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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26. 2023

12분 17초

[일상여행3]...이미지:flaticon

아내와 어제 미용실을 함께 갔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곳입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입니다.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1인 미용실인데, 이곳은 예약시스템이 아주 엔틱(?)합니다. 모바일 예약시스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날로그 한 방식의 100% 예약제입니다. 입구 쪽에 조그마한 탁상 달력이 하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달력입니다. 거기 날짜 숫자 근처에 메모 형태로 손님들이 직접 기록하는 겁니다. 빈 날짜가 없답니다. 매번. 그곳을 지지난주에 퇴근하면서 아내가 나와 같은 날짜에 예약해 주었답니다. 일반적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잘하면서(맛나면서, 좋으면서, 다양하면서) 저렴한 곳이지요. 그곳이 그렇게 동네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곳이랍니다. 


미용사는 40대쯤으로 보입니다. 태생이 우리나라가 아니지 싶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한국인들보다 더 살갑게, 더 친절하게 의사소통이 됩니다. 혼자이면서도 전혀 서두르지 않는 노하우를 가져 내내 마음이 같이 바빠지지 않아 좋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작을 하면서는 절대 손님을 대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과 눈을 돌려 아이컨택 후 이야기를 합니다. 어제 우리 부부는 뿌염을 했습니다. 꼼꼼하게 염색을 한 뒤 이십여 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샴푸를 합니다. 여느 미용실에서나 진행되는 절차와 비슷합니다. 


먼저 물로 염색액을 씻어 냅니다. 미지근한 약한 물줄기로 머리카락을 살살 살살 비비면서 천천히, 천천히 씻겨냅니다. 뒤로 힘껏 젖힌 머리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전혀 급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충분히, 충분히 씻겨내겠다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손가락 끝에서 전달됩니다. 물을 잠그고는 옆에 있는 케이지 위에서 샴푸액을 손에 조금 묻힙니다. 폭폭 두 번의 펌프질 소리가 들립니다. 양 손바닥으로 뒤통수로 안아주듯 감싸 쥐고 열개의 손가락 끝 마디에 힘을 주면서 사부작 거립니다. 느리게 빠르게를 반복합니다. 어느 손가락 하나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입니다. 그러다 오른손바닥으로 머리를 들어 올린 사이 왼손으로 정수리, 이마 부근을 디제이 믹싱 하듯이 두세 개의 손가락만으로 짧게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런 다음 반대로도 합니다. 그리고는 촤하 하는 물줄기로 구석구석 씻어 냅니다. 처음 염색액을 씻어내던 물줄기보다는 강하게 틀었습니다.


뒤통수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 손으로 물기를 훔쳐 냅니다. 그리고 다시 물을 잠급니다. 이번에도 폭폭 두 번의 펌프질을 해서 샴푸액을 다시 손에 올려 먼저 양손을 비비는 게 들립니다. 그리고 마치 자, 시작하면서 손뼉 치듯이 손바닥을 한번 친 후 다시 샴푸액을 온 머리에 골고루 발라줍니다. 이번에는 열개 손가락만 사용해서 관개놀이, 귀, 이마 부근을 집중적으로 샴푸 합니다. 아마 머리카락과 살이 닿은 부분을 따라가면서 샴푸를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물을 틉니다. 이번에도 강하게 미진근한 물줄기로 씻어냅니다. 손바닥으로 올백을 만들듯이 모든 머리카락을 뒤통수 방향으로 쓸어내립니다. 처음보다는 미끄덩한 느낌이 적어졌는지 손바닥에서 끅끅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샴푸액이 다 씻겨 내려간 소리 같습니다.  다시 물을 잠급니다. 그리고 세 번째 샴푸액을 폭폭폭 세 번 짭니다. 이번에는 두피에 직접 가 닿게 일부러 손가락을 더 세워 머리통을 감싸 쥐듯 열개 손가락을 동시에 쥐에 짜듯 튕깁니다. 그렇게 서너 번을 튕긴 뒤 다시 양 손바닥을 이용해 온 머리를 비비듯이 문지릅니다. 차츰차츰 박하가루를 물에 타 머리카락에 부은 듯 화끈거립니다. 세신사가 벅벅 문지른 뒤 맨소래담 로션을 바른 것 같이 기분 좋게 머리 전체가 화하게 느껴집니다. 


물을 다시 틉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게 샤워기 옆에서 손을 가져다 물이 쏟아지는 동시에 물기를 머리카락에서 제거하는 방식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특히 머리카락과 피부의 경계 부분에 손을 세워 마치 방패처럼 물기를 막아 올립니다. 그러면서 창창창창 하는 소리가 나게 물을 손바닥 위에 올려서 머리 위에 가져다 손바닥으로 쳑쳑쳑쳑 살살 때려줍니다. 화한 느낌이  더 선명하고 깊게 느껴집니다. 다시 물을 잠급니다. 이번에도 샴푸액을 폭폭 두 번 짜는 게 싶었습니다. 또 샴푸? 하는 사이에 바로 양 손바닥을 머리카락 위에 살포시 덮듯이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믹싱 하듯 하는 방식이지만 천천히, 느리게 머리카락 위에서 살살살 움직입니다. 오일입니다. 반질 매끈하게 느껴집니다. 이게 끝? 이 아닙니다. 


다시 양손과 손가락을 쫘악 펼쳐서 머리 전체를 감싸 쥡니다. 힘을 천천히 천천히 주면서 누릅니다. 세례 받듯이 가만히 있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러고 나서 양 네 손가락을 이마 위 근처로 옮기면서 엄지 손가락이 관자놀이로 미끄러지게 이동합니다. 정확하게 관자놀이를 꾸욱 하고 누릅니다. 눌렀다 뗐다를 세 번 반복합니다. 양 네 손가락으로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 부분을 살살 살살 비비면서 눌러줍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양 눈두덩이가 움찔움찔거리면서 눈 안으로 형광불빛이 살짝살짝 세어 들어옵니다. 


그다음 양손 엄지손가락을 뒤통수 가운데로 모으듯 옮겨서 마치 우뇌와 좌뇌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두 엄지손가락으로 따라 내려갑니다. 천천히 천천히 내려가다 오목하게 들어간 경추 시작 부분에 가서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두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하고 두어 번 누릅니다.  


12분 17초. 샴푸시간입니다. 전체 걸린 시간이 아니라 샴푸 시간만입니다. 지금까지 이런 미용실은 없었습니다. 이런 미용사는 없었습니다. 이 집은 미용실인가 마사지숍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뿌염까지 한 모든 비용이 더욱 놀랍습니다. 이런 정도의 서비스를 받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정성과 노하우, 친절함이 가득한 기술을 발휘한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아날로그지만 왜 예약이 어렵고, 한두 달 예약아 항상 차있다고 아내가 심경(?)을 토로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 노동에 대한 모든 대가가 이만 오천원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내의 머리 길이 추가는 오천 원만 더 받는다는 사실을. 


치뤄야 할 값도 값이지만 샴푸 하는 절차가 가히 예술의 경지입니다. 전국, 아니 전 세계에 이런 미용실은, 미용사는 없지 싶습니다. 아니, 확실하게 없을 것 같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나의 몸을 이렇게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워 있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온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구름 위를 아무런 걱정 없이 사뿐히 걷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온몸에 신의 은총을 내려주는 신부님의 손길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또 잘 살아내었다고 포근하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힘입니다. 검은 머리가 서서히 파뿌리 비스무리하게 되어 가는 나를 토닥여 감싸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참 고마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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