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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1. 2021

내 하루 일과를 정리하다 보니

메이플리지, 벤쿠버 자가격리 11일차

2020. 1. 24(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가장 먼저 한 행동. 휴대폰에서 'arriveCAN' 어플 알림 확인이었다. 오늘은 메이플리지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한 지 11일째 되는 날. 증상을 묻는 말에 단호하게 'NO'라고 체크하였다.


자가격리 10일차 글을 정리하면서 갑자기 든 생각중 하나. 열흘하고 하루 더라는 시간은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강제로 주어진 시간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원래 내인생에 속한 시간이다. 14일간의 자가격리라는 시간이 인생에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 아니지만, 마치 덤같은 시간. 그런 시간들이 주어지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살아보는 건 갑자기니까. 나는 그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갑자기 패턴에 맞춰 사용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느낀다.


원래 나란 사람은 예정을 해 두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그 상황이 주어졌을 때 마치 예상했던 것 처럼, 익숙하 것처럼 견뎌내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처럼 갑자기 덤으로 주어진 것 같은 자가격리 시간도, 어쩜 미리 살아본 것처럼 패턴을 만들어 지낸다.  결코 시간을 가만 내버려 두면 마치 허투르 버리는 것 같고, 의미없이 살살아가는 것 같은, 어떻게 보면 약간의 시간에 대한 강박의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스로 든다.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올해 반백이 되는 나이가 채워지는 동안,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는게 내가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다. 나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완전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 한다. 시간이 갑자기 비어버리는 것 같은 상황을. 나는 항상 그 상황을 '의미있게' 채워야 한다는, 숙제는 여유있게 미리 해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멀리 있는 미래를 목표를 설정한다. 그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준비를 시뮬레이션 한다. 여러번. 그런데 그 시뮬레이션을 여러번 하는 시점은 미래가 아니고 현재이다. 지금이다. 시뮬레이션을 하다 보면, 현재, 지금 해야하는 '현실'이 있다. 그 현실이란게 시뮬레이션을 방해하게 되면, 삶의 안정성을 잃어 버린다. 방해하는 그 사람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 그 일을 등한시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그 미래가 현실이 되면,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시뮬레이션으로 현실이 다시 방해받는 일이 일어난다, 종종. 분명 선순환은 아니다. 나란 사람이 과제 지향적이고, 성취욕이 강하고, 인정의 욕구가 큰,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인가 싶다. 흔하게 하는 말로, 현재, 지금에 집중해서 자기 만족도를 행복 지수를 조금 더 높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50이 된 지금부터. 당장!


 

세번재 식재료를 가지고 올때 처형한테 부탁을 했었다. 빨래를 해야 하는데, 세탁세재가 없으니까 조금만 덜어서 가져댜 달라고. 두번이나 당부를 했고, 처형도 잘 챙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식재료를 받고 보니 세재가 없었다. 이집 저집 딜리버리 하느라 신경을 써서 빠트렸나 했다. 식재료를 전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사진에 있는 발사믹 식초도 함께. 


점심으로 연어스테이클 했다. 연어가 익어가는 사이, 연어살을 찍어 먹을 소스 준비를 했다. 지난번 스시가져왔을 때 많이 따라온 간장 소스, 양파절임 피클, 그리고 발사믹 식초를 하나 꺼냈다. 특히 말캉말캉한 발사믹 식초는 하나가 꽤 양이 많아 보였지만, 나눠 먹을 수 없어서 접시 한 귀퉁이에 칼집을 내어 터트려 올렸다. 팬에서는 연어가 지글거리면서 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미끄렁 거리는 형체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얼른 접시를 들고 터진 발사믹 식초를 물로 닦아 봤다. 이런! 거품이 일었다. 이게 발사믹이 아니라 세제? 였던 것이다. 세탁기 세제를 사흘동안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빨래를 돌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 머리속에 있던 발사믹 식초-그러고 보니 집에서 봤던 캡슐형 발사믹 식초하고는 색깔이 살짝 다르다, 라는 걸 그제서야 알아챘다-가 고집스럽게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세제일리가 없다. 자칫하면 훌륭한 연어스테이크를 세탁기 세제로 버무릴 뻔 했다. 


무서운 선지식, 선입견. 



@11일차 잠든 시간 & 먹은 음식

(아들) 01-0800(쇼파) / 토르띠야 / 두툼 삼겹살구이.밥 / 1600-1740 / 칼국수 1830- 

(나)  01-0810(베드) / 토르띠야 / 두툼 삼겹살구이.밥 / 칼국수

11일차 아침 토르띠야
11일차 점심 두툼 삼겹살 구이(feat.블럭 사골우거지국)
11일차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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