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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12. 2023

도시 농부들

[풀꽃들에게]3_텃밭.사람들 유랑기1

스물네 해 만해 이곳으로 전근을 왔습니다. 작년에 허리병과 함께. 그래서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간간히 걸어야 업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앉아 있지를 못하니 서서 일하고, 서서만 일하니 무릎이 아파왔습니다. 담당 의사, 물리치료사, 운동치료사가 이구동성으로 걸어야 한다고 하더군 오. 안 그래도 걷는 걸 좋아라 하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걸었습니다. 낯설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삼십 도가 넘는 기온에도, 번개 치고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어떤 날에도.  


5층 사무실에서 그라운드로 내려와 학교 전체를 최대한 크게 크게 돌았습니다. 나를 찾는 전화가 오고, 아이들이 찾으러 다니지만, 운동 삼아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그렇게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본관 5층에서 가장 먼 작은 주차장까지 걷다가 아주 한적하고 따듯한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 이어지는 체육관. 그 왼쪽으로 승용차 한 대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로 돌아내려가면 체육관 지하가 나옵니다. 그 지하 공간에 커다란 미닫이 문이 있습니다. 교실 한 칸 정도 되는 사이즈의 큰 문입니다. 문 양쪽 콘크리트 끝에서부터 문위까지 갈색 벽돌 무늬 모양의 시트지가 발라져 있습니다. 


철문 위에 비닐 재질의 시트지는 조금만 햇빛을 받아도 뜨끈뜨끈 하다, 는 고급 정보(?)를 얻었습니다. 올해가 지나면 정년이신 신쌤이 알려주신 겁니다. 그 덕에 걷다가 잠깐 멈추고 그 문에 등과 허리를 가져다 됩니다. 그러면 온열 치료가 따로 없습니다. 가슴으로는 햇살이 마음껏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다시 걷습니다. 그래야 3시간 연속 강의도 생생한 척할 수 있습니다. 허리를 햇살이 어루만져 주는 동안 바라보게 되는 곳은 철조망 건너 농가입니다. 산비탈에 하나이 집이 있는데 그 일대가 다 밭입니다. 비스듬한 밭 가운데는 입구에 비닐이 흔들거리는 농막이 서 있습니다. 그 주위를 중년의 부부가 하루 종일 보였다 안보였다 합니다. 


집에서 걸어서 삼십 분이 넘게 떨어진 하천변. 시커먼 물이 줄기차게 흐르던 도로 아래 공터. 탄광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그 공터를 통통한 무가 2개 이어진 모양으로 도톰한 텃밭으로 만드셨었습니다. 시커먼 개울물을 바로 떠서 줄 수 없어 물통을 이고 지고 날랐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사춘기 중학생이 시커먼 하천옆 쪽밭에 애정을 가졌을 리는 없지만, 그 밭에서 내내 걷어오시던 옥수수, 방울토마토, 깻잎, 조선상추, 고추 등을 잘도 쪄 먹고 쌈 싸 먹는 날은 고기 구워 먹는 날이어서 많이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잠을 주무시거나 쉬지 않고 그렇게 걸어 걸어 다시 일을 하러 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을 뿐이었지요.   


어린 나에게 텃밭은 일터였습니다.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을 일부러 벌이는 노동의 공간.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어린 마음속에 화로 자리 잡은 묘한 감정의 텃밭이었습니다. 우리 학교 텃밭을 2015년부터 진두지휘해 온 분은 온열 치료의 고급 정보를 알려준 신쌤입니다. 학교 텃밭 대장님입니다. 허리 온열 치료(?)를 하다가 그렇게 건너편 농막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 시선에서 10시 방향, 2시 방향 양쪽으로 학교 텃밭이 보입니다. 10시 방향은 큰 텃밭이고 2시 방향은 신쌤이 버려진 땅을 만든 체육관 아래 쪽밭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텃밭 주인들이 정해졌나 봅니다. 텃밭을 운영할 신청을 받는다는 텃밭 부대장 양쌤의 메시지를 3월 첫 주에 본 듯합니다. 텃밭 운영 실무 담당인 동갑내기 쌤입니다. 나는 마음은 가득 하나 쪼그리고 구부리지 못하니 올해는 재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신 매일 점심때마다 텃밭으로 내려갑니다.



10시 방향에 있는 큰 텃밭은 자그마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면 저 아래쪽으로 살짝 경사가 기울어진 형태입니다. 가운데 좁은 통로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입니다. 오른쪽으로 5개, 왼쪽으로 6개의 작은 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작은 밭들도 크기가 조금씩은 다릅니다. 이 밭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명예 대장 신쌤, 실질적 대장 김1쌤, 진짜 대장 양쌤 그리고 찐 농부 허쌤, 집에서 부터 농사꾼인 김2쌤, 도시 농부를 시작하는 엄쌤, 홍쌤, 박쌤, 성쌤, 전쌤 그리고 유일한 홍일점 전2쌤. 텃밭위에서의 일년 살이 모습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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