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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0. 2023

임내기후

[풀꽃들에게]10

유월 중순이다. 일요일인 그제는 올 들어 첫 폭염특보가 내렸다. 어제는 폭염주의보까지. 작년보다 일주일 빠른 거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새벽 4시 반. 원래 선선한 이 공간이 후텁하다. 벌써 22도를 가리킨다. 정말 본격적으로 더워질 일만 남았다. 몇 해 전 친구와 단둘이 걸었던 5월의 제주도 올레길이 새삼 기억난다. 비자림 숲 속 데크 위에 누워 올려다보던 숲 속 하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행복했고 가벼웠던 오월 하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숲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하다 못해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숲 바깥보다 숲 속은 기온이 낮아진다. 임내기후다. 그뿐인가. 비바람도 약하게 만든다. 해안가에서는 거대한 태풍과 해일도 막아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처럼 숲 속은 인간도, 풀도, 바람도 지켜낸다. 이제 숲이 더 좋아질 날만 남았다.


아홉 살 타닥이. 이제는 신나게 걷다가는 불쑥 산책로 옆 숲 속으로 들어가서 쉬자고 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라는 거대한 숲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나처럼. 우리들처럼. 처음 벗어난 그 순간에 느꼈던 숲 속과의 온도차이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다. 그중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바로 숲에 대한 그리움. 오십이 넘어서면서 되려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던 이유일지도.


35년 전 나처럼 스물 하나 아드님이 집을 떠난 지 3년째다. 3주 전. 내 돈을 내가 보내는 데 영어로 된 이런저런 문건을 파악하고 디파짓을 송금하는 데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해당 대학에 보내지는 데 다시 사나흘. 엊그제 최종 입학허가서를 아드님이 받아 보내왔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이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잊어도 부모는 자식을 한 순간도 그러지 못한다. 오히려 매 순간이 더 새록하다. 그건 자식이면서 부모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자식이 부모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임내 기후의 안전에만 빠져 있어서는 더 큰 문제일 거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키웠지만 지금부터는 세상에서 더 많이 클 텐데, 문제는 항상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다. 우리의 부모처럼.


그나저나 60대의 부모보다 20대의 자식 세대가 집에서 쉬고, 놀고 있다는 걱정 한 가득한 뉴스가 연일 이어진다. 두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60대가 20대일 때보다 지금의 20대가 무려 사오십만 명 가까이 적게 태어났다. 그러다 보니 생산가능 연령층에서 통계적으로 적게 잡힌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의 60대보다 20대가 먹고사는 방식에서 보고 자란 기준이 훨씬 더 높다. 먹고 사는 것 자체에 두려움이 거의 없다. 그 자체가 국가적으로 더 두렵다.  


극명하게도 에어컨을 대하는 것에서부터 다르다. 덥지만 움직인다. 더운 게 여름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느릿느릿해야 할 일을 다해낸다. 그게 60대 이상이다. 2020년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89%가 넘는다. 인구의 89% 이상이 구, 동에 거주한다는 이야기다. 도시말이다. 그렇게 지금의 20대는 태어나면서 도시에 살았다. 


그 도시 속 인공열 - 자동차열, 냉난방 실외기열, 지열 등 - 에 그렇게 익숙하다. 도시적 삶의 특징 중 하나는 숲보다 에어컨이지 싶다. 숲을 찾아들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자동차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오피스로 이어지는 에어컨이 휴대폰 마냥 자연스러워진 생활양식 덕분이다. 그래서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에어컨 앞에 머리를 디 밀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열불을 식히는 데는 서툴다.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심지어는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 


부모, 어른들의 임내외 기후 역할이 절실한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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