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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Jun 27. 2020

Letter to Manager

숭고한 여정을 시작하는 매니저님에게-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매니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관리자'가 되기는 하셨고, 아마 책임감이 많으신 매니저님은 팀원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면 그때보다도 더) 정말 최선을 다해서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노력을 하고 계실 겁니다. 다만 지금 즈음이 되면 매니저님이 현타를 여러모로 느끼고 계실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모든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경험을 기반으로 보았을 때 매니저님은 아래 세 가지 감정중 최소 한 가지는 느끼시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1. 답답하실 거 같아요

매니저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리자는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영역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매니저 직책을 부여받게 됩니다. 즉, 실무를 잘해서 관리자가 된 매니저님 눈에는 매니저님이 담당했던 영역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팀원들이 성에 차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나였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 '나라면 이런 성과를 이 정도 시간에 걸려서 내지 않았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빈번하게 들고, 나중에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 모든 매니저님들은 위에 언급한 감정들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은 경험하시고 있거나 벌써 경험해보신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서 봤는데 관리자가 팀원들한테 기대해야 하는 업무 퍼포먼스의 수준은 본인이 실무를 직접 했을 때를 기준으로 약 70% 정도의 수준으로 기대하고 관리하는 것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말이 70%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바라보는 눈을 갑자기 70%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겠으며 더 현실적으로는 그런 성과를 기반으로 어떻게 최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겠는지 납득이 안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랬거든요. 


2. 고독하실 거 같아요. 

매니저님들과 커피 챗을 할 때 제가 최소한 한 번씩은 꼭 이야기하는 내용이고, 저 개인적으로도 가장 힘들게 소화하고 있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 같이 실무를 하며 마음이 너무 잘 통하던 팀원/동료들과는 조금씩 소통을 하는 주제들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주제가 조금씩 엇나가다 보니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지 못하고, 그래서 함께 더 이상 허물없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쉬워지지 않는 것 같으실 겁니다. 본인의 고민 주제의 대부분은 팀원의 관리 문제인데, 결국은 특정 팀원(들)의 험담을 하게 되는 것이 우려되어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모두의 일을 신경 쓰고 챙겨주고 지원해주고 있는데, 그 누구도 나를 반대로 챙겨주거나 관리해주는 것 같은 느낌은 잘 못 받으실 겁니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내가 딱히 보고 따라갈 수 있고 따라가고 싶은 사람도 주변에는 마땅히 없는 것 같을 겁니다. 저 또한 이런 감정들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3. 속상하실 거 같아요.

위의 이유들과 그 이외의 이유들로 나오는 결과이겠지만, 그래서 많이 속상하실 겁니다. '내가 이러려고 매니저가 되었나'라는 생각, 저는 정말 많이 했습니다. 나는 내가 잘하던 전문성에 있어서의 자기 계발을 포기하면서 팀과 팀원들의 성과와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팀원들이 성장을 하고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나는 지금 어떤 역량이 계발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점점 더 막막해 보일 수 있습니다. Tech 관련 직군에서는 관리자가 되는 것이 독이라며 Specialist track을 고집하면서 연차와 상관없이 실무만 고집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불안해지실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나를 알아주는 것 같지 않고, 더 나아가 내가 과연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나의 노력은 무시당하거나 부정당하는 것 같고, 나의 팀 성과의 기여도는 가시화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이 과정에서 내가 정말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라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매니저님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니저를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합니다. 내가 관리하는 영역은 각각의 다른 방식으로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 연주자들의 공동체인 오케스트라이고요, 매니저는 그 중심에서 불협화음이 될 수 있는 셀 수 없는 리스크를 컨트롤하여 결국은 완벽한 하모니로 만들어주는 지휘자라고요. 저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저의 가치를 위의 비유에 대입해서 위로를 얻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이제 더 이상 저 비유에 관리자를 빗대어 표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위의 비유에 동의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제가 개인적으로 매니저로 쌓아온 경험은 위의 비유만큼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매니저님도 저에게 아마 최소한 한번 정도는 이 비유를 들으셨겠지만, 저는 매니저를 진흙탕에서 빠지지 않으려고 허우덕대는 사람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이 허우덕대는 사람 위에 다른 사람들이 탑을 쌓고 있는 상황이라고까지 상황을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밑에서 그들이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허우덕대는 매니저를 신경 쓰기보다는 탑을 쌓는 데에 관심이 있고, 탑이 쌓이면 쌓일수록 매니저가 진흙탕에 가라앉지 않도록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더 무거워집니다. 저에게 매니저란 딱 이 비유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절망스러우실까요? ㅎㅎ


그런데 저는 이런 매니저가 있는 조직이야말로 건강한 조직이고 멋진 조직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믿습니다. 팀원들이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의 업무에만 몰입하면서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또 본인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오너십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팀원(들)이 성과에 드러나며(매니저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결국은 나 혼자서는 절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을 엄청난 성과를 팀으로서는 만들어내는 것이 제가 저 비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이고, 제가 매니저가 되면서 다짐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강조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주인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며, 팀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본인의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조직구조와 프로세스로 설계/관리하고, 팀이 내는 퍼포먼스에 따라오는 권한 및 책임의 무게를 반드시 감당해 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니저님을 통해 성장하고, 성공합니다. 



매니저님께 이 편지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위에 매니저님께서 느끼시는 감정들에 대한 해결책을 드리려는 것보다는 위의 힘든 상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님은 도전하시고 성공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실무를 하실 때 힘들 때가 있고 힘든 이유들이 있습니다. 매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스트레스가 오는 결이 실무(업무)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가 관리해야하는 사람(팀원)들로 진화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스트레스의 세상이 열린 것뿐입니다. 매니저님이 업무를 담당하시면서 최고의 성과를 결국 내셨던 것처럼, 팀의 관리를 통해서 더 큰 성과를 달성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무를 하면서 많이 시도하고 실패를 거쳐서 성과를 내셨던 것처럼, 이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결이 달라졌지만 그 주제에 대해 이해하고 시도해보고 실패를 거쳐서 성공을 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니저님이 진흙탕에서 허우덕대기 시작할 때 혼자이지 않도록 제가 돕겠습니다. 모든 문제를 제가 해결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매니저님이 공유해주시는 마음의 고민이나 실무의 고민들에 대한 저의 경험을 최대한 공유드려 보겠습니다. PM과 매니징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은 결국 관리의 영역은 개인기의 영역이구나...라는 생강입니다. 그래서 저의 문제 해결 방식이 매니저님의 해결 방식이 될 수 없을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매니저님은 저와 역량, 성향, 가치관이 모두 다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의 경험과 비교를 하며 매니저님이 본인의 방법을 시도해보시고 찾아가실 수 있도록 제 경험을 공유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매니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함께 도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고, 우리 함께 멋진 성과를 만들어 내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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