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멍때리는 연습을 하기에 딱 좋은 장소를 하나 발견하고 애용중입니다. 집에서 차로 한 삼십분 정도 떨어진 한강 공원입니다. 그곳에 주차를 합니다. 그리고 차에 싣고 온 자전거를 탑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타고 와 다시 차에 자전거를 싣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정도 달립니다. 허릿병 때문에 온 힘을 다하지는 못합니다. 재활 수준에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한 시간 이라고 해도 거리가 넉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을 새하얗게 땀범벅으로 지우는 데 참 좋습니다. 달리면서, 달리면서 건강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참 좋습니다. 행복감으로 온 몸을 감싸고 눈빛으로 나누는 이들을 보는 게 참 좋습니다. 이제 수영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아내와 같이 김밥을 싸다 말고 '철인'이라는 단어가 툭하고 마음속에서 튀어 올랐습니다. 요즘 아내는 김밥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일단, 자신이 만들고 너무 맛있어 합니다. 그런데 정말 맛있습니다. 몇 주 전 일요일. 부모님, 동생네와 다 함께 김밥 파티를 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아내의 김밥에 잔뜩 반해있습니다. 심지어는 엄마 꺼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일까인지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해보게 되는 순간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용감하게 하셨습니다.
얼마 전 처남이 김밥집을 오픈했습니다. 딱 두 달 되어 갑니다. 그런데 이 김밥은 프리미엄 김밥입니다. 다섯까지 칼라쌀(붉은색 홍국쌀, 갈색 버섯쌀, 노란색 루테인쌀, 초록색 클로렐라쌀, **쌀)에 하루 숙성시킨 당근볶음이 시그니처인 건강 김밥입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SNS 인증이 시작되면서 정신이 없는가 봅니다. 부업으로 시작한 게 전업이 될지도 모른다고까지 하네요. 여튼 훌륭한 김밥 남매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철인이야기를 하다 김밥을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와 스물한 살 차이 납니다. 아버지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현실판 고딩엄빠 - 아니 국졸이니 국딩엄빠겠네요 -입니다. 그 엄마가 살아온 내용을 보면 수준급 트라이애슬론 선수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엄마의 철인 종목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1종목] - 스물한 살 때부터 매일 새벽기상입니다. 아버지 포함 6남매, 거기에 시부모의 아침 식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종목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걸러 하루 근무하시는 경비직 아버지의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 내가 요즘 몇 달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훅하고 불어 지나가는 봄바람 정도도 아닐 듯합니다. [2종목] - 스물한 살 때부터 매일 도시락을 쌌습니다. 서른이 될 때까지는 시동생들것까지 말이죠. 그때 엄마표 김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답니다. 그 맛이 아니면 아버지는 지금도 김밥을 잘 사 드시지 않습니다. 그 맛이 이제 아내에게서 난다고 합니다. [3종목] - 평생 식집사로 살고 있으십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는 다시 하고 싶네요. 서른 개가 넘는 화분을 닦고 키우십니다. 화분들과 대화를 하십니다. 그런데 더욱 신비로운 건 엄마 손을 거치면 죽던 것도 싱싱하게 반짝입니다. 분갈이는 아버지보다 더 선수급입니다.
그런데 엄마와 어머니의 평생 철인 3종목을 이야기하다 보니 그 철인이 꼭 아이언맨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 엄마가 모두 철인일 수밖에 없는 아주 훌륭한 종목이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멘탈갑. 다 들여다보이는 유리멘탈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들에 켜켜이 쌓여 있었을 아픔, 슬픔, 갈등을 모조리 다 이겨내고, 지워내고 잘 살아내신 게 참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곧 지혜로운 철학자이지 싶습니다. 살다 보면 길목 길목마다 있는 고비속에서도 그냥 살아진다는 그 철인들의, 철학자들의 지혜를 따라 배우는 하루가 되기를 나에게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