톡을 확인해 봤습니다. '클로바 노트', 'stt', '말로 저장', '음성 인식'. 제일 앞에 쓰여 있는 키워드를 검색했습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녹색창 패밀리였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나에게는 '글감'을 모아두는 게 더 급하니까요. 설치를 하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아내를 내려주고, 다시 차를 돌려 달렸습니다. 학교 까지는 앞으로 30분. 그 노트를 켜 봤습니다. '여보세요'라고 혼자 말을 걸어 봤습니다. 아~ 그대로 폰 화면에 '여 보 세 요'라고 써지더군요. 혼자 웃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글감'을 모으는 방법을 찾아서? 아닙니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그러면서 나의 생각을 밀어내려는, 잊어버리려는, 내 모습이 가여워서. 기특해서.


차는 여전히 달립니다. 학교까지는 앞으로 20분 남짓. 라디오 볼륨을 0으로 돌렸습니다. 도로가 차를 흔들어 대는 소음과 진동이 되살아 납니다. 그 노트의 빨간색 음성 녹음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눈은 앞유리를 내다보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습니다. 막 내뱉었습니다. 아이디어도, 고민도. 한참을 그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10분을 넘게 그렇게 그렇게. 잠시였지만 짜릿한 해방감입니다. 플러스, 빨간색을 반복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8개가 넘는 메모가 만들어졌더군요. 


참 할 말이 많습니다.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가 않습니다. 8개의 녹음 파일은 글감이 아니라 내가 글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 글은 아니군요. 그냥 쏟아낸 말이니까. 어찌 되었건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되지도 않는 글을 이렇게 쓰자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싶어 졌습니다. 바쁘고, 산란한 와중에 모르는 이들에게 노크를 한 용기를 내었기 때문에, 라라크루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싶어 졌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나의 태도에 나 스스로 토닥이고 싶습니다. 나의 가장 큰 강점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면서.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얼굴은 상기된 채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럴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찐 감자를 으깨 달라고 부탁합니다. 약간은 파르스름한 찐 감자의 향이 달콤합니다. 그러고 보니 식탁에 치즈가 여러 장 올라와 있습니다. 아, 그 '치즈감자명란구이'라고 외쳤더니, 아내의 상기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정말 고마운 표정입니다. 아내가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할 때의 건강한 표정입니다. 그럴 때, 저는 무조건 맛있게 먹을 준비가 이미 다 끝나 있습니다. 실제로 무조건 맛있으니까요. 아내는 맛있게 먹어 본 음식을 흉내 낸다고 도전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흉내가 아니라 나에게는 그 음식보다 좋습니다. 창조된 새로운 맛의 음식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요천이라고 부릅니다. 



세 개를 개눈 감추듯 먹어 치웁니다. 방금 밖에서 돌아온, 마이야르 반응에 열광하는 딸이. 엄지 척을 외치는 시간도 아까워하듯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감자는 전혀 다른 식감입니다. 바삭한데, 명란과 치즈가 어우러져 있는 속은 그렇게 달콤하게 부드러울 수가 없습니다. 흐뭇해하는 아내를 보면서, 내가 대신 엄지 척을 보냅니다. 고마움을 그렇게 보냅니다. 결혼 전에는 공부만 하고, 결혼하고 난 뒤 음식을 처음 만들어 봤다는, 동갑내기 아내는 요천이가 맞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낮을 잊고 집에 집중하는 아내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나의 만 배는 넘는, 그런 고마운 아내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음식이 너무나 맞있습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식감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이번주 일요일 아침에는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브런치를 다시 준비해야겠습니다. 이제 커피의 맛을 알게 된 딸과 연하게 마시는 아내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우유 식빵을 사각으로 잘라, 우유 섞은 계란물에 살짝 적셔야겠습니다. 미리 낮은 온도에서 달궈 둔 팬에 올리브를 두른 후 식빵을 올리고, 갈색 설탕 한 스푼. 식빵 조각 위에 올라앉은 설탕이 절반 정도 녹을 때, 뒤집어서 다시 설탕 한 스푼. 그리고 식빵을 사정없이 납작하게 눌러 주어야겠습니다. 탄수화물과 설탕이지만. 우리밀로 갈색으로 스스로 위로 삼으면서 그렇게 미안함을, 고마움을 바삭하게, 달콤하게 전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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