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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27. 2023

후웅~ 훙! 오늘도 용출호를 타고~



아침 출근길. 우리의 오늘은 언제나 단지 정문에서 출발합니다. 정문 앞에 버티고 있는 신호등. 앞 단지 정문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막다른 길입니다. 아침에 보통 열 대중 서너 대가 좌회전, 나머지가 우회전을 해서 각자의 오늘을 출발합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열여덟 따님은 디제잉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신호가 제법 깁니다. 1분 20초 정도의 직진 신호 다음에 앞 단지에 주어지는 30여 초 다음에 우리 단지 좌회전 신호가 들어옵니다. 


돌빵의 추억이 남아 있는 앞유리로 또로록 빗방울방울에 존 레논의 이매진이 젖어 흐릅니다. 좌회전 신호가 막 끝났을 때 신호 대기를 시작하면 뒤쪽에서 우회전하려고 기다리는 차들이 모닝런을 하기 위해 줄을 서는 모양새가 됩니다. 들고 나는 길에 하나씩 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룸미러, 사이드미러에서 보이는 차들이 바쁜 아침에 마음이 얼마나 더 바빠질까 싶어 집니다. 제일 앞에 서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차를 빼주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그 앞이 바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입니다. 그래서 걸쳐 있기도 뭐 합니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멀리서 좌회전 신호가 사라지는 걸 보면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룸미러, 사이드미러를 쳐다보게 됩니다. 그런데 한참을 있어도 혼자 서 있게 되더군요. 따님이 서둘러 준 덕에 5분 이상 일찍 지하주차장에서 출발해서 그랬지 싶습니다. 여하튼 마음이 그냥 편안해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뻥 뚫린 뒤쪽 시야가 자그마한 운전석 사이드 미러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어 그런데 그 자그마한 사이드 미러 안에 망망대해를 향해 거침없이 나설 것 같은 용출호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용출호. 무슨 고기를 잡으러 어디까지 떠나는 배일까요. 급한 마음을 가진 아침에는, 피곤해서 껌뻑거리던 아침에는, 진입하자마자 좌회전 신호 덕에 쓩하고 꺾어 달아 나던 아침에는 보지 못했던 배입니다. 그러도 보니 우리 단지 정문은 자그마한 항구였군요. 수많은 배들이 먹고살겠다고 아침저녁으로 드나드는 항구. 각자의 처지와 사정과 마음이 조금씩 다를 뿐 그렇게 언제나 떠나고 돌아오기를 모두가 기다리는 안도의 항구. 


오늘도 세상을 잠깐 거꾸로 보다 보니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건강하게 휘저으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란, 우리란 용출호가 한눈에 다 보입니다. 이 자그마한 항구에서 각자의 꿈을 가지고 만난 것은 훌륭한 기회일 지 모릅니다. 각자 살아내는 기간이 같은 장소에서 겹친다는 것은 그리 쉽지많은 않으니까요. 그래서 꼭 좋은 이웃이 되어야 겠습니다. 멀리 가지 말고 서로에게서 좋은 것들을 배우고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되어야 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 같은 곳으로 돌아 오는 각자의 용출호가 항상 만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선장도 선원들도 모두 다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꿈을 가듣 싣고 자, 오늘도 후~웅, 훙훙!! 용출호를 타고 출동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모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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