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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9. 2023

적정 불안과 주눅의 차이

어제는 장마 사이에 하늘이 참 맑은 아침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맑은 하늘 아래를 달리면서 '내가 좀 주눅이 들어 있나' 하는 생각이 훅 올라오더군요. 비슷한 시간에 많은 차들 사이를 달려 항상 출근하는 도로 위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싶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보는 시험 - 고3 아이들 2차 지필평가 오늘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진행됩니다. 그런데 주눅이라 표현한 건 시험 울렁증이었던 겁니다. 그거 학생들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 스무 해 넘게 매년 3-4회 출제를 반복적으로 해 왔는데도 말이지요. 올해는 특히 얼마 전에 전국적으로 문제를 뒤집는 일이 벌어진 다음이라... - 때문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헛헛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요즘 정치권 덕분에 고등학교 문항 변별도, 킬러 문항이란 표현이 특별 대접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바람, 눈, 비 같은 일반 용어입니다. 뭐, 특별할 게 없다는 의미이지요. 교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만, 학교에서는 소위 수능용 주요 교과의 경우, 일 년에 보통 3-4회의 시험을 봅니다. 물론 당연히 그때마다 다른 문제를 출제해야 합니다. 9등급으로 나뉘어야 하는 대부분의 과목들은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동시에 문항에 오류가 없어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가장 큰 오류는 배우지 않은 걸 출제하는 겁니다. 이런 오류를 킬러 문항과 연결 짓는 건 개념 자체가 다르지요. 그래서 킬러 문항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간단하게 계산을 해봤습니다. 제 교직 경력 동안 69회 ~ 92회를 출제했습니다. 대략 1,725개 ~ 2,300개의 문항이 제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중에서 단 한 문항 때문에 1회 재시험을 봤습니다. 그렇게 따져 보니 문항 오류율이 0.057%입니다. 경이적인 숫자입니다. 불량률이 0.1%가 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눈을 감고도 뚝딱 만들어야 하지 싶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달인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써야 합니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들과 공유한 내용만을 가지고 질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한 번의 재시험도 문제 자체의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진도를 나가는 과정에서 한 학급에 한 문장의 노트가 빠져 있었던 이유에서 입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상이한 교육과정, 교과서, 다른 분위기의 아이들을 분석하고, 수업하고, 문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 직장인 여기, 학교에서 가장 오래 있으면서도 이 과정이 가장 익숙해지지 않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필평가 출제 후 담당 교과가 안전(?)하게 종료될 때까지 자그마한 배를 탄 증상이 따라다닙니다.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이 학교로 전근을 온 올해는 그 증상이 살짝 더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먹고사는 데 필요한 적절한 불안 증상입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신경 쓰기 정도이지요. 그러니 물론 겉으로는 태연하게 잘 살아내는 거죠. 나는 힘든데 저 사람은 뭐가 그리 항상 즐거울까 정도지요.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요. 저도 그렇게 연기까지는 아니어도 반 아이들과 수업 들어가는 교실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과 적절하게 관계도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이제, 정년까지 십 년 남았으니 잘 살아내겠죠.


그런데 시험 울렁증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실수에 대비하려는 적절한 불안 증상은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업무에 임하게 만듭니다. 몰입도를 높입니다. 시간 사용의 효율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직장인들한테 기본 콘셉트처럼 드리워져 있는 '주눅'은 다른 문제입니다. 주눅의 상황에서는 생산성이 나타나지 않으니까요. 아니, 주눅이라는 말 자체가 직장에서는 금기어이지 싶습니다.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다 해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럼 그만둬. 에 해당하는 말이지요. 


표준국어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주눅[주ː눅]   

1. 기운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태도나 성질

예시 문장)이 반 아이들은 항상 야단만 맞아서 모두 주눅이 들어있다.


2. 부끄러움이 없이 언죽번죽한 태도나 성질

예시 문장) 저 녀석은 남들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주눅이 좋게 얼렁뚱땅 넘긴다.


상반된 내용으로 두 가지가 모두 나오는군요. 2번 의미는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네요. 앞으로는 첫 번째 의미 -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 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그 표현이 되어 있는지, 훌륭한 웹사전을 통해 찾아서 비교해 봅니다.  


[영어] feel daunted / timid / small ... 겁에 질린, 소심한, 작아지는

[프랑스어] étourdi ... 멍한, 경솔한, 덤벙거리는, 헐렁한

[독일어] ängstlich ... 겁먹은, 조바심이 드는, 지나치게 꼼꼼한, 고지식한

[중국어] 胆小 ... 겁 많은, 무서워 움츠리는

[일본어] ジュンドン ... 기가 죽다, 뒤떨어지다 

[스페인어] tímido  ... 겁을 먹은, 소심한

[베트남어] nhút nhát ... 겁내는, 수줍은

[힌디어] डरपोक ... 겁쟁이의, 겁이 많은

[히브리어] נחבא אל הכלים ... 수줍은, 겸손한

[우크라이나어] боязкий ... 겁 많은, 소심한

[러시아어] робкий ... 겁먹은, 소심한, 부끄럼 타는


찾아 놓고 보니, 문화권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행간의 공통된 의미가 보입니다. 즉, '주눅 든' 상황을 '겁'이라는 의미와 맞닿아 있군요. 무언가에 겁에 질려 있어, 행동과 생각, 결정에 걸림돌이 생긴다는 의미. 문화권에 따라서는 더 들어가 그런 사람들을 '소심'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고 보니 소심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timid는 강원, 경북 지역의 사투리와 얄궂게 발음이 비슷합니다. 어리숙하고, 주눅 들어 있으면 '왜 사람이 그렇게 티미한지'라고 표현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간혹 들었습니다. 티미하다, 가 주눅 들어 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었던 거군요.


적정한 불안은 생산성을 높입니다. 과정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간이 잘 가지요.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에 비해 주눅은 내 힘으로,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예비' 공포입니다. 공포 앞에 예비라는 표현을 한 이유는 스스로 알아서 부정적인 상상을 반복하는 심리적인 상황에 대해 묘사하기 위함입니다. 계속핵서 머릿속으로 실패 이후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무한 반복하는 겁니다. 그렇게 미리 몸과 마음을 부정적인 방향에 맞추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아닙니다. 실패를 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을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라고 하지요. 그 시행착오에서 착오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겁니다. 시행, 시행, 시행을 통해 계속 착오보다는 실패보다는 언제나 성공을 해야 한다는 강박,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한 실패 회피, 외면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마치 문항 출제에서의 실패가 두려워 문항 자체를 출제하지 않거나 다른 이가 출제한 문항을 내 것인 양 내세우면서 어찌어찌 그 기간을 채워 온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며칠 전 썩어 가던 휴대폰을 바꾸었습니다. 시원한 매장 안에서 새 기계 화면에 보호필름을 무심하게, 빠르게, 완벽하게 착 붙이는 점장님한테 물었습니다. 아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붙이셔요. 저는 몇 번을 해도 방울방울이던데요. 네. ㅎㅎ. 제가 최소 십 년 동안 아마 못 붙였어도 하루에 한 장 씩은 붙였을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십 년 동안 최소 3600장이 넘는 보호 필름을 기다리는 고객 앞에서  붙이면서 적정 불안과 주눅이 양쪽에서 같이 매달려 있는 저울질을 스스로 3600번 이상 했을 겁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나를, 나의 경험치를 신뢰하는 정도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조금씩 조금씩 커지면서 주눅의 그늘이 옅어졌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착오, 착오, 착오를 겪으면서 연습을 했을 겁니다. 그 연습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지금도 양쪽의 저울질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아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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