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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30. 2023

해치우지 않으면서...

오늘도 점심을 먹고 텃밭으로 내려갑니다. 짧은 거리에 이십여분 정도밖의 시간 여유는 없지만. 볕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도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해도 그래도 매일 나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텃밭에 내려가 무럭무럭 크고 있는 생명들을 보다 보면 참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다짐을 하게 되거든요. 같은 생명이어도 실하고 허하고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초보여서 익숙해서 그렇지 싶습니다. 초보와 익숙함의 차이는 느릿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관심입니다. 열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더 들여다보면서 세워주고 묶어주고, 골라주고 뽑아주고. 


짙어지고 커지는 열매들을 보는 사이 밭주인들이 다녀갑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법 아이들도 구경하러 많이들 다녀갑니다.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는 아이들처럼 눈으로 알록달록한 꽃과 열매들을 보러 오는 게 더 즐거운 아이들이 있는 것도 다양한 세상 그대로입니다. 어떤 밭주인은 아예 내려오지 않아 몇 주 사이에 정글이 되어 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쓱 한번 돌아보고 몇 분 만에 후다닥 하고 달아나듯 사라져 버립니다. 또 어떤 주인은 가만히 쪼그려 앉아, 허리를 굽혀 들여다 보고 한 올 한 올 매만지고, 미소 지으면서 곁을 지켜주려고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어릴 적부터 귀딱지 생기게 들렸던 말 중에 하나가 아마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건 알겠는데, 뭘, 어떻게 하는 게 즐기는 건가, 하는 생각이라도 들기 시작한 게 조만간 마흔이 되는 무렵쯤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쩌면 즐기기 전에 피해 갈 방법만 찾으려는 건 본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업무를 후다닥 처리합니다. 질과 속도를 동시에 강조하는, 강요하는 문화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보다 저렇게 하는 게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만들어 보자, 제안해 보자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스스로 경계합니다.  


숙제하듯 운동을 합니다. 빠트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우선일 때는 느긋하게 하지 못하고 시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산책을 할 때도 파워 워킹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지나다니는 이, 나무 위에 걸친 하늘,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 등이 내 눈에,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모으고 챙기고 준비해서 여행을 떠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나면서 돌아올 것을 걱정합니다. 도착해서 내일을 미리 작정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하듯이 돌아칩니다. 다시 한번 어떻게 온 건데, 언제 다시 오겠어하며 늘 하는 핑계를 한번 더, 여전히 합니다. 


가족과 지인과 동료와 대화를 할 때 듣는 것보다 말하는 데 더 큰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알겠고, 나는 말이야 가 기본 모드입니다. 그렇다고 들을 때 마음을 써서 듣는 것도 여태껏 습관이 들지 않았나 봅니다. 언제고 내 이야기를 하려고 도사리는 듯하네요. 이렇게 말하다 보니 마디마디에서 해치우느라 급한 인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다 자기 나이를 얼른 해치우고 다음 나이를 먹고 싶어 하지만, 그때가 되어도 다시 계속 무엇인가를 해치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업무를, 식사를 해치우고, 산책도 해치우고. 만남과 헤어짐도 해치우고. 


유독 내가 그런가 싶습니다.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풀도 꽃도 언제나 해치우듯 지나가고 피어나고 사라지지는 않는 데. 아버지는 이제야 엄마와 나란히 걷습니다. 체력이 내려가면서 마음이 올라온 것 같습니다. 마음을 가지고 나의 하루를 느릿하게 채워나가는 연습. 지금부터 시작하더라도 늦진 않았겠지요? 그러면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갈 시간에 더 많은 인생의 재미를 만나지 않을까 기대해도 되겠지요? 얼마전 나의 오십두번째 생일 날. 서른 다섯의 대철이가 열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퇴근길에 축하 전화를 했습니다. 학교, 학원, 센터에서 보컬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프리렌서 보컬 트레이너랍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와, 그런데 목소리, 말투가 어떻게 저 열여덟때랑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어요?


한 순간의 비눗방울처럼 살아가는 우리지만, 영롱한 그 방울이 터지기 직전이 아마 지금일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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