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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15. 2023

눈썹 그리고 렌즈

"자기야?"


일요일 아침.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나를 찾으면서 안방으로 왔다. 그 뒤를 눈이 반쯤 감긴 따님이 조르르 따라와 나에게 안겼다. 따뜻한 목덜미를 내 목에 척 걸친 따님을 안으면서 말했다.


"응? 왜?"

"여기, 침대 끝에 좀 누워봐. 아니, 앉아 봐". 


그렇게 작은 사건(!)은 시작되었다. 살짝 꺾인 듯한 분홍색 칼, 가위 뭐 이런 걸 들고 온 아내. 글 쓰는 베란다 [토필]에서 안방으로 건너와 침대에 걸터앉은 나를 보며 왠지 모르게 설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묻지는 않는다. 설레는 얼굴이면 되니까. 그렇게 아내는 걸터앉은 나의 눈썹을 쓱쓱 거리며 다듬기 시작했다. 원래 내 눈썹을 다듬는 건 따님의 놀이 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이팔청춘인 지금까지도. 자기꺼 다 그리면 와서 내 눈썹을 만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엉덩이 착 붙이고 나를 바라보는 반려견 코코가 되는 게 기분이 참 좋다.


따님과 아내님은 자주 나의 눈썹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정작 나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눈썹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우선, 둘의 의견은 내 눈썹이 너무 연하다는 거다. 이마를 항상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 나는 더 그렇게 보인단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아, 여기가 눈썹이구나' 싶단다. 안 그래도 봐줄 게 별로 없는 평범한 얼굴인데, 안경까지 썼는데, 거의 없는 눈썹이 인상을 망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둘이 더 걱정이다. 그다음. 그나마 손가락으로 잘 따라가다 보면 있는 것마저도 귀 쪽으로 갈수록 밀집도가 더 떨어져서 끝부분은 아예 끊어졌단다. 마지막 문제. 눈썹 자체 발육 상태가 매우 지저분하다는 것. 마치 코털이 마구마구 삐져나와 사람 자체가 지저분해 보이는 정도로 눈썹이 몇 가닥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서 삐죽거리면서 돋아나 있다고. 


"아, 아"

"가만있어봐. 잠깐만"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다 둘 다 나를 둘러싼 자체가. 따뜻했다. 게다가 눈을 꼭 감고 아내의 칼질을 느끼면서 있으니, 솔솔 졸음까지 오는 듯했다. 그렇게 한 10분이나 아내는 내 얼굴과 눈썹을 번갈아 뚫어져라 쳐다봐 주었다. 같이 살면서도 얼굴을 그렇게 오래 보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얼굴, 아니 눈썹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는 사실 관심에 없이 엄마 가슴에 파묻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기분, 딱 그거였다. 


"아!", "오!"


잠깐의 따뜻함에 빠져 있는 그 끝에서 들린 아내의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탄식 소리에서 감탄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따님은 나와 아내의 얼굴 맞대기를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자기 방으로 화장실로 다시 우리 앞으로 왔다 갔다 했다.


"역시, 사람은 눈썹이 인상을 좌우해"


계속 눈을 잘 감고 있으라는 아내의 부탁 끝에 잠깐, 좋은 징조였다. 내 인상이 향상(?) 되었다고?

하지만 이내 아내와 따님의 입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


"아~"


 거울을 봤다. 어, 그런데 꽤 깔끔해져 있었다. 삐죽삐죽 한가닥, 두 가닥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던 것들이 가지런히 모양을 잡아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특히 눈 바로 위 라인은 해변을 따라 흘러가는 바닷물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미간 쪽은 도톰하고 귀 쪽으로 갈수록 얇게 출렁거리는...... 인 줄 알고 보니, 끝부분 특히 왼쪽 눈썹이 사라졌다. 그나마 '여기가 눈썹'이라고 볼 수 있었던 흔적마저 싹둑. 큭큭거리는 따님 웃음소리에 섞여 이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안 되겠다. 자기, 문신하자. 문신"


잉? 문신?


어제 퇴근하는 아내를 태워 오는데 그런다.


"자기, 제자들이 늦은 세배 하러 언제 온다 했지?"

"응, 목요일"

"그럼, 그날은 술을 먹을 테니 안되고, 금요일, 금요일에 하자. 워크숍은 언제랬지?"

"다음 주 수목금"

"아, 그랬지? 그런데 그건 알아 둬. 눈썹 문신하면 한참은 숯검댕이야. 일자 눈썹으로. 괜찮겠어?"


"응? 엉? 응. 그, 그래. 괜찮아. 앞머리로 가리고 다니면 되지?"

"그래, 그런데 가려질 정도로 그렇게 연하지 않아. 그냥 시커먼 손가락 하나씩 올라가 있는 것 같을 텐데.... 자기가 결정해!"


아내는 단호했다. 나보고 결정하란다. 오래전 아내가 눈썹 문신을 하고 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조만간 아내가 다니는 용(!)하다는 피부숍에 가야 할 예정이다. 


도서관에서 따님을 태워 오는데 그런다. 

"아빠, 눈썹 문신 하기로 했어?"

