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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16. 2023

네이밍에 대한 이해

네이버 아니고 naming.

처음으로 '네이밍'에 관심을 가지고 된 계기는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큰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태명부터 이름까지. 정해진 기간(?) 안에 이름을 지어야만 했지요. 며칠을 끙끙거리다, 지금의 이름을 직접 지어, 하사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운명의 시작이지요. '너는 내 운명, 너도 너의 운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책을 통해 찾아보고, 알아보면서.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아, 이렇게 지어진 이름이 평생을 그렇게 불리는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게. 이름을 짓는다는 건, 어떻게 불린다는 건 중요한 아주 아주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지금은 이전보다는 쉽게 개명을 할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가족이라는 운명 같은 팀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가끔 나도 개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자부심을 갖는 내 이름, 이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그 이름. 성. 관.  이룰성에 벼슬관. 벼슬을 이뤘답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우리 어머니에게는 선생이 벼슬인 거죠. 오십여 년 전 당신의 '네이밍' 덕분에 큰아들이 잘 먹고, 잘 산다로 스스로 자부하시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 이름이 공적으로 불릴 때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 아주 공손한 분들이 전화상으로, 내 앞에서 또박또박 다시 한번 확인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그때마다 '관 짜는' 사람이 됩니다. "네? 성짜 광짜시라구요?" "아니요. 성. 관이요" "아, 네. 네. 윤, 성짜, 관짜 시라고요!". '뭐 하라고? 관을 짜라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아들 딸인 그분들은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대화 끝에 흠흠 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헛기침을 하기 되는 건 사실입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어머니의 자부심을 흔드는 게 귀찮아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어 이렇게 내 이름으로 잘 살아가고는 있습니다. 


8년 전에 우리 집에 온 댕댕이는 '코코'입니다. 딸아이가 열 살 때 울며 불며 데려오자고 해서 식구가 되었지요. 길을 가다 보면, 동영상을 보다 보면 참 흔한 이름입니다. 아마 딸도 그렇게 머릿속에 남아 있던, 부르기 편한 단어 중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걸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이유를 대지 않았던 겁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댕댕이가 자기 이름에만 반응한다는 것이지요.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이름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요.

여기에 댕댕이게 들어있습니다


다소 뜬금없지만 지금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난 참 웃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언제나 유쾌함이 묻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겁니다. 미련한 미련입니다. 하지만 진심입니다. 누구나 웃기고, 실없는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다가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아주 가벼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라크루 3기에 평소의 행실(?)과는 다르게 앞뒤 가리지 않고 단박에 신청 클릭을 눌러 버린 이유입니다. '가볍게'라는 네이밍에 꽂힌 겁니다. 그저, 그거 하나뿐이었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시간이 흘러, 때로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알고 보니'라는 단서를 앞에 붙이고서야 편안하게 이야기를 건넵니다. 우선, 직업에서 기인하는 이유입니다. 항상 홍익인간의 이념을 널리 퍼뜨리려는 것 같은 선생 말투. 나는 그리 살지 못하지만, 공적으로는 그리 사는 것처럼 흉내라도 내야 하는 선의의 이중성. 매사에 열심히, 너무 열심히 살아내려고 애쓰는 게 다 보이는 표정, 인상. 인간은 누구나 그러잖아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동경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안 해본 것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발동합니다. 여우가 바라보는 포도입니다.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보면 쉽지 않아요. 저도 언제부터인가 그러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내가 선생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정직하게 생기지 않았다면?' - 아, 죄송합니다. 정직하지 않게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는 사실, 깜빡했습니다 - , '내가 지리 말고 뭘 잘할 수 있지?'


에구, 너무 돌아갔네요. 다시 본론입니다. 심박하면서 함축적이고 중의적인 카피와 키워드에 관심이 폭발한 건 십여 년 전부터 학교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관련' 업무라고 했지만, 관련이 없을 수도 있네요. 나 스스로가 관련 있다고 강조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학교의 교육방향을 잡고 거기에 맞게 많은 교사와 더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하게 유도하는 게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게시판에 대자보를 걸고, 홈페이지에, 링크로 프로그램을 알려내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제품을 파는 광고 카피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클릭하고 싶은 관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기 좋은 게 먹고 싶은 겁니다. 


