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넋두리 입니다.
사실 브런치를 통해서는 그냥 경험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리뷰만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쓸수록 입이 근질근질한 느낌이랄까..?는 변명이고 그냥 서비스 리뷰 말고도 새로운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서요. UX 넋두리에서 처음 써 보는 글이네요 ㅎㅎ 우선 첫번째 글은 한국 대기업에서 경험해봤던 UX이야기 입니다.
제목은 거창하게 쓰기는 했지만 사실 제가 일했던 곳이 대기업이 맞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누가 들어도 아는 국내그룹의 계열사였으며, 높은 경쟁율을 뚫고 공채로 합격했어야 했고, 이직하시는 분들도 대부분 대기업에서 이직을 하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여러 정황을 놓고 봤을때 '이정도면 대기업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직장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아쉬웠던 부분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퇴사를 결정하게 된 몇가지 큰 계기들에 대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있었던 회사에서는 상품/서비스 개발의 프로세스가 기획 > UX(디자인) > 개발의 순서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각각의 조직 및 그 조직 안에서의 역할이 매우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는데요, 제 생각에 문제는 바로 이 '완벽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것 같았습니다. 우선, 저는 성공적인 서비스의 가치제안을 구상할 때는 절대적으로 고객의 경험을 기반으로 고민을 해야한다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대기업의 기획과 사업부 담당자들은 고객의 경험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하지 않았고, 또 그럴수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획 담당자와 사업담당자들은 서비스 기획과 더불어 사업의 타당성과 시장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보고해야하며, 사업의 수익성을 꼭 확보해야하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기획과 사업부서에서는 고객 말고도 고민을 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획 > 디자인이라는 프로세스의 순서에 따라서 UX조직이 기획이나 사업부에서 서비스에대한 요건을 전달 받을 때 즈음에는 벌써 고객은 상당히 배재된 '사업'이 우선인 결과물을 공유받게 되는것이죠. 물론 기획 담당자와 UX디자이너가 같이 고민을 하면서 서비스 기획을 진행할수도 있고, 같이 고객에 대해 리서치하고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구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도 정성적이고 고객 중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대기업의 보고체계를 몇단계 거치다보면 결국 고객경험을 기반으로 한 인사이트 보다는 일반적이고 안전한 몇백개 몇천개의 데이터로 작성된 시장분석결과에 치중한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는것일까요? 저 대기업 프로세스의 구조안에서 가치있는 결과가 나오려면 1) 기획자가 사업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고객중심적 사고를 기본적으로 기획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사람이라면(=천재기획자)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2) UX 디자이너가 기획자가 쉽게 놓칠 수 있는 고객중심적 사고방식을 옆에서 계속 상기시켜주고 리드를 한다면(=천재 UX디자이너)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대기업같은 큰 조직에서 과연 소수의 사람이 그런 역할들을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회의적입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사실 대기업을 나온 다음에 더더욱, 느낀점은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툭하면 SKY, 카이스트, 포항공대... 또 툭하면 한번쯤은 들어본 외국대학을 나와서 재수없게 한 단어씩 꼭 영어를 넣어서 말하는(사실 제가 그랬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 했고, 또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보니 아는것들도 너무 많은데,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아는것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만 모여있었던 조직이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 회의를 하며 주고받는 'Common Sense'(상식)이라고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막상 시장에 나와서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맞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책으로 이론적으로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있다보니, 나오고 정리가 되는 내용들이 있다고 해도 그 수준이 애초에 대중화를 시키기에는 너무 많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오는 아이디어들 조차도 고객들을 통해서 검증을 하는 단계는 없거나 매우 주관적이고 편파적인(보고서를 위한) 방식으로 진행이되니 결국 서비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때 사람들이 큰 반응이 없을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공부하고 알고있는 사람들은 '나의 생각이 틀릴지 모르니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기 위해 고객들을 리서치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는게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인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얼마전 얼마나 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얼마나 불필요하게 부풀려져있는지를 느낀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말 하기는 그렇지만 (하지만 물론 말한다고 여러분들이 확인을 하실수 있는것도 아니니) 저는 전 직장(대기업)에 있었을때는 항상 '말을 참 논리적으로 한다' '설득력 있다' '영업을 해야할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제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이 조그마한 회사에서 얼마전 진행한 리뷰에서 저와 협업을 하는 동료가 'Ji는 너무 말을 어렵게 해서 나를 무시하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했다는 피드백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제 방식이 사실은 협업하는 조직(담당자)들에게서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게 잘 '포장된' 현란한 말들이었다는것을 느끼게 된거죠. 그 일은 고객뿐만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눈높이와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수준있는 UX 디자이너라고 새삼스럽게 느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대기업이 아닌 많은 중소기업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문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직에서 성과를 측정하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UX조직이 디자인한 서비스에 페이지/기능 단위로 Conversion을 측정을 할 수 있는 Google Analytics를 설치하고, 항상 분석하며, 서비스 퍼포먼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UX고도화 작업을 진행을 하는경우에는 문제가 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UX는 데이터를 보고서만 진행을 할 수 있는 업무의 영역이 아니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UX = 비주얼 디자인'으로 개념을 잡고 있는 많은 조직의 경우 시각적이고 정성적인 디자인 결과물에 대해서는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국내 UX(디자인)조직같은 경우에는 기획이나 사업부의 성과에 어느정도 의존을 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적어도 제가 있었던 조직에서는 그렇게 디자인 조직이 평가를 받아왔었으며, 그렇게 다른조직의 성과에 의존을 하는 구조를 가진 UX조직이 높은 성과를 내거나 서비스를 리드를 할 수 있다는건 쉽게 상상하기도 힘든 구조였습니다. 사업의 성과를 내는데 있어서도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없고, 그런 중요한 역할 자체를 맡지 않는다고 치부되어버리는 조직은 절대로 리드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대기업에서 UX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의 조직적과 문화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 외에도 UX담당자 차원에서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첫번째로, UX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 총체적인 개념으로 접근을 하는 UX담당자가 없거나 매우 적었으며, UX담당자중 IT혹은 e-Commerce의 높은 이해도를 가진 사람 또한 매우 부족했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들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뭔가 UX담당자의 업무 영역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넋두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 얘기는 이정도로만 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