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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06. 2023

갑자기 청주

이 글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으니 마음 준비하세요!

평일, 저녁 오후 퇴근하는 길. 내일은 하루 쉬는 휴일입니다. 그 덕에 마음이 깃털만큼 가벼워져 있습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도 둠칫둠칫, 하늘하늘거렸습니다. 자동차도 아무런 소리 없이 부드럽게 도로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듯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도 내 귀를 솜사탕이 되어 간지럽힙니다. '오늘도 붕어빵 영업을 시작하셨나?' 하면서 아내를 지나 미용실 앞 가판대에 시선이 가 닿았습니다. 그러다 그 시선을 다시 걷어 돌아오다 그만, 아내와 눈이 맞았습니다. 


그 눈빛이 내게 간절하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아. 해야 할 이은 산더미지만. 하고 싶지 않지? 않지?'하고. 나도 격하게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동공을 깊숙한 곳에서 흔들어 대는 원천은 약속이었습니다. 보고픔이었습니다. '친구 보고 싶지?'라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 말은 아내가 스스로 묻는 말이라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나. 친구 보고 싶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 그 산더미를 등지고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래. 가자. 드라이브. 우리는 늦은 오후에 그렇게 청주로 향하는 도로 위를 올라섰습니다. 그제, 아내가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했었습니다. '** 씨가 안 내려올 거냐고 묻더라고. 애들 다 데리고 @@ 씨 데려갈 때 따라 내려갔다네. 지금은 낮에 엄청 심심한가 봐. 청소하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청소하고 있고. 일이 많은 데 어찌 내려가. 그렇지?' 갑자기 청주인 이유는 단 하나. 나의 친구가 지방 발령 2년 차로 청주 관사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친구가 청주에 그렇게 애들을 데리고 며칠 내려가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 연애 때 처음 알게 된 사이입니다. 나와 친구는 초, 중, 고 동기. 그 동기의 여자 친구가 지금 ** 씨. 처음 만나 펜션 여행을 넷이 갔을 때부터, 그때부터 사람 가리는 ** 씨와 아내는 철썩 오랜만난 우리보다 더 빨리, 더 깊게 친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톡으로 사는 걸 공유하고, 먹는 걸 나누고, 가족계를 묻고 있습니다. 매달 얼마씩, 통장에 그렇게 수북이 쌓여가고 있다고 합니다. 두 가족 여덟이 만날 때마다 그 곗돈으로 편안하게 먹고 삽니다. 


아내는 청주로 내달리는 동안, ** 씨와 엄지손가락으로 길고 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스물넷 평, 오래된 아파트. 사람 온기가 없는 텅 빈 컨테이너 같은 곳. TV는 3사 공중파만 나오고, 이부자리나 식기류도 1~2인용만 간신히 갖추고 있습니다. 지난번 혼자 친구한테 놀러 갔을 때는 거실 가운데 달랑 매트리스 위에서 얇은 커튼 같은 천을 휘휘 감고 잤었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103동 앞. ** 씨와 두 형제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가 백 팔십이 넘는 중3, 발이 이백 팔십이 넘는 중1이 아내를 지나 나에게까지 눈인사하느라 휘청거립니다. 


관사에서 10여분 떨어진 법원 근처 식당 앞에서 친구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딱 한자리 남은 주차공간을 지키고 있다고. 그렇게 보고픔과 배고픔이 뒤섞인 혼돈을 얼른 멈추려고 골목을 사사삭, 달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달려 내려가는 2시간 전에 친구가 미리 예약해 둔 식당. 어둑한 주택가 끄트머리에서 들킨 듯 수줍게 빛나는 곳이었습니다. 아빠 둘이 몇 해 전, '갑자기 제주도 올레'를 갔을 때처럼. 우리는 맛집보다는 멋집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려함보다는 동네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런 멋있는 주인장, 맛있는 음식.  


여기서 깜짝 퀴즈 나갑니다. 딱 두 테이블이 남아 있던, 그 식당. 일곱인 우리 일행이 앉은 넓은 테이블 옆에 이렇게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와이파이 아이디는 처음 봤습니다. 이 집은 과연 무엇을 파는 집을까요?



어렵지 않지요. deodeok. 더덕. 아. 그럼 더덕 파는 집? 아닙니다. 더덕은 찬조 출연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힌트 나갑니다. 메뉴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덕 '무한리필'. 무한리필, 무한리필 참 많은 집들을 다녀봤습니다. 그런데 더덕을 무한으로 제공하는 식당은 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렇습니다. 눈이 휘둥그레하고 있는 우리 부부를 보면서 이 식당을 딱 한번 먼저 와봤었다는 친구의 입가에는 깊게 파인 팔자미소가 실룩거리며 그어집니다. '대박이지?' 하면서 눈가가 오그라졌다 펴졌다 합니다.