특히, 학교는 '새로운 관심'에는 별 관심을 두기가 쉽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요구가 다 다르고, 입결 - 대학 입시 결과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 과 같은 뚜렷한 결과가 단시간에 나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간만 가면 잘 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리는 학교뿐만 아니라 거대한 조직의 생리입니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이 아닌 이상. 그래서 거의 매일 관을 짜는 내가 이후에 역할을 맡지 않더라도, 예산 지원이 없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그런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하는 교육활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큰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밍은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로 불리는 게 중요하듯. 많은 시간을 그렇게 함께 공감하고 그렇게 불리면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정신이 통으로 전달되는 것에 전율까지 느낄 정도의 네이밍을. 그렇게 시작은 순전히 나의 고민에서 출발한, 자식 같은, 내 자식의 이름을 짓는 심정으로 한 네이밍 몇 가지입니다. 


 ▫레드(R.E.D)단 ... 도서관 업무를 담당할 때 연간 책 읽기 학생 운동을 펼치면서 만든 독서단입니다. 집에서 화장실에 놓여 있는 디퓨저를 보고 떠올랐습니다. Reading Energe Diffuser

 ▫배꽃제 ... 교내 학생 축제입니다. 배움이 꽃피는 축제라는 의미입니다. 노래도 춤도 그리고 사회 보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모두가 배움이라는 것을 모두가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별꿈터 ... 학년말 학생동아리 페스티벌입니다. 학교가 별별 꿈을 가진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부바 ... 학교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과 희망 교사들의 상담 멘토입니다. 업거나 업히는 일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어부바'입니다. 


그리고 친구 3종 셋트가 있습니다. 우리의 라라크루처럼. 한 배를 탄 크루이지요. 

 ▫연수친구 ... 교사 간 연수 팀워크입니다. 흔히 개별적으로 듣고 개인적인 실천에 그치는 문화를 좀 더 생산성 있게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표현한 용어입니다. 지금은 흔하게 공적으로 쓰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수업친구 ... 교사들의 수업 공개를 소수의 팀으로 진행할 때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그 팀 내에서 수업을 서로 보고, 보여주고, 나눔을 가지면서 노하우는 물론 학생들을 공유하는 수업 공유 친구입니다. 

 ▫교실친구 ... 몇 반의 담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제안한 표현입니다. 학생끼리는 연결이 되어 있는데, 정작 담임들끼리는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담임들끼리 한팀이 되어 보자는 취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크루가 다시 등장합니다. 올해부터는 제 수업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을 크루라고 불려야겠다 싶어 바로, 적용합니다. 역시, 라라크루 3기 덕분입니다.

 ▫한지크루 ... 작년부터 시작된 과목 선택으로 올해 한국지리를 선택한 학생들 78명은 모두 한지라는 한배를 탄 승선원, 친구들입니다. 그래서 팀워크를 통해 서로 가르치면서 같이 배우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래는 3월에 만나게 될 한지크루 2기에 보내는 활동지 속 인사말입니다.

 

 ▫달공 ... https://brunch.co.kr/@jidam/396  https://brunch.co.kr/@jidam/397 에서 흥분해서 자랑했던 한국지리 수업을 위한 활동지 이름입니다. pdf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업용 활동지인데, 그 표지에 머리말에 달공, 달공하고 붙였습니다. 어차피 할껀데, 이왕이면 달달하게 공부해 보자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이 말해주지요. 달달한 공부의 feat.은 '단내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1월 첫째 주 금요일, 69회 졸업식을 끝으로 우리반 34명의 아이들이 자기 갈길로 첫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3년 만의 대규모 졸업식이라, 앉을자리는 물론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기쁨이 넘쳐 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인사말을 올렸습니다. 돌림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반톡에 말이죠. 그런데 한 학생이 부탁을 해 왔습니다. '다 같이 오늘도!!! 해주세요 쌤' 하고. 그래서 마지막 종례를 다시 한번 반톡으로 했습니다. 


