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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24. 2023

텃밭의 역사

[풀꽃들에게]5_텃밭.사람들 유랑기2

어떤 분야의 무슨 일이든 처음으로 시작한 이는 반드시 있지요. 아무리 이른 시각에 도로 위로 달려 올라와도 앞서 달려 나가는 이가 언제나 있듯이. 시작은 두려움이 녹아 든 설렘입니다. 순수함과 욕심 사이에서 항상 스스로의 밀당을 즐기는. 그래서 수고로움, 어려움, 갈등, 고뇌 그리고 끊임없는 움직임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이 바로 역사가 되지요.  


이곳 텃밭의 역사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텃밭대장 신쌤이 전하는 말입니다. 2011년. 이곳으로 전근 온 박쌤 - 제가 신입 때 이곳에 오기 전 학교에서 한참을 함께 근무했던 선배 교사입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미리 퇴직을 하셨지요. 벌써 햇수로 다섯 해가 넘어가네요.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 이 텃밭대장 신쌤을 만난 게 12년, 짧은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 텃밭이 자리 잡은 터는 버려진 공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외딴쪽에 체육관 공사를 하면서 생긴 공터.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공간에 이렇게 버려진 공간이 있는 건 좋을 게 없습니다. 일단 사람의 마음이 허전해지게 됩니다. 긍정보다는 부정의 메시지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함부로 하게 됩니다. 이미 버려진 쓰레기에 더러운 마음을 더해 쓰레기를 버리고 그 앞에서 험담을 하고 폭력적인 상황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입니다. 이미 깨져 있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 역시 부정적인 또 다른 시작을 방조하는 겁니다. 


한 주택가 골목. 이곳에는 항상 새벽에 몰래 가져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골치였습니다. 전봇대에 걸린 가로등 반대쪽 담벼락이었죠. 동네 사람들은 연일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CCTV 설치하고, 동네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한테 섬뜩한 경고문도 내가 걸었지요.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여름에는 악취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쥐들이 들락거리고 길냥이 싸움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새벽 취객들이 소리를 지르고 남의 집 담벼락에다 노상방뇨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회의중 한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다들 반신반의했지만, 비용과 동네 사람들의 정성이 들여가는 방법이었지만 해보자했습니다. 지금껏 수없는 방법을 활용해봤었으니까, 이사가기 전 마지막이다 싶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전봇대 뒤 좁은 공터에 붙어 있던 경고문을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걸쳐 동네분들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그 다음주에 바로 나타났습니다. 새벽에 몰래 버려지는 쓰레기가 확연하게 줄어든 겁니다. 심지어는 CCTV에서 주민들이 자신이 버리려는 쓰레기를 되가져 가는 장면까지 목격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냄새나고 위험했던 그 좁은 공터를 꽃밭으로 바꾼 겁니다. 이쁘고 어린 꽃 모종을 사다가 자그마한 화단을 만든겁니다. 꽃이 사람의 마음을 바꿔준 겁니다. 맞습니다. 버려진 공터는 어떤 형태로건 사람들에게 이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근린공원을 만들고 조경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공간은 사람의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생각을 던져줍니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유도합니다. 협력적이고 긍정적인 실천으로. 그게 공간의 힘입니다.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만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지금은 여러 이들에게 그런 공간인 텃밭 자리는 체육관 뒤 주차장 높이보다 바닥이 1미터 가까이 낮은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이런 경우에 버리진 공터로만 이용하게 됩니다. 불편하지만, 안타깝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고민하는 이들 제외하고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어갑니다.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려는 이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 상황을 바꿔보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일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 관심은 자신의 삶 속에서 누적된 경험치의 반영입니다. 박쌤은 충북 시골, 신쌤은 전남 섬 출신입니다. 어릴 적 뛰어놀 던 곳, 보고 자란 곳, 사랑해 주고 사랑하던 이들과 함께 하던 곳. 그곳에 대한 아련함이 관심으로 관심이 실천으로 표현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둘은 의기 투합했습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인근에서 트럭 15대 분량의 토사를 싣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복토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우고 메우고 메우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텃밭을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경사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래로 내려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보이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는 이곳이 그런 곳이었구나 싶어 집니다. 그렇게 지금의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 는 진리를 다시 한번 텃밭에 서서 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무한한 고마움으로 느껴집니다. 건강한 식재료가 음식이 되어 나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그 몸 덕에 마음까지 더 건강하게 되는 건 단순한 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쁜 업무로 인해 그후 신쌤과 박쌤은 4년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텃밭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2016년이네요. 신쌤은 그 해 첫 텃밭 농사를 월별로 기록을 다 해놨습니다. 도시 농부답게 스마트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오고 가는 학교 공간이라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휴대폰 메모를 보여주면서 말하는 입가에 열여섯 같은 해맑은 미소가 그득합니다. 그 미소가 검게 그을린 잔주름을 더 깊게 패이게 합니다. 





나에게 보내 준 메모를 찬찬히 읽어 봅니다. 그 속에 7년 전 한해의 수고로움과 기쁨, 자기반성과 실천이 한가득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밭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이들도 함께 보듬어 주는 따뜻한 넉넉함이 향기롭습니다. 텃밭 제일 아랫단에서 우연히 방풍나물을 발견했습니다. 작년 전근 축하 모임을 한 선배교사의 집에서 방과 후에 조촐하게 할 때 오랜만에 만난 나물입니다. 삼겹살 파티를 열어주던 선배 앞 테이블에 살짝 데쳐진 채 소복하게 쌓여 있던 방풍나물입니다. 나와 그 선배 그리고 직접 데쳐 가져다만 주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후배님을 처음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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