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May 29. 2023

이제는 내가 밭을 닮을 차례

[풀꽃들에게]10_텃밭.사람들 유랑기 6

체육대회. 자외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아이들에게는. 마스크 완전히 벗고 하는 첫 체육대회의 백미는 여전히 반티이다. 해병대, 교련복, 경찰복, 119 근무복, 전투군인복, 각종 망토에 캐릭터 옷까지. 평소에는 입기 어려운 옷들을 반별로 챙겨 입었다. 자기들의 바람이고 팀워크의 자랑이다. 몇몇은 경기 결과에 과열이 되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그냥 즐긴다. 아쉬워하다 금방 잊는다. 참 건강하다. 고개를 떨구지만 손뼉을 쳐준다.  



평소 조용조용하던 우리 반 아이들은 1등, 2등, 3등, 꼴찌를 다양하게 하는 과정에서 맨 얼굴로 자기가 누군지를 서너 달 만에 한방에 알려내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 알록달록한 아이들 곁을 지나 텃밭으로 내려가 본다. 어찌 그리 오버랩되는지. 옅은 초록색이지만 조금씩 다 다르다. 크기도 다르다. 어떤 잎은 삐죽거리고, 어떤 줄기는 반대쪽으로 휘어져 있지만 아주 조화롭다. 그 모습 그대로 다 초록이다. 


성T는 이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만난 나의 제자와 산다. 체육담당이다. 방과 후 활동으로 야구팀을 운영한다. 그 아이들이 점심시간에도 가끔 캐치볼을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반마다 내노라(?)하는 꾸러기들이다. 내 수업에 들어오는 유도하게 생긴 벼리도 야구팀이다. 벼리 친구 꾸러기들도 여럿 보인다. 텃밭에서 만나 그런다. 자신이 체육활동을 빌미로 그렇게 모아줘야, 놀아줘야 애들이 숨을 쉰다고. 다른 샘들이 숨을 쉰다고. 십 년 넘는 후배지만 참 스승이다. 


양T는 나와 동갑이다. 텃밭의 실질적인 운영 책임자다. 성격상 자주 삐쭉거린다. 이런저런 일에 불만을 표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텃밭에서 언제나 가라앉는 듯하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걸 많이 느끼게 된다. 술을 좋아해서 자주 마시자고 한다. 따님 픽업하느라 세 번 이야기하면 한번 가능하다. 그런데도 계속 이야기해 주는 고마운 친구다. 텃밭 덕에 사무실에서 컴다운이 되는 게 분명하다. 


홍T는 정년 2년 남은 사회과 선배이다. 언제나 말이 없고, 미소만 지으신다. 하지만 학교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후배들을 언제나 눈으로 걱정하신다. 앞으로 선생 하기 더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이 얼갈이만큼 한가득이다. 걸음걸이는 선비 저리 가라 싶다. 텃밭도 가장 늦게 시작했다. 이러다 시기를 놓치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종이 심어져 있고, 어느 순간 이미 수확을 하고, 다시 모종을 심어 놓았다.  


신T는 내년 2월에 정년을 하시는 우리 학교 최고참이다. 하지만 마음은 신참인 듯하다. 항상 나눠주고, 퍼준다. 몇 번을 사양해도 쌈채소를 한가득 손에 쥐어 준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허릿병 꼭 나아서 당신 텃밭을 다 물려받으라 한다. 밭만큼 정직한 게 없다고 강조하신다. 물 뿌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 보면 살아온 인생이 엿보이는 듯하다. 


몇 평 안 되는 자그마한 각자의 텃밭에는 애정어른 주인들의 손길이, 마음이, 애정이 허공 속에서도 한가득 느껴진다. 밭주인과 어긋나 매번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분 얼굴이 연초록 위에서 둥둥 떠다닌다. 잠깐 텃밭에서 연초록 에너지를 눈으로 담아 그라운드로 올라오니 벼리와 여리가 포함된 댄스팀의 파워풀한 점심 댄스 공연 중이다. 생기 넘치는 연초록잎들이 살아 움직이듯 한다. 이제는 내가 한결같은, 정직한 밭을 닮을 차례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 여행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