  ▫예쓰겠습니다. 항상 긍정yes의 마음으로 매사에 애써보자는 의미입니다. 애쓴다는 말이 턱 하고 막힙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렇게 애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아프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남는 게 이기는 거라는 걸 실천하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몇 시간 못 자고 매일 나오는 아이들에게, 해야할 건 많고,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해도 해도 잘 되지 않는 열여덟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건 무책임한 여유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예쓰의 마음으로 애써보자고 다독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키워드를 만들 때는 나도 모르게, 아무리 야근을 하면서, 또는 새벽에 일어나더라도 힘이 솟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습니다. 신이 납니다. 즐겁습니다. 누가 시킨 업무도 아닌데 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카피, 단어들을 구경하면서, 벤치마킹의 유혹에 늘 빠집니다. 난 무엇을 팔려고 하는 걸까요?


유독한 당신... 통신사 광고(유플러스를 구독한 당신) / 가꾸는 동안...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새로 개업한 피부관리숍 / 품격, 감격, 자격... 롯데건설 요즘 광고 카피 / 눌은밥... 가격 싸고 마시는 치킨 / 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친구네 집 가는 길가에 있는 정육점 / 무~지 먹고 싶은, 지금도 무~지 생각나는 무지방 커피 믹스... 배우 정경호의 커피 광고 / 바쁜 게 바른 건 아니죠... 어느 공익광고 / save 더 children...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하는 데 동참해 달라는 save the children 호소문 / 아라치... 아이 라이크 치킨 / 회뜰날... 자주 가는 우리 집 앞 횟집 / 오늘 우리 집 비어... 장모님 댁 앞 길 건너 호프집 / 아기타스... 도로에서 우연히 만난 내 앞차 뒷 유리창에 새겨진 문구 / (결) 초보(은)... 초보에 대한 배려에 결초보은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초보운전자 경고(?) 문구 / 친구간에도 사람간에도 ***이 필요합니다... 간장약 광고 / 귤로장생... 동네 마트에서 팔던 어느 지역 귤 상자 제품명 / 기본을 지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공익광고 / 설(레는 그) 날... 롯데마트 올해 설날 광고 카피 / 하(나뿐인) 우(리집) 스(토리)... 모 방소사 프로그램명 / 소(중한 진) 심... 공익광고 / 지(원하는) 금(연) 프로그램... 지금 바로 시작하자는 금연 캠페인 / 더 나은 리얼을 위한 리허설... 어느 기업(?)의 광고카피 / 한번 더 한발 더... 공익광고  / 오늘도 야무지게 에코에코에코에코 한 하루... 개그우먼 김신영의 공익광고  


이렇게 관심을 두다 보니 마음이 움직이고 실제 제 삶의 조금만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대장내시경 실험입니다.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두 그룹의 차이는 대장검사 이후에 있습니다. 한 그룹은 대장내시경 검사 후 바로 내시경 호스를 제거합니다. 하지만 다른 그룹은 5분 정도 있다가 제거합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다음에도 이런 방식의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고? 결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5분 정도 있다가 제거한 그룹이 바로 제거한 그룹보다 2배가 넘게 긍정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요?


지금껏 네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이밍은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소속감에 대한 별칭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감에 대한 애칭입니다. 그 소속이 가족이고, 지인이고, 동네이고, 직장이고, 동호회인 것입니다. 모두 다 소속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곳입니다. 물론 밥벌이 때문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개인적인 영역에서 자발적인 팀워크의 발휘는 언제 가능할까요? 그건 바로 이전 팀워크에 대한 긍정적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주 작은 성공에 대한 좋은 기억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랑하고 싶은, '그때'의 추억입니다. 대장내시경의 고통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고통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순간,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겁니다. 고통이 잦아들고 희열로 바뀌는, 아주 작은 성공의 경험, 좋은 추억. 나의 자발적 팀워크는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마음을 다해 정성껏 불러주고, 사랑으로 내가 그렇게 불려서, 온 세상이 자발적 팀워크로 넘쳐나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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