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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11. 2023

봄에서 봄을 배운다

며칠 동안 봄비가 내리더니, 꽃피는 걸 시샘하는 바람이 또 며칠 몸을 움츠리게 했다. 그러는 사이 바닥에 차창에 찰싹 달라붙은 꽃잎들을 살아남아 매달린 초록 갈색잎들이 벌써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는 듯 내려다본다. 그래도 여전히 너도 봄, 나도 봄, 여기도 봄, 저기도 봄. 봄봄봄봄 봄이 절정이다. 마음껏 봄이다. 그런 봄의 상징은 뭐라고 해도 꽃이다. 봄꽃. 연한 초록싹이 수줍은 듯 빼꼼하던 게 며칠 새 몸부림쳐서 밀어낸 봄꽃이다. 머플러를 두른 나는 꽃샘추위에 밤새도록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거쳤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휴대폰을 꺼내 흐드러지게 핀 꽃잎 아래에서 마음껏 기쁨으로 눈으로, 렌즈에 담을 뿐이다. 바람에 비해 맞아떨어지기 전에. 내 눈 안으로 사라지기 전에. 기억 속 갤러리를 더듬거리기 전에.


여기저기 골목, 가로수, 아파트 단지, 동네 공원에 텃새처럼 자리 잡은 봄꽃 중 눈에 가장 띄는 것 중 하나가 아무래도 벚꽃이다. 평소에는 거기에 그렇게 세워져 있는지도 몰랐던 밋밋한 나무이다.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분홍빛을 띠는 왕벚나무 무리 사이에 새하얀 개벚나무도 가끔 보인다. 가끔은 고개를 푹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는 수양버들 같은 벚나무도 있다. 예네들의 특징은 아주 짧은 순간에 활짝 피었다 봄비맞고 봄바람 받으면 힘없이 후두득 떨어지는 거다. 흐. 드. 러. 지. 게 짧은 아름다움에 무척 아쉽다. 하지만 매미가 그렇듯 겨우내 그 이파리들을 밀어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추위에 맞서 몸뚱이를 지켜냈을까 싶다. 그래서 벚꽃 덕분에 겨울을 지나지 않고는 봄은 올 수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동과 앞동 사이, 정문 경비초소 옆, 그리고 학교 그라운드 옆 산책로에는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한 그루씩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군계일목련이다. 주변의 모든 나무들을, 이파리들을 밀어내는 당당한 모양새다. 그런데 목련은 벚꽃과 꽃잎 크기부터 다르다. 앙증맞게 자그마한 벚꽃들 사이에서 주먹만 하다. 웬만한 사과크기 만하게 몽그랗게 달려 있는 것들도 쉽게 눈에 띈다. 새하얀 벚꽃이 해를 향해 안간힘을 쓰면서 고개를 쳐들 때 베이지빛 목련은 묵직하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팽팽하게 버틴다.



그런데 왜 같은 봄꽃이 이렇게 생김새도 색깔도 크기도 다 다를까. 늘 들던 궁금증을 하기야 같으면 이상하지. 우리 사람 같지 않겠어. 다르게 생겨서 다르게 사는 인간들처럼. 하고 잊으면서 지나친 지 오래다. 그러다 어느 날 출근길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에 귀가 쏙 빠져 들었다. 꽃은 벌들의 선택을 받아야 살아낼 수 있다. 종을 지켜내고 번식하는 데 벌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 그래서 두꺼운 나무껍질을 뚫고 꽃잎을 피우는 거다. 처절하게. 그 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만든다. 짧은 시간 흐드러지게 자기 몸 불사른 힘으로 밋밋한 나머지 계절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의 생명을 그렇게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저장한다. 그 사투의 현장 아래에서 우리는 이뻐라 기뻐라 행복해질 수 있다.


 자그마한 봄꽃들이 살아내는 방법은 그렇게 일단 흐드러지게 펴서 주목을 받아야 한다. 며칠을 사이에 두고 온 힘을 다해 모든 것을 내뿜는 거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마음껏 피어오르는 거다. 가지 끝에도 모자라 거칠한 기둥 중간에서도 거칠거칠한 껍질을 뚫고 삐죽하게 올라온다. 그래야 벌이 내려앉아 꿀을 빨아먹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략. 동시에 함께 피는 거다. 무리 지어 떼거지로 한꺼번에 피는 거다. 하루, 이틀 밤 사이에 후다닥 피어 나는 거다. 그러면 모여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집적 이익이 대량으로 생기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나는 사라지더라도 내 종은 살아남게 되는, 그 대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삶도 그렇지 싶다.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는 누구나 다 다를 거다. 몸나이에 관계없다. 꽃잎도 색깔도 피는 장소도 모두 다. 그러나 분명한 건 혹독한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지나가야 나를 피울 수 있는 봄을 맞을 수 있는 거라는 진리. 이 시기도 곧 지나가겠지만,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건 힘이 더 들지 싶다. 봄도 한철 꽃도 한철이라 했다. 봄꽃도 한때라는 이야기다. 지금의 삶이 아무리 부귀영화라도 일시적인 것이어서 그 한때는 곧 지나간다는 의미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고맙게 잘 이겨내라는 옛사람들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났을 지혜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 여전히 차디 찬 겨울이더라도 분명 두껍고 거칠어진 자기 껍질을 뚫고 새순을 꽃잎을 밀어낼 수 있겠다는 희망이다. 그 희망을 봄꽃이 말해주는 거란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봄꽃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노래 가사가 입안에서 맴돈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

사실은 참 아픈 거래

............

우리 눈에 다 보이진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너무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오늘 나는 봄에서 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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