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May 23. 2023

고마운 짝

[풀꽃들에게]8

채소, 과일, 화초 등을 심어서 가꾸는 일이나 기술을 원예라고 한다. 그중에서 화초만을 떼어 내어 다시 화훼 농업으로 구분한다. 대도시 주변. 겨우내 움츠려 있듯 지내다 봄이 무르익으면 활기를 띄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화훼 농가이다. 눈으로 보면서 즐기기 위해 키우는 식물의 통칭이다. 대도시 근처에 주로 있는 비닐하우스, 온실이 그 식물들의 갤러리들이다. 다양한 크기의 화분에 담겨 있는 화초들을 이용해 내부 공간을 꾸미는 식집사들의 플랜테리어가 열풍 수준이다. 일 년 내내 그렇지만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봄에 더욱. 뭐, 이런 표현이 없을 때부터 집과 사무실 등에는 화분 한 두 개씩은 다 있다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닐 듯.


지금 부모님 댁에는 서른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화분이 있다. 우리 집에는 그것의 삼분이 일 정도. 그런데 지난번 글 <초록심장 하얀심장https://brunch.co.kr/@jidam/723>에서 이야기했던 뱅갈고무나무 맞은편 크로시아 이파리가 하나 둘 바나나를 냉장고에 한참 넣어뒀다가 꺼낸 것처럼 갈변이 되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살리지 하는 생각보다 어머니한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올라온다. 사십 년이 넘는 경력의 식집사 어머니는 화초 인큐베이터다. 무조건 살려 내신다. 서른 개가 넘는 화분들 대부분이 15여 년 전 아버지 퇴임 전부터 시골에서 키우는 것들이 고스란히 옮겨온 거다. 나이가 스무 살 가까이 된 것들도 많다는 이야기다. 화분이 화분을 낳는 형국이다. 어머니에게는 제대로 오래된 짝들이다. 그것도 아주 달달한 사이인 단짝. 물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 바람과 햇살이 뒤섞여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다 싱싱하고 이쁘게 보이지만 말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인구도 1500만 명을 넘어가는 지금 언론에서부터 반려인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고 있다. 이때 반려는 한자어다. 伴侶. 짝이다. 반려인은 '짝이 되어주는 사람'. 표준어는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게 국립국어원의 해석이다. 서울시에서는 기업과 함께 2019년부터 <반려인능력시험>도 강아지와 고양이 부문으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반려동물산업학과, 반려동물학과, 동물보건복지학과 등 반려동물 관련 학과 개설이 급증하고 있다. 부산시, 울산시 등은 '반려 친화 도시'를 선언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도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의 지도하에 동물의 간호 또는 진료 보조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국가자격증 '동물보건사' 제도도 신설했다. 2000년대 초반 전문대학에 애완동물학과 신설이 급증했다가 사라진 사례와는 달리 이러한 흐름이 반짝 유행이 아닐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 이유는 인구가 줄고 생명존중 문화의 확산되면서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반려동물, 식물과 함께 동거를 하는 반려인들이 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아본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같이 산다는 게 그런 거 같다.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줄 거란 착각을 무의식적으로 한다. 하지만 숨소리 하나, 땀구멍 하나, 머리카락 하나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공유를 하는 것. 그게 같이 산다는 게 아닐까. 그리고 손이 많이 가야 하는 것. 그렇게 손을 통해 마음이 전해져야 하는 것. 그래서 나의 삶에도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들어주고, 토닥여주는 단짝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을 매일, 매 순간 확인시켜 주는 존재들. 그게 반려동물, 반려식물들이라고.


같이 동거 중인 타닥이, 스파티필룸, 아레카 야자, 뱅갈고무나무, 크로시아, 여인초, 스투키, 산세베리아, 인도고무나무 등은 나처럼 물, 공기,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내가 필요로 할 때 언제나 나에게 달려오는. 나의 미세한 변화에 말을 거는. 나도 그들의 매 순간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그런 관계다. 새벽에도 늦은 저녁에도 한낮에도 월요일에도 일요일 아침에도 비가 내리는 날에도 햇살 가득한 날에도 태풍이 몰아치는 어둑한 그날에도 짝끼리만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그것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얻는 사이. 그게 반려의 진정한 의미일 거다.


어제 트레드밀 위에서 잠깐 보던 티브이. 동물농장에 얼굴을 퉁퉁 부은 2살짜리 댕댕이가 나왔다. 전라도 농가에 살던 강아지였단다. 그런데 한마디로 상태가 처참했다. 2개월 때쯤 근처에 있는 주인네 집에서 가죽 목줄을 맨 체 뛰쳐나와 길거리 댕댕이가 되었단다. 여러 번의 구조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고 원래 주인에게도 공격성을 보여 1년 넘게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그러다 그 동네 면사무소 주변을 배회하는 걸 사무소 부면장이 발견하고 오랫동안 먹을 것을 줬단다. 퇴근할 때는 물이 충분히 불린 사료를 면사무소 입구에 덩그러니 일부러 나누고. 한두 달 전부터는 그 부면장의 목소리에만 반응을 한단다. 비슷한 시각에 나타나 고구마도 받아먹고, 그 근처를 배회한다고. 하지만 항상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다가오지는 않았다.

  

동물연대 구조팀에 의해 간신히 구조되어 큰 수술을 받으면서 회복되는 상황까지 볼 수 있었다. 트레드밀을 걷는 동안 스믈스물 올라오는 울음을 참느라 속도를 높이고 잰걸음으로 빠르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부면장 같은 분이 진정한 반려인이다.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에 푹 빠져 있다는 건 사람에 대한 미움의 반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 못 하는 이들에게서 얻는 힐링. 내 마음 편한 방식으로 만 대하면 되는 정서적 유대감. 나에게 허락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할 수 있다는 기대. 내가 사랑한 만큼 나에게도 꼭 같이 되갚아 주는 솔직하게 착한 보은. 그것들을 통해 켜켜이 쌓인 미움들을 하나 둘 털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미움에 짙게 드리워진 마음은 그리움이라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이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아니 살아주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 반려인 오늘 기분이 다운되었네. 꼬리 더 흔들어줘야지. 신선한 향기 풍겨야지.

아하 반려인 오늘 기분이 좋아 좋아. 더 크게 엉덩이 댄스 춰야지. 음이온 뿜뿜 날려야지.

이런 반려인 요즘 신경을 못 써드렸네. 얼른얼른 물 열심히 먹고 이쁜 꽃 화알짝 피워줘야지. 여리디 여린 새순 뽁뽁 키워내야지. 얼른얼른 담석이 다 낫게 약사료 잘 먹어야지. 


우리 반려인 오늘 하루도 참 수고했어요.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 

나의 진한 향기를 맡아보세요. 

작가의 이전글 카쓰하는 일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