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주신 간식을 먹으러 가는 제이미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엄마가 커피를 내리고 계신다. 엄마가 식탁에 앉은 제이미에게 살짝 다가와 물으신다.
“오늘 기운이 없어 보이는구나. 무슨 일 있었니?”
“아녜요. 지금은 괜찮아요. 커피 향을 맡으니 기분이 좋아요. 간식 잘 먹을게요, 엄마.”
제이미가 대답했다.
론의 어머니가 자신도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가까이 오셨다.
“제이미 엄마, 커피 정말 맛있다. 아, 그리고 오늘 있었던 찰리네 소식 들었어?”
“찰리? 그 어릴 때 론이랑 친했던 녀석이지? 못 들었는데? 그 친구 이름 오랜만에 듣는다. 왜 무슨 일 있어?”
“제이미 엄마도 알다시피 찰리하고 론은 어릴 때부터 각별히 친하게 지내 왔었잖아. 그런데 3년 전 즈음인가, 찰리가 많이 아파서 학교를 그만두었어. 그리고 그 후로 우리도 찰리를 잘 볼 수 없었거든. 아마 거동을 못하고 집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나 봐.”
“딱해라. 그런 일이 있었다니. 우리 마을이 크지도 않은데 왜 그런 소식을 이제야 듣게 된 거지?”
“찰리네 식구가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어서 그럴 거야.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고.”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야지. 그래서 오늘 있었던 찰리네 소식은 뭐야? 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제이미의 엄마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어봤다.
“오늘 아침에 찰리의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서 병원으로 실려갔대. 상황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의사가 찰리 아버지께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그랬나 봐.”
“오, 이런. 찰리 아버지, 그 조용한 사람 맞지? 학교 앞에서 잡화점 하시는 분.”
“응. 그분이 말수가 없어도 정말 따뜻한 사람이야. 찰리를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지 그 아이가 힘들어할 때도 늘 웃으면서 그 아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지.”
엄마와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제이미는 더 이상 간식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우셨구나. 그 울음소리가 그 울음소리였구나.’
진열장을 정리하시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시던 아저씨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힘없이 그려졌다. 단순하게 궁금했던 마음이 어느새 짙은 아픔으로 바뀌는 듯하였다.
사실 이전까지 제이미는 잡화점 아저씨 댁에 관하여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 파는 물건들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아저씨에게 ‘찰리’라는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듣게 되었다. 잡화점 주인아저씨가 무뚝뚝해 보여도 인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일전에 꼬마 아이들이 사탕 한 개 값을 가져와 둘이 나눠 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사탕을 반값으로 세일해 주며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보시는 아저씨를 뵌 적이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아저씨의 모습들을 그저 지나쳤던 여러 번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네 소식은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깝게 들려왔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없는 건가요?”
제이미가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힘 있게 물어보았다.
“그러게, 상황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병원비 액수가 매우 큰 금액이었다고는 들었어.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야 병원비 모금을 하기엔 찰리의 상태가 희망적이지 않으니 말이야.”
론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제이미, 너는 그만 올라가서 쉬어. 이런 문제는 어른들이 나누어야 할 문제야.”
제이미의 엄마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걱정을 달래려 서둘러 말했다.
제이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일어났다. 자신의 마음을 막아버리는 듯한 엄마의 걱정으로 제이미는 괜히 엄마에게 화가 나 입술을 꽉 문채 방으로 올라왔다.
‘어른들이 나누어야 할 문제란 게 대체 뭐야?’
제이미는 자신의 엄마가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신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제이미를 데리고 봉사기관을 함께 찾아 봉사했던 사진들이 떡하니 방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제이미가 가까운 사람들을 도우려 할 때면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점검하려 하는 듯한 엄마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꾹 참았던 제이미.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일기장에 자신의 투정을 가득 쓰며 기분을 풀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마저 사치로 느껴진다. 잡화점 아저씨네 가족들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오늘 보았던 아니 생생히 들려오던 아저씨의 서글픈 눈물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털썩.
침대에 누운 제이미. 긴장이 풀리고 왠지 모를 서글픈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잠시 잠이 들었다. 아니, 깊은 잠에 빠졌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하늘에서도 서쪽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꿈속에서 계속 부르던 노랫말을 웅얼거리며 제이미가 일어났다. 어느새 밤하늘엔 달이 높게 떴다. 낮잠을 꽤 오래 자버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저녁에만 마주할 수 있는 아빠를 보러 1층 거실로 달려갔겠지만, 오늘은 방밖으로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은 제이미.
답답한 마음이 여전히 마음 한편 웅크린 채, 여느 때와 같은 저녁 일상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 제이미.
‘오늘 하루가 참 길다.’
제이미의 마음 따라 밤도 깊어 간다.