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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6. 2023

사색이 되게 만든 나이스

[라이브 다이어리] 1

이번 주 목요일부터 고3에게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지필평가가 시작된다. 나는 5개 학급 약 150명을 대상으로 두 개 과목을 출제했다. 지난 주제 먼저 실시하는 한 과목은 이미 시험지 포장을 마쳤다. 그런데 그제 금요일 퇴근이 임박해서 날벼락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교사, 모든 과목의 시험문제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는 것. 세상 처음 겪는 일이다.  


학교의 모든 기록은 NEIS('나이스'라 불린다)라는 사이트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 시험문항과 관련한 정보들을 업로드하고 출력을 해야 한다. 시험 문항만이 아니라 학생의 학교 생활과 관련한 모든 기록들(소위 생기부라고 부른다)인 학교생활기록부가 6년, 3년, 3년간 누적 기록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다. 


지난 주말 포함 약 일주일간 접속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그러다 이번주 수요일. 4세대 나이스가 개통이 되었다. 개발 업체가 바뀌면서 이전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거란다. 28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소요되었단다. 첫날, 둘째 날 접속 자체가 어려웠다. 그리고 시스템 자체가 불안 불안하다, 는 소리들을 여기저기서 한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뉴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금요일 많은 교사들이 어리둥절, 사색이 되었다. 


내가 출제한 과목 문항 정보(정답, 배점 등이 기록된 양식)가 다른 학교에서 출력이 된다는 말이다. 일부러라도 하기 어렵지 싶다. 관계 당국이 원인을 찾아내겠지만, 이런 경우는 살다 살다 처음이다. 교육부 장관이 킬러 문항을 시연하겠다고 공언한 오늘 월요일. 전국의 수많은 학교에서는 시작된 장마비속에서 기말고사 문제를 다시 출제하고 편집하고 제출하고 하루 이틀 사이에 재인쇄하는 초유의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말 내내 나는 두 과목의 몇십 문제를 다시 수정, 출제, 재편집 해야만 했다. 귀찮은 것보다 위험하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급한데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 담당 교사들의 상황은. 다시 만들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저경력의 교사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을 거다, 분명. 평가 문항은 충분한 기간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상황에서 반복 검토를 통해 출제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제 학교가 코로나가 끝나면서 제 모습을 찾는가 싶었는데, 나이스하지 못한 나이스 시스템이 일을 크게 만들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건 오류나 버그가 있을 수 있다. 사용을 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수정을 하는 방법도 틀린 접근은 아니다. 다만, 이번 업그레이드 문제의 핵심은 아쉬운 정책 타이밍이다. 학기를 마무리한 후 학기 초에 오픈, 오류나 버그를 현장을 통해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거다. 


이제 한두 주 동안 학생들의 한 학기 생활을 정리하는 기록들을 수없이 입력해야 한다. 전국의 교사들이 동시에. 관계 당국의 발 빠른 대처와 원인 분석과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현장에서 묵묵히 해내는 이들의 건강을, 학생들의 정보를 해치지 않을 거다. 비가 온다. 장마의 시작이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한여름을 딛고 견뎌야 하는 땅이 더 단단해질 수 있기를. 


[관련뉴스]

교육부 관계자는 “타 학교 문항정보표가 인쇄되는 현상이 발견돼 인쇄기능을 즉시 중지했다”면서 “오는 30일까지 24시간 비상근무체제를 가동해 4세대 나이스 시스템 안정화와 사용자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강원도민일보(정민엽입력 2023. 6. 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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