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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희 Mar 09. 2024

소용돌이 사이로, 그 속으로

발걸음이 떼어지질 않는다. 우울함이 몰려오는 요즘 버텨내기가 그리고 이겨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까지 내가 연약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모든 부분에 지쳤나 보다.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그 어딘가를 누리지 못하고 불안한 것 같다. 그리하여 연약한 나의 정신을 늘 신앙에 닻을 내려놓지 않으면 나는 단 하루도 쉽게 지내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함에 눌린 채 눈을 떴다. 몸이 피곤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눈을 뜨기가 싫은 주말 아침이었다. 토요일이면 늦잠도 자고 싶은데, 그럴 수 없기에 오늘은 나에겐 더 힘든 하루이다. 그저 온전히 아기와 함께 혼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유아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아기는 아주 잘 크고 있다고, 아기가 걱정이 될 때면 이유는 단 한 가지라고, 그것은 바로 엄마의 피곤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힘내시라며 다독여 주셨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인지 나는 피곤해서 더 자고 싶어서 우울해졌나 보다.


불순한 씨앗들이 톡톡 내 마음을 건들기 시작했다. 주말인데도 일을 해야 하는 남편에게 씨앗 하나가, 자잘한 집안일에 관하여 사소하지만 중요하다 생각하는 내 부탁들을 사소하게만 생각하고 들어주지 않는 남편에게 잔뜩 화가 올라왔다. 출근하는 아침부터 불만을 토해내고 싶지 않아 참았고, 남편은 나와 아기와 함께 좀 더 시간을 보내려고 함께 해줬지만, 함께하는 그 적은 시간을 나는 화 참기에 급급했다. 결국 작은 스파크에 불을 지핀 채 나는 불 사이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려 전쟁 같은 싸움을 내면 속에서 치러야 했다.


그 후, 아기가 내 손을 잡고 좁은 아기 텐트로 데려갔다. 자기 옆에 나를 함께 눕힌 채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킨다. 햇살이 들어오니 딴 세상에 온 듯싶었다. 그러다 문득 아기를 바라보니, '나는 너에게 어떤 세상일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모는 아이의 우주이고 온 세상이라는데, 아기에게 나는 어떤 세상이 되고 있는 건지 갑자기 두려워졌다. 너의 세상에 어두운 그늘이 없어야 하는데, 이따금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이 너에게 그늘을 만들까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잠이 드는 아기의 얼굴을 보니, 잠을 참아가며 내 얼굴을 확인하고 조는 아기의 눈을 보니, 또 그렇게 눈물이 났다. 우울한가 보다. 너를 재우고, 정신을 차리려 샤워를 한 후, 이렇게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어두운 나의 모습 속에서도 너로 인해 빛을 품고 싶은 내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서 또 묵묵하게 이렇게 앉아봤다. 화창한 오후, 봄이 오는 냄새가 나니 마음 한 편에 꽃향기도 나는 듯하다.


내가 오늘 깨달은 건, 모든 일에 덤덤해져도 된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너무 슬픈 일을 겪었어도 혹시나 또 그럴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고, 너무 기쁜 일이 있어도 그 기쁨을 잃을까 봐 그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기쁘다가도 슬픈 일이 생기고, 울고 난 뒤에 웃을 날이 온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렇게 둥글게 굴러가는 인생을 우리도 함께 발맞춰 자전거의 페달을 밟듯 그 힘으로 앞을 향해 전진하면 된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면, 당장 대답도 듣지 못할 '왜?'라는 물음 앞에 나를 가두지 말고, 소용돌이 속으로 지나가야 한다. 잔잔한 바람이 내 어깨에 머물러 나의 등을 두드려줄 때까지 오늘을 지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지나가봐야 그렇게 살아봐야 아기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니 말끔한 모습으로 나의 하루를 정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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