크게 쓰인 '더덕 무한리필'을 보고, 우리 어른들의 어깨 위로 각자 데리고 다니는 두 마리의 반려견 - 편견과 선입견. 이 표현은 저와 필명이 같은, 새벽 글벗. 지담작가님의 글에서 읽고 박장대소했던 표현. 잊히지가 않아 이렇게 갑자기 소환됨 - 들이 고개를 쑤욱 내밀면서 귓속을 간지럽혔습니다. 입을 오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산이라도 무한리필을 대단한 거지. 중국산이라도'. 그렇게 중국산이라도 고마워할 기세로 이바구를 하는 사이,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실력파 막내가 내 입을 막듯이 얼른 내뱉습니다. '삼촌! 저기에 쓰여 있어요. 원산지가!'. 그렇게 막내가 가리킨 널찍한 메뉴판 끝자락에 '더덕(국내산)'이라고 당당하게 써져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친절하고, 푸짐했던 사장님의 '덕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두부는 미제인데, 더덕은 국산입니다. 플렉스함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 집은 거대한 솥뚜껑 위에 생삼겹살을 메인으로 주변에 찬조출연하는 건강한 식재료들이 그득그득합니다. 덕부심, 무한리필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새콤 매콤한 더덕이 기름이 흘러가는 길목에 수북하게 자리합니다. 그리고 주변으로 내가 쓱쓱 다 가져다 먹은 실부추. 아내가 좋아하는 간이 되어 있지 않는 밍밍하게 통통한 콩나물과 물컹 꼬득한 팽이버섯이 주르륵 삼겹살이 흘리는 뜨거운 기름을 죄다 가져가 버립니다. 


그런데 더덕 다음으로 아내와 ** 씨가 감탄사를 연발했던 게 바로, 고. 사. 리. 이건 뭐, 글이 아니, 말이 필요 없는 천상의 궁합이었습니다. 사실, 내 앞 솥뚜껑 위 고사리는 개눈 감추듯 아내 접시 위에 잠깐 머물다가 입속으로 쏙쏙 사라져 맛을 많이 보지는 못했네요. 그런데, 덕부심의 호탕함일까요. 이 고사리를 사장님이 다시, 다시 가져다주시는 겁니다. 분명, '고사리 무한리필'은 불가능하니까요. 아, 그건 더덕에서부터 그랬었습니다만. 물론,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걸걸한 인상의 사장님 역시 보드라운 그 고사리를 한 움큼보다는 조금 덜하게 살짝 집어 오는, 그런 손을 혹시 '고사리손'이라고 표현하는 건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나 혼자 했습니다만. 



맞습니다. 이 집의 더덕 무한리필만큼 어른 넷을 감동시킨 건 바로 고사리입니다. 친구랑 둘이서 제주도 오겹살집에서 소주를 한잔 할 때도 그 철판 위에도 없던 거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양쪽 두 판에서 십 인분 넘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더덕솥뚜껑 삼겹살의 대미는 노르스름하게 자글자글거리는 기름 위에 볶아 먹는 볶음밥. 친구 부부, 우리 부부 친구 부부 먹깨비 두 형제 모두 배가 불러 볶음밥을 마다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지혜(?)로 공깃밥을 2개나 시켰습니다. 갑자기 청주라 함께 못한, 누룽지에 눈 돌아가는 우리 일팔청춘 따님을 위해. 그렇게 아내는 솥뚜껑 위에서도 따님의 내일 아침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휘날레는 추억 소환이었습니다. 형제들한테 물어보니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모, 여기 사이다 2개 주세요' 하고 무의식 속에서 초록색 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테이블로 올라온 건 한참을 잊고 있었던, 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지 못했던 그 옛날의 사이다. 몇 번을 돌려 본 드라마 '응팔'에 나왔던 손이 큰 엄마. 그 배우의 이름하고 같아서 자연스레 기억하던 음료 회사. 그 회사에서 만든 독특한 음료 두 가지가 있었지요. 하나는 맥콜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거!



아 그러고 보니 초정리가 청주에 있는 동네 이름이었습니다. 광천수가 솟아난다는 지하수가 있는 곳. 그래서 제품명에 '초정리 광천수'라고 쓰여 있었지요. 예전에 815콜라와 같은 그런 도전적인 느낌을 받았었는데, 지금껏 살아남아 있어서, 괜히 고마웠습니다. 거대한 장벽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는 강인함. 무모함보다는 단단함이 느껴져,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내고 싶은 친구 같은 존재. 그렇게 무엇에 대한 고마움인지는 말을 안 해도 우리 넷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 기분 좋은 기억이 추억이 되어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주는 그런 느낌.  '00 브라보콘~', '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하던 때보다는 동생이지만 그래도 거기에 버금가는 우리 넷의 추억소환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일은 많지만, 그렇다고 보고픔을 외면하고 배고픔을 참아낼 필요까지는 없다는 다짐을 눈이 맞는 순간, 심플하게 결정하고 움직였다, 는 건 나와 아내의 원래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평일 오후, 산더미를 뒤로 하고, 2시간을 넘게.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많이 느끼게 됩니다. 남매 키우면서 정신없을 때 잠시 잃고, 잊을 수밖에 없었던 것들. 다들 그렇게 살아낸다고는 하지만, 위로가 되지는 못했던 말들. 먹고사는 건 더 팍팍해지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이제는 내가 먼저 위로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거듭되는 낙방에도 일곱해를 넘기며 노량진 지하에서 고생한 친구. 그 친구를 옆에서 10년 넘게 지켜 준 ** 씨. 그리고 다시 인공수정 실패에도 두 손을 놓지 않은 그들 부부. 그러는 동안 깊게 가까워지면서 나보다 더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너스레를 떠는 아내. 그 모든 이들 덕에 나도, 아내도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정해진 시간과 없는 돈을 쪼개면서 잘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는가 봅니다. 산과 산 사이 구불거리는 짙은 어둠을 우리 부부는 휘저으며 그렇게 한참 달려왔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위스키 언더 락'에 맞춰 오랜만에 듀엣이 되어 목청껏 따라 부르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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