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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30. 2023

상추 꼬다리와 깻잎 꼬다리

어제는 어머님 입원일이었다. 대체공휴일이지만 병원 일정이 진행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으로 하루를 채웠다. 입원 후 금식 전에 드시는 점심. 쌈을 참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고깃집에 깻잎과 상추를 한 봉지 가득 직접 들고 오셨다. 어머님 옆에서 밥을 같이 먹을 때 늘 어머님 식도로 꿀꺽하고 맛있게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 게 참 좋다. 녹음이라도 해 놓고 싶을 정도다. 


어머님은 이미 알고 계셨는지 고깃집에서는 상추하고 고추만 조금씩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상추는 잘 먹지 않는다. 깻잎이 있을 때는. 오래전 한의원을 한참 다니면서부터였다. 어머님은 노란 봉지를 테이블 아래 의자 위에 올려 놓으시고 슬쩍슬쩍 깻잎과 상추를 내 앞에 올려놓으셨다. 그러는 사이 내 앞에는 깻잎 꼬다리가, 어머님 앞에는 상추 꼬다리가 쌓여 갔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을 했다. 어머님은 왜 깻잎은 꼬다리까지 다 드시면서 상추 꼬다리는 남기실까. 왜 나는 깻잎 꼬다리를 안 먹는 거지 하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신념 봉지에 들어 온 자그마한 정보가 습관이 되었지 싶다. 스스로도 언제부터인지 잘 모른다. 보통 이럴 경우에는 왜 그래 하고 질문을 받으면 응, 그냥 하게 될게 분명하다. 


그게 어느 순간 내 것이 된 신념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신념이 여러개 담긴 신념 봉지를 달고 산다. 그러면서도 그 신념이 비합리적인지 합리적인지에 대한 검증은 잘하지 못한다. 많이 배우고 덜 배우고의 차이가 아니다. 그냥 그게 맞다고,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게 맞다고 믿으면서 살아간다.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백만 가지 이유 중 하나이지 싶다.


그런데 뭐 상추, 깻잎 꼬다리 정도는 괜찮다. 어떤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으니까. 나이 먹고 왜 저래하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는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마이너스가 되는 잘못된 신념을 지니고 사는 건 아닌지, 자신의 평생 신념을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 보는 여유를 지닌 게 진짜 어른과 어른인 척하는 이를 구분 짓는 기준이 아닐까. 


진짜 어른인 어머님은 의사의 권위에는 무조건 맹목적이시다. 반복되는 힘겨운 것들을 잘 이겨내고, 시간을 잘 지키신다. 오늘 예정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 일주일이나 걸리지만. 평생 자신의 신께 위기마다, 새벽마다 기도를 올려 오신, 상추 꼬다리 같은 신념으로 168시간을 잘 이겨내시리라 믿는다. 그게 내가 스물두 해 동안 옆에서 함께한 여든 어머님에 대한, 깻잎 꼬다리 같은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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