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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13. 2023

하늘바다멍


다 좋은 날이다. 햇살도 파란 하늘도 좋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바람은 더 좋다. 내 머릿결과 같은 방향으로 나뭇가지와 잎이 온 힘을 다해 바람에 몸을 맡겨 춤을 춘다. 바람의 양손이 가지마다 달린 나뭇잎을 한 방향으로 모아서 쓰다듬어 준다. 파란 바다에 드러누워 가느다란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수영하는 것처럼 출렁인다. 


가운데 나뭇가지에 커다란 연이 걸려 있다. 나비를 닮은 용이다. 바람을 올라앉아 파란 하늘로 훨훨 날고 싶은 끊떨어진 연. 하지만 나뭇가지가 악착같이 잡아 챈다. 심지어 끈 떨어진 연이 부러운건가. 저 연처럼 자주 흔들리는 나도 좀 잡아주지 하고 괜한 나뭇가지를 타박해 본다. 


참 오랜만에 얇은 천하나 깔고 잔디에 드러누웠다. 내 머릿결이 부드럽게 넘어가 이마를 드러내 준다.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까만 렌즈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렇게 한참을 구름만 본다.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구름만 본다. 내가 하늘에 떠있고 하늘이 바다가 된 거일지도 모른다.  


파란 하늘바다에 그려진 새하얀 구름이 배가 되어 움직인다. 참 빠르다. 생각보다 더 빠르다. 거대한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바람이 내게 와, 온몸 구석구석에서 속삭인다. 그러는 사이 내 시야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미끄러지듯 구름배들이 지나간다. 눈 몇 번 깜빡 거리는 사이에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간다. 


엄마 구름 옆에 연기 같은 아가 구름이 뒤쫓아 달린다. 그러다 멈칫. 나를 향해 달려 내려온다. 참 빠르다. 나를 덮어버릴 것 같다. 아가 구름이 옆으로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새하얀 덩어리가 옅어진다. 옅어지는 사이사이에 파란 점들이 드러난다. 그러다 파란 바닷속으로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걸 지켜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는 온통 구름배밖에 들어있지 않는다. 내 몸은 온통 바람밖에 느끼지 않는다. 구름, 바람이 나에게만 존재하는 그 순간에는. 나를 원래 지배하던 수많은 생각이 몽땅 다 구름배가 되었다. 그러다 전부 다 새하얗게 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늘 바닷속으로 잠겨버렸다. 


몸도 마음도 순간 가볍다. 배꼽부터 꽉 차 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다시 구름을 본다. 엄마 구름에서 뛰쳐나온 듯 한 아가 구름이 엄마 구름을 향해 다시 손짓하며 뒤쫓는다. 아니 옆으로 퍼지면서 옅어진다. 그리고 다시 하늘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한없이 짙었던 사랑이 옅어지듯이. 그 기억이 외로움이 옅어지듯이.


하늘바다는 말한다. 구름은 다시 생겨나서 달리고 옅어지고 다시 생겨난다고. 화내고 울고 웃다 또다시 사라진다고. 하지만 하늘바다는 구름에 대해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고. 다시 올 거라고. 언제나 기다릴 거라고. 왔을 때 잘해 주라고. 옅어지려는 사랑을 짙게 짙게 나누라고. 지금 사랑이 가장 크고 진할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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