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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06. 2023

움직이다 여행하다

[일상여행5]...사진:unsplash

여행은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다. 그런 활동은 인류의 역사에서 늘 존재했다. 기원전의 가스트로노미아gastronomia, 17세기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 현재의 갭 이어gap year, 어디에서 얼마동안 살아보기 그리고 경산에서 대구까지 출퇴근하기. 이렇게 물리적인 공간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당연히 교통수단의 발달이다. 공간을 이동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 영역이 확장되고 이동에 필요한 시간 거리가 줄어들었다. 그 덕에 여행의 일정, 경로, 방식이 다양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수가 누리는 혜택에서 인간의 보편화된 활동이 된 것은 남녀노소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참 많이 떠난다. 걸어서 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로 망망대해 위를 날아다닌다. 하지만 그렇게 다닌 게 언제였는지, 어디서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특히, 내가 그곳에 마음을 두지 않았더라면. 동반했던 이들이 어리거나 대화가 서로 없었더라면. 먹고 자고 이동하는데 시간을 대부분 허비했더라면. 그곳이 어디이고,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어떤 만남이 있었는지, 그를 통해 무엇이 나를 달라지게 했는지 도통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그저 좋았었다 정도다. 막연하게나마. 알랭드 보통의 제안처럼, 여행의 본질은 '대화'이다. 같이 움직이는 이들과의 대화.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 먹고 자는 것과 관련한 선택과정에 필요한 말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이어 줄 수 있는 대화. 그 대화 끝이 내적 대화로 이어지면 너무나 훌륭한 여행 선물을 바리바리 챙긴 것이다.     

           

대화가 있는 여행을 떠올릴 때 [지금, 여기, 언제나의 오늘]을 벗어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벗어난다? 그렇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루틴을 새로운 일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정 역시 금방 다시 익숙한 루틴이 된다. 반복이다. 세계적인 여행의 추세이기도 한 '어디에서 얼마동안 살아보기'가 그렇다. 나의 일상을 벗어나 다른 이의 일상옆에서 자신과 주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여전히 일상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삶에 필요한 체력과 지혜로운 답을 얻으려는 탐색 활동이다. 하지만 그런 탐색 활동은 숙명처럼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그렇게 때문에 휴가, 여가, 놀이, 멈춤이라는 좁은 의미의 여행이 아니라 발을 내딛는 모든 순간의 연속의 총합, 그것이 여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떠남이 있는 모든 활동이 여행이다.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아무튼 출근이다. 어느 드라마 장면처럼 프리랜서라도 거실에서 자기 방으로 출근이다. 이렇게 저렇게 발버둥 치지만, 나는 일상 속에 머무르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나는 언제나 발을 내딛는다. 출근하고, 퇴근한다. 항상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이들을 접하면서 정확하게 파악한 듯한 업무를, 일을, 공부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 자체가 나의 실제적, 육체적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일상 속의 모든 움직임의 본질은 '떠남'이다. 잘 다녀오겠다는 다짐을 나에게 지인에게 가족에게 하는 떠남이다. 짧게 떠나건 길게 떠나건 떠남 그 자체가 여행인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내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그곳이 어떤 곳이건 상관없다. 내일을 위해 침대로 떠나고, 침대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엘리베이터로, 집에서 우리 동네로, 우리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서울에서 수원으로 대구에서 경산으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인천에서 로마로. 밴쿠버에서 인천으로. 잠에서 깸으로.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 몸을 뉘었던 곳을 나오는 순간, 나의 여행은 언제나 다시 시작된다. 그래서 모든 움직임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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