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Feb 04. 2023

옹졸한 그리움

당신을 응원합니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한기를 느끼며,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새벽 장막을 갈기갈기 찢을 만큼 거친 쇳소리 가득한 엔진음에 몸을 실는다. '고객님'을 연신 외쳐야 하는, 그래서 몸보다는 마음이 더 고된 하루. 그 고됨에 대한 보상이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얼마 전 술 힘을 빌어 반년만에 전화벨을 눌렀다. 엔진음보다 더 크게 들린 몇 초간의 신호음. '당분간 고객님의 사정으로 착신이 금지된 번호'. 그리고 어제도 다시. 찻물 끓는 소리가 어두운 허공에 가득하다. 짙은 어둠이 은은하게 빛나는 은빛 방울 같이 흔들린다. 허공 속에서 나만의 조명을 받으며 오늘도 암막뒤에 숨었다. 그 사이사이에 모두가 잠들어 있다. 희고 아주 작은 심장만이 불투명 유리 뒤에서 이내 돌아선다. 어제 뽑힌 어금니 있던 좁은 틈으로 피비린내 나는 혀가 날름거린다. 헐어 버린 입속 구석구석을 피와 침이 범벅이 되어 마구 돌아친다. 쨍하는, 비릿한 쓰라림이 머리를 파고든다. 찻물을 한입 머금었다 삼킨다.


목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찌꺼기들을 느낀다. 그러면서 묻는다. 햇살 눈부신 5월의 아스팔트 위 맨발. 걱정. 다짐. 약속. 그 이후에 무엇에 흔들렸는지, 기다림에 지쳐, 일상에 파묻혀, 잊은 듯 살지만 잊히지 않는 그리움. 미안함. 두려움. 단호함. 이 모든 감정들이 피와 침과 세균으로 뒤섞여 식도를, 위를, 방광을 자극하는지. 새벽 나의 머릿속에 들어 찬 끈적한 이물감이 되는지. 오랫동안 이 좁은 새벽어둠의 허공 속에 숨어 있는 동안, 문득. 밝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움을 걷어 낼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을 나누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지금도 누군가가 나 대신 히어로가 되어 어둠을 몰아내기만을 기다린다. 나의 새벽이 너의 새벽과 이어져 있는 이 공간, 시간 동안. 찻물을 끓이기 시작해서 여기까지 속절없는 한 시간이 넘게 흐르는 동안. 왜 우리는 이토록 어두울까. 아니, 밝음을 애써 외면하는 듯 살아가는 걸까. 그러다, 문득 스스로 질문과 답이 뒤섞여 쪼글 해진 마음속을 요동친다.


두 번째 스무 살을 한참 넘어오는 동안 함께 했던 기억이 없다. 서로 어린 나이에 헤어졌다. 헤어져 떠난 그곳에서 첫 번째 스무 해를 살아 내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각자 싸웠다. 몸으로 싸우고, 외로움으로 지쳤다. 미안함에 오열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외면하려 도망쳤다. 그렇게 각자 먹고 각자 기도했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아니,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지 못했다. 그저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운명, 그 단 하나뿐인 것처럼. 두 번째 스무 살은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이들과 사랑을 시작했다. 새로운 운명에 대한 각자의 선택. 과거의 나를 철저하게 반성했다. 지금과 미래의 나와 우리를 위해 그렇게 또다시 각자 먹고 각자 기도했다. 일상에서 이어지는 만남도 과제로 여겼다. 그 과제를 아주 성실하게 해내면서 동시에 너와 나, 각자의 것들을 지켜내려 애썼다. 지금도 서로 뺏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가진 게 없어서 더 뺏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안부를 묻지 않는다. 무엇에 섭섭한 지, 미안하고 두려운 지를 바쁨, 아픔 속에서 헤집어 찾아봐 야 기억날 만큼 희미해지는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다 문득 또다시 핑계를 되면서 나중의 복수를 스스로 다짐한다.


삶의 구원을 위해 수없이 날아들던 메시지도 사라졌다. 새벽녘, 뜨끈한 순댓국의 돼지 냄새도, 껌뻑이며 횟집에서 모여 앉아 나누던 수다도 사라졌다. 그저, 그렇게 우리의 운명을 유지해 줄 히어로를 기다리기만 하는 듯. 대신 해결될 거라 믿는다. 몸은 지금에 있지만, 머리는 마음은 생각은 어제와 내일 이어 묶은 가느다란 실오라기 위에 위태롭게 걸쳐 있다. 써야 한다는 건, 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변명이다. 쓰지만 말하지 않는,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기 핑계이다. 쓰는 대로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써야 한다. 신에게 묻지만, 내 안의 신은 언제나 답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강요한다. 쓴 대로 살아야 진짜 쓰는 거라고. 무엇을 쓰는지, 왜 쓰는지를 지나가는 누군가가 갑자기 물어본다면 무엇으로 대답할 거냐고. 뭐 이렇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글로 주저리 주저리 하는 시간에, 가서 봐.라고 내 내면이 나를 읽어낸다. 하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렇게 무심한 듯이 다가가는 것 또한 생각과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변명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 변명을 만드느라 나의 새벽을 너의 새벽에 덮여 씌운다.


한줄요약 _ 그리움에 솔직한 내가 그립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해방 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