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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08. 2023

아이 엠 길버트

[유병장수 합시다]3...사진:unsplash

이 글을 쓰는 지금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제, 어제 병원에 왔다갔다 하면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보다. 자도 자도 몸이 가볍지 않다. 어제는 8시간, 오늘은 9시간 가까이 잤다. 자면서도 생각한다.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쯤 일어나야 하는데. 다시, 출발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순간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이 파팍 거리다 이내 사라진다. 그러다 시계를 본다. 삼십 분,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날은 화요일 저녁이었다. 낮에 9시간 중 7시간 강의를 한 날이었다. 당연히 강의 내내 서 있었다. 그리고 공강인 두 시간도 거의 서서 근무했다. 허리 덕분이다. 8시가 조금 넘어서 퇴근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운동을 사십 분 정도 했다. 그렇게 화요일을 보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일어나지를 못했다. 죽은 듯이 잤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5시 40분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지 못한 게 처음이다. 게다가 오늘까지 이틀 연속으로. 뭐, 주말에 가끔 전날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난 경우는 몇번 있었다. 하지만 일찍 잤는데 일어나지 못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래서 기분이 쳐진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런데 의심 가는 친구가 있긴 하다. 


내 안에는 길버트가 산다는 사실을 작년에 처음 알았다. 길버트는 아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의 남자 친구 길버트 블라이드와 성이 같다. 프랑스 의사 질베르또의 영어식 발음이다. 길버트 증후군. 여하튼 그 친구가 활발하게 내 몸 안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이 친구 말을 듣지 않으면 빌리루빈 수치를 강제로 높이려 한다.  


아내가 좋아하는 길버트 역시 내 몸속에서 평생 함께 해야 할 친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지 또 다짐하게 만든다. 금식, 음주, 과도한 신체활동, 다이어트하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조언하는 친구다. 욕심내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친구다.-


난 아내와 친구로 만나 친구처럼 산다. 가끔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스무 살을 기억한다. 나를 멈추게 하는 친구는 아내와 길버트다. 사실 나는 아내보다 길버트를 먼저 만난 거다. 내 몸으로 함께 태어났을 테니까. 태어난 후 만난 아내와 그렇게 함께 우리 셋은 친구처럼 평생을 함께 걸어가야 할 파트너다. 그나저나 또 졸린다. 친구야, 이제 일 좀 하자. 글 좀 쓰자. 



2019년 11월 15일(금) 일기 중 일부분.

럭키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정기 검진. 지난주 검사한 간초음파, 피검사 결과를 보는 날이다. 황달수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을 유지하고 있단다. 혈액 속에서 항체는 없지만 S항원은 사라졌단다. 100명 중이 2-3명에서 나타나는 ‘럭키’한 케이스란다. 황달수치는 유전적이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단다. 평소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밥을 거르지 않으면 된단다. 이 간단한 게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내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아침 9시에 검사 예약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야외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걸음에서 평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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