"응"

"그런데, 아빠는 하는 게 좀  맞긴 한대, 하긴 해야 하는데. 느끼할 거 같은데"

"잉? 아빠가 느끼하다고?"

"응. 아빤 자연 쌍꺼풀도 있으니까.... 연하게 해. 아주 연하게 해 달라고 해"


 따님은 아주 자주, 나를 타박했었다. 이유는 유전자의 힘. 초등학교를 가면서는 구강구조 때문에. 중학교를 가면서는 눈썹과 수학 때문에. 나 때문에 본인이 그렇게 생겼다고, 못한다고 말이다. 나는 내가 익숙해져서 괜찮은데 우리 집 두 분은 그렇다. 정작 나를 더 닮은 아드님은 별말 없이 잘만 사는구먼, 했다. 결국 두 남매의 구강구조는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비용을 들여서 대대적인 보수 과정 끝에 가지런히 잘 재탄생을 했지만. 그런데, 눈썹만큼은 따님이 나를 빼닮긴 닮았다. 그래서, 열심히 눈썹을 그리고 다닌다. 그러면서 내가 자꾸 신경 쓰였나 보다.


한 이 주 전에 생전 처음으로 거금을 주고 아내가 다니는 안경점에서 노안용 렌즈를 구입했다. 일회용이었다. 중2 때부터 안경을 썼지만 내 눈은 여전히 안경을 벗어도 운전도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문서 작업을 할 때는 꼭 껴야 할 정도로 짝짝이 시력이다. 몇 해 전부터는 휴대폰 글씨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다초점 렌즈를 착용한 지 4-5년 된다. 하지만, 안경을 끼는 사람들은 다 알 거다. 불편하다. 특히, 겨울에는. 바깥에서 차 안으로, 건물 안으로, 사무실로 들어갈 때마다. 여기다 따님은 나에게 자주 안경을 벗으라고 한다. '아빤, 안경만 벗으면 진짜 멋있는데' 하면서. 가끔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앉아 있을 때 그런다. 그래 준다. '엄마, 아빠 지금 쫌 잘 생겼지 않아?' 하고. 아내는 '않아!'하는 표정이지만, 나는 그 여부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당연히.


늘 렌즈를 사용하는 아내도 렌즈를 한번 사서 운동할 때라도 껴보라고 자꾸 권유했다. 귀찮다고 하다 이번에 그럴까 하고 사봤다. 하루 샘플 렌즈를 끼고 지내보니, 딴 세상이었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다니니 스스로가 따님말처럼 인상이 좋아지는, 자신감이 용 솟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이에 관계없이. 옆에서 그렇게 자꾸 추켜세워주니 더 그런가 보다. 그런데 문제는 나 혼자 렌즈를 끼우는 게 쉽지 않다는 점. 렌즈를 들고 다시 구입한 안경점에 가서 한참을 배워(?)서 끼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두 번은 모두 자기 전에 아내에게 부탁을 해서 렌즈를 뺐다. 여러 번 시도해도 도무지 나는 되질 않았다. 눈알이 아프고 충혈되고, 자꾸 눈동자가 산으로 들로 굴러 다녔다. 


어제는 나는 렌즈를 꼈다고 생각하고 출근하고 운전하고 업무 보고 돌아와서 보니까, 칫솔옆에 렌즈가 오똑하게 앉아서 말라 있었다.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당연히 모르니까. 안경을 껴봤다. 오른쪽이 뿌옇게 잘 안 보이는 걸 보니까, 왼쪽 렌즈. 하루 종일 오른쪽만 착용하고 다닌 거다. 다 뜯긴 눈썹을 해 가지고. 하지만, 세 번째 착용이었던 어제. 역시 도무지 렌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으로 눈동자를 치고, 밀고, 당겨도 렌즈는 밀려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오른쪽 눈동자는 핏발이 서고 눈물이 주르륵. 아직 퇴근 전인 아내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다시 그 안경점을 찾아갔다. 안경을 들고. 눈이 충혈된 나를 보고 여사장님은 미리, 혼자 풋 하고 웃는 것 같았다. 아니 웃었다. 


한참 동안 손을 정성껏 씻으면서 내 사정을 다 듣고 난 여사장님은 '이 00 렌즈가 특히 잘 안 빠진다'는 고급 정보를 그제야 말해 주면서. "여기에 앉아보세요. 거울 보이시죠? 저기, 저기 검은 눈동자와 흰 자 사이에 푸르스름한 게 보이시죠? 그거 렌즈예요." 하지만 난 왼쪽, 오른쪽 차이를 모르겠다. 못 찾겠다 했다. 그러는 사이 인상 좋은 여사장님은 다시 한번 '푹'하고 웃는 것 같았다. 아니 이번에는 진짜 웃었다. "그런데 눈...썹...이 왯?.... 잠깐만요, 눈동자 돌리지 말고요, 거울만 보세요. 거울! 아, 찾았다. 여기, 렌즈 렌즈입니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혼자 지으면서 다시 안경을 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눈썹을 미끄덩, 미끄덩 매만지면서 눈썹도, 렌즈마저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퇴근을 했다. 


(사진: UnsplashErnesto N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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