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이너인 당신은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
Summary.
본인이 기획자와의 접점에 있는 UX 디자이너라면 데이터 분석 툴(A/B Testing)을, 개발자와의 접점에 있는 UX 디자이너라면 프로토타이핑 툴에 익숙해지시길 추천합니다.
프로토타이핑 툴들이 대세입니다.
이제는 그 기능들도 고도화가 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단순히 화면의 흐름을 보는 수준의 paper prototyping툴(Marvel, Adobe XD, Invision, Oven 등) 뿐만이 아닌 미세한 인터렉션까지 만들고, 돌려보고, 개발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Pixate, Framer, Protopie 같은 서비스까지 나왔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툴들을 활용해서 디자이너 - 개발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협업이 조금이나마 쉬워진다면 분명히 반갑고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다만 이런 대세 안에서 프로토타이핑 툴에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다가 정리해본 내용을 공유해 볼까 합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많이 싸웁니다. 농담 아닙니다. 정말 신명 나게 싸웁니다. 심미적인 가치가 중요한 디자이너와 기능성과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개발자들의 다른 관점에서 충돌이 생기는 것이죠. 특히 대기업과 같이 디자인 조직과 개발 조직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디자이너-개발자의 싸움구경을 대비해서 팝콘이라도 사 두어야 할 지경입니다.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디자이너-개발자의 대표적인 전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00님.
개발자: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우리 서비스 메인 페이지 로딩 시에 이런이런 트렌지션을 주고 싶은데요, 작업 가능하실까요?
개발자:... 어떻게 되는 트렌지션이라고요...?
디자이너: 이게 이렇게 로고는 불투명하다가 여기 즈음부터 휙 하고 올라오는데요, 올라오면서 이미지는 점점 선명해지고요...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배경은 로고와는 좀 더 느린 속도로 스윽- 올라오면서 결국에는 최종 화면처럼 되었을 때 딱! 멈추는... 그런 트렌지션입니다!
개발자:... 그렇게 '휙, 스윽-, 딱'이라고 말로만 설명을 주시면 저희가 개발을 하는 게 쉽지가 않은데요...
디자이너: 아 근데 이거 엄청 흔하고 다른 서비스에서도 다 하는 거거든요, 이거 어떻게 안될까요...?
개발자:... 저 근데 우리 서비스 지금 버그도 아직 안 잡힌 부분이 있고... 이건 좀 나중에 하면 안 되나요? 런칭 이후에 패치에서 한다든가...
디자이너: 아... 근데 저희 이거 정말 중요한 거거든요. 저희 팀장님이 이 정도 수준으로는 디자인 완성도를 가져가야 한다고 하셔서...
개발자: 네... 그런데 저희도 매일 야근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처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기능은 저희가 당장 신경을 쓸 수가...
디자이너: 잠깐. '중요하지 않은 기능'이라고요? 왜 굳이 얘기를 그렇게 하시는 거죠? 협의된 개발 일정대로 작업도 안 해주셔서 저희도 양보한 인터렉션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죠?
개발자: 협의요? 협의요?!?!?? 개발자들은 부르지도 않고 기획이랑 디자인이랑만 만나서 보고 다 하고 결정 내려버린 그 협의요!??!!?
디자이너: 기획부서에서 개발을 안 부른 미팅을 가지고 왜 우리한테 화를 내고 그러세요!!! 우리는 야근 안 하는 것 같으세요?!!?!?
[이후 생략]
이런 갈등을 피해보고 좀 더 디자인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예전에는 애프터 이펙트 같은 툴을 통해 아예 영상을 제작을 해서 보여주며 설명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영상을 제작하는 것도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영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개발자는 그 영상을 기준으로 애니메이션 효과를 영상과 비교해가면서 개발을 해야 하고요. 그렇게 오늘도 그들의 전쟁은 계속되어갑니다.
