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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30. 2023

봄 하루는 가을 열흘

[풀꽃들에게]6_텃밭.사람들 유랑기3

지난주까지 두어 번의 봄비와 꽃샘추위, 두어 번의 반짝 더위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텃밭 주인들은 제각각 자기 속도대로 약 한 달간의 농사를 사부작 사부작 해왔습니다. 오로지 점심시간, 주말을 이용해서. 그런데 그 모습이 악착같지 않아 참 좋습니다. 같은 공간의 텃밭이지만 다 다르게 보여 좋습니다. 


# 점심시간에는 언제나 텃밭대장 신쌤을 먼저 만납니다. 이 텃밭의 시작점에 있었던 산증인이지요. 정년을 일 년 앞두고 농막을 지을 터를 찾아보신다는, 전라도 섬 출신의 천상 농사꾼, 국어쌤입니다. 그런데 신쌤은 펜스로 둘러쳐진 진짜 텃밭에서는 남은 자투리 땅만 활용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반듯반듯하게 잘 생긴 밭은 다 남들에게 양보하고요. 천상 농사꾼은 자투리 땅도 훌륭한 밭으로 보이는 법이니까요. 그곳에서는 일찌감치 심어놓은 쌈채소(로메인 상추, 쑥갓, 아삭이 상추, 꽃상추, 깻잎), 부추, 양파를 심어 놓았어요. 금요일 점심때 보니까 이제는 수확을 해도 될 정도로요. 특히, 저 아래 맨 끝에 있는 서너 그루의 방풍나물은 자꾸 따 가라고 하시는 걸 사양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신쌤 농사의 진짜 시작은 체육관 옆 쪽밭에서 부터입니다. 이곳은 펜스 안에 있는 여럿의 텃밭이 아닙니다. 그 밭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한참 고개를 돌리면 주차장 끝 구석에 그냥 그렇게 있던 경사면이었습니다. 이곳을 혼자 일구기 시작한 거 역시 신쌤이었습니다. 3월 마지막주에 갔더니 층층이 계단을 만들어 놓고 돌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근 한 달 동안 펜스 안 텃밭을 돌보면서 이곳에도 거름을 뿌리고 고랑과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고랑, 이랑의 모습은 참 잘 빗어 넘긴 머리처럼 정갈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거기에 감자, 열무, 애호박, 쌈채소를 심어 놓았습니다. 쌈채소와 열무는 한 달 새 제법 쑤욱하고 올라왔네요.



# 김쌤은 사무실에서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는 후배샘입니다. 작년에 이곳으로 전근 왔을 때 예전에 다른 곳에서 봤던 걸 먼저 기억해 주면서 반갑게 맞이해 준 이 중에 한 명이지요. 밝은 농담에 너털웃음을 잘 짓는 이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하는 붙임성도 갑입니다. 앙금이 남지 않게 아이들을 잘 야단치는 기술왕입니다. 텃밭에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텃밭이야기는 주로 사무실에서 나눕니다. 내 수업과 늘 어긋나서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네요. 밭이 주인을 닮는다는 말은 이 분을 두고 하는 말이 딱 맞지 싶습니다.

앞쪽은 백도라지, 가운데는 명이나물 그리고 펜스 아래는 부추. 이 세 가지 작물의 공통점은 무심하게 방치하면 잘 크는 다년생 작물입니다. 더덕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명이나물은 작년부터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쑥쑥 올라오는 중이지요. 한 달 새 백도라지는 키가 서너 배는 컸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를 돼지감자가 점령을 하고 있어요. 가만 내버려 두면 온 텃밭을 덮을 정도로 생명력 갑인 게 돼지감자입니다.  


# 홍쌤은 정년이 2년 남은 사회과 선배입니다. 평소 스타일처럼 농사도 느릿느릿합니다. 큰 텃밭 안에서 두 개의 널찍한 밭을 운영하지만, 자주 밭에서 뵙지 못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5층 바로 아래층 사무실에 계십니다. 텃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뿌리는 작업도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후다닥 스타일입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는 듯합니다. 텅 비어 있던 왼쪽밭에서는 열무가 오른쪽 밭에서는 얼갈이가 연한 초록색 머리를 쑥쑥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 2전쌤은 올해 처음 업무가 많은 부서에서 기획하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허릿병이 아니었다면 나와 단짝이 되어 업무를 전담할 뻔했던 후배 파트너입니다. 그러다 보니 큰 텃밭 오른쪽 라인에 있는 제일 끝 자그마한 텃밭을 하나 분양받았는데, 영 속도가 나지 않아요. 이 밭을 보면 내가 다 괜한 걱정이 올라온다 싶어요. 아마추어 야구팀 투수라는 걸 보니 밭보단 야구에 더 큰 관심이 있는것 같기드ㅡ 합니다. 다행히 엊그제 가보니 여덟 이랑 중 여섯 이랑에서 상추, 깻잎이 자그마하게 올라오고 있더군요.


# 박주무관 밭입니다. 올해 처음 텃밭 농사를 해보신다 합니다. 1전쌤과 딱 두 분뿐인 여성 농사꾼입니다. 열무랑 상추를 심어놨는데, 신통치가 않다면서 수줍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전근온 후 처음 뵙는 분이라 더욱 그랬나 봅니다.


# 나와 오랫동안 전근오기전부터 같은 곳에서 근무했던 동갑내기 박쌤밭입니다. 늦은 결혼에 아직 아이가 어린데도 주말을 반납하고 와서 쌈채소를 조록조록 심었더군요. 이제는 제법 흐드러지게 올라와서 조만간 수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산책을 하다 자주 이곳으로 같이 발길을 돌리게 되는 사람입니다.



텃밭의 매력은 같은 듯하면서도 다 다른 속도대로 흘러간다는 데 있습니다. 밭이 주인을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봄 하루는 가을 열흘이라는 속담이 있지요. 봄 하루하루를 잘 쪼개서 활용하면 풍요로운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는 세상의 조언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자기 라이프 스타일대로 밭은 가만히 커가는 중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4월 봄이 끝납니다. 다른 속도에 관계없이 지금보다는 좀 더 익은 5월의 텃밭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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