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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22. 2023

카쓰하는 일요일

사진: Unsplash의Clem Onojeghuo

지금은 일요일 오후 3시 38분. 여기는 여의도에 있는 한 별다방이다. 근처에서 김밥집을 하는 처남한테 왔다. 짜잔 하고 왔지만 처남은 없었다. 오픈 두 달 만에 쉬는 일요일이란다. 빨간 김밥, 초록 김밥, 떡볶이, 잔치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홍국쌀, 클로렐라쌀, 강황쌀, 루테인쌀, 버섯쌀의 다섯 가지 라이스로 만드는 프리미엄 김밥집이다. 김밥에 단무지가 없다. 흰쌀이 없다. 하루 숙성시킨 당근을 쓴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단다. 여의도 맛집으로 등극했다는 후기도 있단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한 처남이 이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좋다. 내가 처남네 가게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오미칩 - 위 다섯 가지 쌀로 만든 손바닥만 한 누룽지칩 -이다. 개별 포장되어 있어 보관하고 휴대하기 좋다. 그리고 아주 바삭하다. 안 달게 건강하게 맛있다. 그래서 자주 사가지고 가 도시락 대신, 간식 대신 즐겨 먹는다. 


집에서 오랜만에 쉬고 있는 처남과 통화만 했다. 셋이서 김밥 세 줄, 떡볶이, 잔치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근처 별다방으로 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번주 일요일 우리 세 식구는 카공, 카업, 카쓰를 하기로 했다. 각자의 노트북을 실어서 출발했다. 아내는 뒷자리에서 업무를, 따님은 건너편 벽 쪽 자리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나는 가운데 기둥 옆 소파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카페에서 쓰기. 낯설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참 사람들도 많다. 널찍한 매장이지만 충전이 가능한 자리는 없고, 빈자리마저도 몇 개 없다. 그래서 각자 떨어져 앉아 카공, 카업, 카쓰를 하고 있다. 


보통 일요일은 오전 9시가 조금 안되어서 청소를 시작한다. 일주일에 딱 한번 하는 청소다. 물론 눈에 보이는 지저분한 건 그때그때 하지만 평일에는 지저분한 게 잘 안 보인다. 진짜다. 일부러 안보는 게 아니라 진짜 잘 안 보인다. 일요일 오전 대청소를 할 때 나, 아내, 따님의 구역은 은근슬쩍 정해져 버렸다. 반복하다 보니 그렇게 정해진 것 같다. 침구류는 각자 방에서 털고 새로 깔고 정리하기. 구석구석 먼지는 아내가 턴다. 나는 아내를 따라다니면서 청소기를 돌린다. 그 사이 따님은 로봇 걸레 청소기에 물을 채우고, 걸레 패드를 적셔 준비한다. 그러고는 신발장 앞 대형 거울을 물걸레질한다. 나는 청소기를 다 돌리고 입구 화장실을 청소한다. 락스와 비누를 이용해서. 그러는 동안 아내는 세탁기, 건조기를 돌리고 뒷 베란다를 물청소 한다. 


청소가 다 끝나면 우리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카페로. 집에 있으면 앉는다. 그러다 눕는다. 그러다 존다. 그러다 밤에 잠을 설친다. 그래서 일요일은 나오려 한다. 카페로.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좋다. 근처 도서관으로. 강근처 공원으로. 그런데 카페에 오면 여러 가지가 참 좋다. 먼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눈다. 서로의 눈을 맞추면서. 참 평화롭다. 가끔은 너무 진지해서 불안해 보이는 경우도 보이지만. 사는 게 어디 가볍기만 할까. 카페에서는 글이 잘 써진다, 는 생각이 든다. 잘 써진다는 게 좋은 글이란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시간이 잘 간다. 두 시간 무료 주차를 넘겨서 항상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이상하게도 늦은 시간에 마신 커피여도 밤에 잠을 설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별다방에서 처음 글을 쓰던 어느 날. 그곳은 아내의 직장 근처에 있는 별다방이었다. 매장 어디에도 와이파이 비번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카운터에 와이파이 비번을 물어보러 2층에 자리 잡은 후 1층 카운터로 내려갔다. 저기, 와이파이 비번이 뭐죠? 바빠 보인 종업원은 한참을 - 아마 일, 이, 삼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 한 참 이었다 - 쳐다만 봤다. 그리고는 KT로 들어가라고만 했다. 조금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 싶었지만 뭔가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컴퓨터에서 KT를 찾아보니 별다방이랑 KT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동의 몇 개를 하니 별바당 홈페이지로 바로 연결되었다. 한참을 그 홈페이지에서 헤매기도 했지만 아, 다국적 기업은 와이파이도 다르구나 했다. 





글을 쓰기 전, 일요일에 카페가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없었던 게 맞다. 아, 급하게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 한 두번 정도. 그리고 글을 쓰기 전, 카페에 갈때 노트북을 들고 가질 않았다. 이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면서 노트북으로 이런 저런 공부를 일을 하는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변했다. 그렇게 한번 먼저 와봤다고 어제는 와이파이 연결하는 거창한(?) 방법을 아내에게 알려줬다. 별다방 홈페이지에서 탈출하는 방법도. 혼자 버벅거리는 아마추어지만 카쓰하는 일요일은 왠지 가득 찬 기분이다. 이미 월요일을 한가득 준비 다 한 즐거움이다. 가벼움이다. 이렇게 맞이하는 월요일이 살짝 설렌다. 무슨 요일이건 아무 날은 없다는 믿음을 더욱 돈돈하게 만드는 일요일 카쓰의 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인생의 소중한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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