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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14. 2023

돌빵이지만 다시 출동

지난주 어느 날 아침. 원래처럼 육십몇 킬로의 속도로 출근 중이었다. 신호를 기다렸다 출발하는 그 찰나에 내 눈높이의 차유리가 왼쪽 끝에서 조수석으로 향해 쭈욱 하고 순식간에 금이 갔다. 어, 하면서 톡톡하고 두드리니 가위로 종이 자르적 조수석까지 주욱. 어릴 적 시커먼 하천 위에 얼어있던 얼음이 순간 굉음을 내면서 쩌저적 금이 가듯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7년만 넘은, 여전히 잘 달리는 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사십여 분을 더 조심스럽게 달려 도착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앞유리를 들여다보니 시작점에 콕 박힌 흔적이 선명했다. 속칭 돌빵의 흔적이었다.



분명 전날에는 멀쩡했다. 내 시야에 걸리는 하얀 연가시 같은 선이 없었다. 그래서 더 내 입장에서는 분명 갑자기다. 저녁에 주차되어 있던 지하주차장을 둘러봤다. 늦게 퇴근하면 의례 이중 주차를 하던 자리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자리가 CCTV 사각지대라는 것을. 내 차 블랙박스는 주차할 때 꺼지게 설정되어 있고. 두 번의 배터리 방전 때문에. 그러다 보니 순간 며칠 전 기억이 확 떠올랐다. 그 전주 금요일. 어머님 병원에 가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딱'하는 소리를 들렸었다는 게. 그런데 그때 분명 오른쪽 귀에 더 크게 들렸었다. 그래서 튀어 오른 자그마한 돌이 옆을 맞고 튕겼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앞유리였던 거다.


연차 내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그렇게 그냥 잊고 있었던 가 보다. 자그마한 돌빵에서 시작한 단단한 유리의 흔들림이 사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서서히 바람에 견디다 견디다 한 순간에 갈라진 것이다. 콕 찍힌 그 부분에 자그마한 투명 테이프 하나만 붙여놨으면 될 일이다. 아니, 내려서 한번 쓰윽 확인만 해 봤으면 될 일이다. 뭐 큰일은 아닐 수 있다. 악마는 역시 디테일한 곳에 숨어서 나를 늘 지켜본다. 하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돌빵이랑 너무 비슷하니 자꾸 곱씹게 된다. 누가 그랬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 가장 후회하는 게 그때 그렇게 해볼걸 이라고.


도로에  올라서지 않을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이런 저런 차들과 뒤섞여 달릴 수 밖에 다. 그러는 사이 무수히 많은 돌빵들이 내 몸과 마음에 달려 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넉넉하게 즐길 수 없다면, 어떻게 즐기는 건지를 잘 못 배워왔다면 질기게라도 버텨내는 힘을 길러야지 싶다. 그래서 돌빵이 돌빵에서 끝나도록 해야지 싶다. 그래야만 7년 동안 나의 비바람을 막아 주던 차 앞유리가 자그마한 돌 하나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다시 막을 수 있지 싶다. 자그마한 스카치 테이프 하나로. 어쩌면 삶이라는 게 2미리 남짓한 얇은 막 덕에 이만큼이라도 살아가지 싶었다.



7년 넘게 세상으로부터 나를 막아 준 앞유리를 한참 내려다봤다. 그 얇은 두께가 나의 안전을 안정을 안쪽에서의 행복을 지켜내는 데 큰 도움을 준 거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휘몰아치는 비바람도 얇은 우산 하나가, 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냉기도 얇은 비닐 한 조각이, 뜨거운 태양도 한 거풀의 옷감이 막아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는다. 내 삶의 안전과 안정, 행복은 그 얇은 몇 미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도 마음도 조그만하게 생채기 낫을 때 약 바르고, 챙기고, 보듬어 주어야지. 그것도 미리 미리. 모으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다시 차를 몰고 움직였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햇살이 옅어진 초록색 썬팅을 뚫고 차 안으로 들이쳤다. 세상이 온통 파르스름하게 보였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차유리 돌빵은 이렇게 30분만에 38만원을 들여 뚝딱 교체할 수 있기라도 하지. 살아 내느라 군데 군데 나 있는 돌빵, 내가 일부러 혹은 무심코 날린 돌빵을 고스란히 받았을지 모를 이들의 상처는, 하고.


그러는 사이 하얗고 가느다란 연가시가 있던 그 자리. 그 높이에 뭔가가 다시 눈에 걸렸다. 자세히 보니 영문 이니셜 SK였다. 썬팅 로고였다. 하얀 구름이 만들어 더 파랗게 만들어 놓은 하늘 한 가운데에 둥둥 떠 있었다. 마치 일부러 그 눈높이에 오게 기술적으로 썬팅을 했나 싶을 정도로 딱 눈높이. 그러다 혼자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여권에 있는 내 이름 영문 이니셜이다. SK. 점심을 거르고 달려 온 나를 걱정해 준 인상 좋은 사장님 덕에, 아니 자그마한 돌멩이 덕에 높고 깊게 내 이름이 새겨졌다. 여권 들고 저 하늘 속으로 당장 날아들고 싶다, 는 생각이 달리면서 들었다.


피에쓰 : 참고로 나의 이름은 신신파스로 몇 번 문지르니 파란 하늘 속으로 풍덩하고 빠져 들었다. 모두 안전 운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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