그런데 Framer 같은 프로토타이핑 툴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열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 중에 하나가, 인터렉션을 프로토타이핑 툴로 작업을 해서 개발자들에게 보여주면 개발자분들이 적어도 어떤 인터렉션을 만들었으면 하는지 프로그래밍 기준으로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더 이상 '그건 무슨 효과를 말씀하시는 건지 이해가 안돼서 못 하겠는데요..'같은 맥락의 대답은 소용이 없어집니다. 고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협의를 하고 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훨씬 효율이 높아지게 되고 본인들의 의견들이 받아질 확률이 높아지기에 이 툴을 반기는 것입니다. 개발자분들의 입장에서도 역시 말로만 후쉭풍 하면서 소개하는 인터렉션이 아닌 코딩으로도 쉽게 작업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물을 디자인에서 공유해주니 훨씬 일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대부분 분들이 반기실 겁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개발자분들의 작업시간이 그렇다고 해서 더 확보된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만요. 그런 맥락에서 디자이너들에게 협업을 하는 데 있어서 프로토타이핑 툴은 '무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도움을 줍니다.
프로토타이핑 툴이 디자인 - 개발 관계에서의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을 때, 기획자 - 디자인의 관계에는 데이터 분석 툴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석 툴은 Google Analytics가 있습니다. 기획자와 디자인 사이도 절대로 순조롭지는 않습니다. 팝콘이 남을 겨를이 없습니다. 기획자와 디자이너와의 협업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전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획자: 안녕하세요, 00님~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기획자: 제가 어제 기획 쪽 본부장님께 우리 서비스 보고를 드렸는데요, 본부장님께서 서비스 메인 화면이 너무 휑하다고 추가적인 기능을 좀 고민을 해 보라고 하셔서 이런 이런 기능을 추가할까 하는데, 화면 설계랑 디자인이 가능하실까요?
디자이너:.... 네...? 이건 도대체 무슨 기능인 거죠...?
기획자: 아, 이 기능은 우리 서비스 A 경쟁사 B 서비스에도 보시면 나오는 기능인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이런 정보들이 팝업같이 나와서 유저들이 통계정보들을 보고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얻게 되는 기능입니다.
디자이너: ....
기획자: 아 물론 팝업이 아니고 버튼을 누르면 아래 영역이 쫙 늘어나면서 통계정보가 나와도 됩니다! 그 부분은 디자이너분들이 판단을 해 주셔야죠~
디자이너: 아니... B 서비스는 우리 경쟁 서비스도 아니고... 이 기능이 왜 우리 서비스에 도움이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그냥 유저들에게 통계정보만 보여준다고요..? 그 통계 정보만 보고서 도대체 유저들이 무슨 아이디어랑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건데요...? 그리고 메인화면에는 지금 벌써 정보가 충분히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다른 기능까지 들어가면 너무 시장바닥이 되어버릴 것 같은데요...
기획자: 흐음... 그래도... 팀장님이랑 본부장님이 이 기능이 좋다고 하셔서요... 저도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저도 미치겠습니다...
디자이너:.... 우리 유저들이랑은 너무 안 맞는 기능인 것 같습니다...
기획자:...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세요? 이런 통계정보를 보고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저는 이런 기능 있으면 분명 보고 좋아할 것 같은데요??
디자이너: 00님은 이 서비스를 쓰시는 대상 유저도 아니시잖아요.
기획자: 아니요? 쓸 수도 있는데요?? 왜 안된다고만 말씀하세요? 개발도 이런 기능이랑 이런 데이터 보여주는 건 된다고 하는데요. 00님, 너무 비협조적이신 거 아닌가요?
디자이너: 지금 이렇게 기능 추가하고 수정하는 게 한두 번입니까? 기능 수정사항이 맨날 생기니까 개발에서는 작업시간 부족하다고 그래서 디자인팀에서 넣고 싶었던 트랜지션은 하나도 못 넣고 있는데, 우리가 비협조적이라고요?
기획자: 아니 그러니까 제가 바꾸고 싶어서 기능 맨날 바꾸고 추가하고 싶어서 자꾸만 추가하냐고요!
