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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25. 2023

오늘을 떠납니다

침대로의 여행

짧지 않은 연휴가 끝났습니다. 쉬는 날은 언제나 짧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남겨두고, 세상밖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오늘 역시 나가자마자 집 가고 싶어 집니다. 늘 가던 길을 벗어나 걷고 싶습니다. 이 길로 공항으로 내 달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는 건, 걱정 마세요. 아주 아주, 일상을 잘 버티고 있다는 증명이니까요. 달려오는 힘이 더 달리게 하고, 멈춰 얻은 에너지가 더 멈춰 있을 수 있게 합니다. 일을 하면 쉬고 싶고 쉬면 일을 하고 싶은 거니까요. 나오면 들어가고 싶고, 들어가면 다시 나올 궁리를 합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 사이 시간과 공간의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 게 여행입니다. 그래서 나의 일상을 잠시 벗어나 떠나지만 그것 역시 다른 이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게 여행인 겁니다. 늘 먹고사는 일이 더 급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화려한 조명을 동경합니다. 그곳에서 인정받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먹는 것으로 사람으로 위로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삽니다. 그 과정에서 동시에 언제나 나만의 완벽한 어둠을 갈망합니다. 망막에 단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을 때 비로소 나를 직면하는 연습을 갈구합니다. 세상 속에 내 던져진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그곳에서. 


그곳에서 나는 세상 속 나를 안전하게 숨깁니다. 굳이 네 개의 다리와 헤드레스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폭신함이 안락한 건강을 상징하지는 않습니다. 클리네 Kline. 그저 나를 눕힐 수 있으면 됩니다. 공정하고 평등한 본질입니다. 그곳에서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나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면 됩니다. 그렇게 그곳은 나와 꼭 닮아가면 됩니다. 네모 반듯해도, 동그랗거나 세모여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모양이란 게 내 것도 남의 것도 다 나의 선택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닐 테니까요.


그곳은 사랑하는 이의 당당한 어깨입니다. 아늑하고 좋은 향이 넘치는 마음입니다. 한없이 따뜻함에 자연스레 눈이 감기는 사랑입니다. 끝없이 가라앉는 나를 끌어 올려주는 튼튼한 두레박입니다. 마음껏 울어라, 괜찮다 다독여 주는 깊디깊은 젖가슴입니다. 그렇게 그곳은 나의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매만져 줍니다. 내 마음 나보다 먼저 알아주고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나도, 너도, 가족도 그곳에서 태동되었습니다. 그 모양을 그대로 닮아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냅니다. 때로는 한없이 딱딱하지만, 나는 압니다. 만지고 싶게, 쓰다듬고 싶게 나를 언제나 부드럽게 기다린다는 것을. 나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얼굴을 파묻고 새로운 나로 거듭날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 준다는 것을.



'오늘도 고생했네. 쉬어, 푹 쉬어'



'내일도 나가지? 잘 챙겨 먹고 너무 애쓰지 마'




무심한 듯 하지만 결코. 먹고사는 일에 바빠, 내 마음이 바빠 순간순간에 잊힐 뿐입니다. 나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내 생명의 놀이터입니다. 그렇게 그곳에다 나를 숨기고 싶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매일의 오늘을 시작하고, 항상 나의 어제를 기억해 줍니다. 그곳에 오늘도 나를 뉘입니다. 어둠 속에서 맞이하는 나를.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일상을 채워주는 많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시원하고 서늘하고 따듯하게 그리고 포근하게. 온 세상의 안락함이 네모, 세모, 동그라미 그 안에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어릴 적 느꼈던 뜨거움은 내 생명이 움트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후끈거리는 등과 쨍한 코끝이 끝없이 이어진 단단함을 느끼며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처럼 그때의 오늘을 살아내게 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나의 육체를 뉘 웁니다. 판판하게 놓고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더듬어 줍니다. 그러면서 육체와 마음이 조합된 영양제를 응축시킵니다. 적당히 머물면 꽤나 많이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잘 쓰라고 말없이 응원합니다. 더 미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말라고. 알면서도 망설이는 건 당연한 거라고. 내가 나로 사는 당당함을 지켜낼 힘을 기르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 속에서 나의 환희에 찬 종말을 예고합니다. 차가움을 아픔으로 슬픔으로 미움으로 느끼지 못할 때 가장 편안한 자세로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끝을 찬란하게 맞이하라고. 이제 편안하게 나를 숨기라고, 영원히 나를 지우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라고.


그곳은 훌륭한 만찬보다 더 나은 기쁨, 안락함, 쉼을 제공합니다. 팔과 다리, 심장, 간, 뇌, 손가락, 발가락 마저 쉬게 해 줍니다. 그래서 세상 어떤 맛집보다, 어떤 뷰보다도 훌륭한 안정입니다. 휴식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나를 온전히 숨겨 놓을 수 있는 그곳에서 나는 오늘을 떠납니다. 나의 시작과 끝을 이어주는 곳으로. 위로와 격려가 넘쳐나는 곳으로. 오늘 한낮의 나는 오로지 이곳에서 출발한 나입니다. 나를 챙겨서 온 힘으로 세상 속으로 뛰쳐나올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따스한 온기로 내가 나 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곳에서 나는 어제를 기억해 냅니다. 오늘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내일을 계획합니다. 내 일을 궁리합니다.  


그곳은 나의 현실이 꿈으로 이어지는 찬란한 입구입니다. 그리고 다시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출구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여행이란 언제나 인생 내내 또 다른 그곳을 찾아 헤매는 것뿐입니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도 결국은 그곳에 내 몸을 맡기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풀 먹여 뻣뻣한 새하얌으로 치장한 그곳은 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곳이 아닙니다. 내 앞을 지나 간, 내 뒤를 쫓아 온 타인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공유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나의 보금자리에 있는 그곳은 나만의 입구와 출구입니다. 그곳이어야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위로받고 격려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짐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는 사람, 사랑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더 쓰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오늘도 나를 잘 숨겼다가,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오늘도 애쓴 당신, 얼른 달려가 당신만의 그곳으로 몸을 던져 넣으세요. 당신을 정성껏 안아주세요. 그리고 남은 힘을 다해 소리치세요. 오열하세요. 소곤거리세요. 다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세요. 나와 당신의 그곳으로의 여행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한줄 정리 _ 일상이 여행입니다. 그 출발점이 침대이고, 도착점도 침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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