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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15. 2023

드디어 3월 2일이 왔다

[나]시리즈26...사진:unsplash

(이 글은 https://brunch.co.kr/@jidam/831에서 이어집니다)



그날 저녁이었다. 처음으로 야자를 짼 게. 지금 아이들은 학탈이라고 한다. 학교 탈출. 딱 그때 내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었다. 아니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렇게 터덜거리면서 어둑한 논두렁 사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리고는 툭 튀어 오르듯 한 논두렁 끝에서 넓은 도로를 만났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대롱대롱 매달린 마른오징어 같았다. 한껏 오그라 든. 그때만큼 목이 타들어 가듯 말랐던 적은 지금껏 없었다. 하프 마라톤을 달릴 때도 그렇게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엄마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타 들어가는 갈증의 원인이었다.


언제 하숙방에 들어가 어떻게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뜨끈했던 컵라면이 그날 먹은 건지 아닌지도. 하지만 분명한 건 그다음 날 세상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거다. 나를 제외한 세상은 그대로였다. 아니, 나의 어제보다 더 평화로웠다. 릴라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같은 모습으로 쫄보가 되어 있었다. 아, 내가 보는 시각에서는 다 쫄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망막 속에 남아 있는 빛바랜 장면 하나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남아 있을지도. 하지만 나는 고, 스톱을 고민할 수 없었다. 참 어린 열일곱이지만 그때껏 살아오면서 스톱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나의 선택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그런 모습을 살아낼 거라는 선택. 막연한 선택이었지만, 선택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고, 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나의 머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일부러였는지 어떤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다음 수학 시간에 칠판에 나가 문제를 푼 기억이 없다. 릴라선생님 성향에 여전히 똑같았을 텐데. 신기하다. 지우개로 기억이 단박에 지워진 듯. 그렇게 가을이 깊어 갔다. 야자를 끝내고 걷는 소나무 숲 길에서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흔들었다 놨다 했다.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나의 마음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다음 시험은 어떻게 하지. 


어느 날 늦은 밤. 푸르스름한 복도 형광등 아래를 걷다가 무심코 바지 주머니를 만지작 거렸다. 길쭉한 돈다발이 잡혔다. 분명 그때 내게는 큰 다발이었다. 그 무렵 엄마가 보내 주신 하숙비와 용돈. 하숙비를 내고 아마 남은 돈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길로 걸어서 개천 옆 동시 상영을 하는 극장 앞으로 걸어 내려갔다. 지나가다 영화를 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아마 극장 입구 위에서 <천녀유혼>이라는 영화 간판이 거대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머뭇거리다 나는 시내로 깊게 걸어 들어갔다.     


그 무렵이었을 거다. 다시 학교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했던 게. 앞으로 두 달 가까이 기말고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2주 같았다. 물론 수학 때문에. 하지만 그 두 달은 해피 뉴이어 폭죽 터지듯이 순간 스쳐갔다. 그렇게 수학은 다시 나를 망가뜨렸다. 나의 열일곱은 그렇게 망가지고 있었다. 그다음 해 3월 2일. 개학 첫날. 디데이였다. 나는 그렇게 긴 겨울 방학 동안 꾸민(?) 계획을 실천하기로 한 첫날을 맞이했다. 첫날의 흥분이나 설렘, 두려움은 없었다. 나에게는 오직 비장함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두꺼운 검은 뿔테 속에 가려진 진심은 아무도 알지 못했을 거다. 지금도 다같은 3월 2일은 나에게만 있는 특별한 3월 2일처럼 남아 있다. 


2학년이 되고 수학선생님은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내 계획을 실천하기에도 적합했기 때문에 더욱. 새로운 수학선생님은 신사였다. 정장을 즐겨 입었지만, 옷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진 건 분명 아니었다. 얼굴도 새하얗게 맑은 모습이었지만 무엇보다 말투가 상냥했다. 사랑의 매가 빈번했던 그 당시에도 그렇게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수업 방식이 릴라선생님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나 홀로 연극을 구경하는 방청객일 뿐이었다. 긴장감, 뭐 그런 건 1도 없었다. 하지만 난 고1때 보다 수학을 훨씬 더 많이, 치밀하고, 꾸준하게 '베껴야' 했다. 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만의 전쟁을 위해. (다음글에 계속)



(이 글은 https://brunch.co.kr/@jidam/890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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