[이후 생략]
... 잠시 옛날 생각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사례가 길어졌네요... 하지만 저 한마디 한마디가 저에게는 주옥같은 추억(?)이기에 줄이지는 않겠습니다 ㅎㅎ
기획자와 디자이너와의 회의는 너무 흔하게 탁상공론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탁상공론을 통해 타협안을 만들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로 서비스를 만드는 동안 정말 시장에서 유저들이 원하는 경험과는 멀어져만 갑니다. 그런 탁상공론을 멈추고 정말 유저들이 원하는 서비스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툴이 바로 Google Analytics 같은 데이터 분석 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획자도 물론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굳이 UX 디자이너가 데이터 분석을 하는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유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된 기회 영역에 대한 개선방향은 기획자보다 UX 디자이너가 도출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서비스에 방문자에서 로그인으로의 전환율이 낮은 것으로 측정이 되어 로그인 전환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보는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웹 서비스는 로그인을 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게 제공됩니다. 마케팅 채널을 통해 상품페이지로 바로 유입될 수 도 있고, 웹사이트 랜딩 페이지로 유입될 수도 있으며 이메일 등을 통해서 유저 프로필 페이지 등으로 유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달라질 수 있는 로그인의 방식들을 먼저 알고, 따라서 먼저 개선안을 강구할 수 있는 사람도 기획자보다는 화면 자체를 설계한 UX 디자이너가 유리합니다. 화면 당 최소한의 요소에 변화를 주어 효과를 비교 측정하는 A/B Testing의 경우에도, 화면 설계 자체를 담당했던 UX 디자이너가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안을 도출하고 제안하는 것이 기획자가 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유리합니다. 그렇게 UX 디자이너가 기획적인 부분까지도 적극적으로 개선을 해 나가면서 서비스의 전반적인 성과를 끌어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기획자-디자이너의 협업 관계에서도 내부 이해관계에 따른 고집보다 성과중심적인 기준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UX 디자이너가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개발자와 협업을 많이 해야 하는 비주얼 디자이너 영역에 있는 UX 디자이너라면 그 영역의 업무에 도움이 되는 프로토타이핑 툴을 익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만약 개발자보다는 기획자와 화면을 기획하는 영역에 가까운 UX 디자이너라면 프로토타이핑 툴보다는 Google Analytics 같은 데이터 분석 툴과 Optimizly / Google Experiement 같은 A/B Testing툴들을 익혀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어느 툴이든 내가 하는 일의 효율과 성과를 높일 수 있다면 뭘 하든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심스럽게 우려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나라보다는 좀 더 많은 비율의 미대 출신인 분들이 UX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UX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비주얼적이고 화면에 국한된 영역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UX에 대한 오해와 진실들'이라는 글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런 오해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절대 아니지만, 제가 '한국 대기업에서 UX가 망하는 이유'라는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비주얼 적인 부분에만 집착하는 UX가 될수록 그 성과(KPI)가 기업 입장에서는 점점 더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저는 UX가 한국에서도 진정하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UX를 통해서 이러이러한 성과가 있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만한 사례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프로토타이핑 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UX 디자이너가 프로토타이핑 툴을 활용한 덕분에 디자인과 개발의 협업에 있어 그 효율과 능률이 높아졌음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UX 디자이너 분들이 그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들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획/화면 설계 쪽에 가까운 업무를 하고 있는 UX 디자이너인 제가 개인적으로 목표로 하고 있는 성과는
UX 디자이너가 데이터 분석 툴을 활용한 덕분에 우리 회사의 매출 및 수익이 증가하였음
위와 같습니다. UX 디자이너가 단순히 화면만 그리고 기획담당자의 의도를 화면으로 풀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서비스가 의도하는 경험을 유저가 어려움 없이 완료할 수 있도록 분석 및 테스트를 통한 개선으로 결국 서비스의 성과를 달성하도록 하는 존재로 인정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물론 저부터 더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지만요..^-^;;
글을 쓰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데이터 분석'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모호하여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언급한 '데이터 분석'은 Data Mining, Big Data, Network Analysis 같은 맥락의 연구 성격의 데이터 분석보다는 A/B Testing을 염두한 Google Analytics와 같은 데이터 분석 툴을 두고 쓴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통계 쪽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데이터 분석과 UX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번 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